로그인   회원가입  
Home MR뉴스 무기체계 컨텐츠 신제품 유료존 MR기네스 KNIVES 특수부대 軍뉴스 프리존
"징비록" 무엇을 말하고 있나?
지난 주말 세간에 공전의 히트영화 “왕의 남자“를 보면서 잠시나마 관료와 사회지도층의 국가관과 국민의 안보 의식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우리민족의 전쟁 수난사에서 가장 처참하고 비참했던 변란을 들라면 단연코 임진왜란 7년의 고통이 아니었나 생각되어 당시 정황을 기록한 “징비록(懲毖綠)”을 읽기로 하였다.

오늘은 당시의 참상을 상기해보고,,,! 조선왕조는 태종, 세종, 성종이라는 성군을 만나 나라로써 기본 틀을 다지고 한동안 태평성대를 누리기도 했지만 중종, 인종, 선조시대에 들면서 당파, 논쟁, 조정 대신의 무능, 무사안일, 파벌, 금권매관매직 등 사회적 기강 문란, 간신잡배와 탐관오리로 백성들은 불심만 깊어가게 되니 점차 국운이 쇠하게 되었고 주변국의 외침은 기승을 부렸다한다.

임란당시 영의정을 지낸 서애 유성용은 임란 패배 후에 후세에 다시는 이런 비참한 전쟁만은 없어야 된다는 의미에서 “그 유명한 ”징비록을 1600년대에 남겼다한다. 책자 서문에 “내 지나간 일을 징계(懲)하고, 뒷근심이 있을까 삼가(毖)노라. 이것이 바로 내가 징비록을 쓰는 연유이다.”라고 적고 있다. 400여년 이 지난 지금도 왜군의 파죽지세로 한반도를 유린하던 장면들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으며 당시의 침략 상황을 실제적으로 묘사해 놓은 전쟁교훈집이라 할 수 있는 역사적 자료이다.

내가 가장 가슴 아픈 대목은 “빠르게 진군하는 왜군에게 밀려 십여 일만에 경상.충청 3개 도읍이 힘없이 유린당하고, 조정이 마지막으로 의지할 것은 명(明)나라 원군밖에 없다....(중략), 더 끔찍한 것은 명나라 원군의 장수가 서울을 수복한 직후의 기록이다.
“성안에 남아있던 백성들은 백에 하나도 성한 사람은 없고 모두가 굶주리고 병들어 눈뜨고 볼 수 없었으며, 거리마다 인마 썩는 냄새 때문에 코를 막고 지나가야, 10월 선조가 환도한 이후의 서울 정경은 더욱 참혹하다. <심지어는 부자와 부부가 서로 뜯어먹기에 이르렀다 (至父子夫婦相食). 노천에 뒹구는 뼈만 짚단같이 늘어져 있었다> 명나라 장수도 당시 조선은 지옥보다 더 지옥 적이라 전하고 있다.

끝으로 서애는 <지금 와서 후회한 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다만 뒷날을 위하여 경계해야 할 것 이기로 써둘 따름이다.> 란 말은 우리 모두는 새겨 들어야할 금언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후에도 조선의 지도층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인조 때 또다시 굴욕적인 병자호란을..., 이어서 19세기 초에 조선왕조는 막을 내렸지만, 이후에도 부끄러운 민족의 수난은 계속됐다. 일제36년 식민생활, 6.25전쟁 , IMF 등 환란을 맞고도 아직도 정신 못 차린 기성세대와 젊은이들이 활개치고 있는 세상이 두렵게 느껴질 따름이다..
작성자 : zzangsy33 작성일 : 2006-02-16 10:26:34
의견달기
협력기관 및 업체 : 대한민국 공군 - 대한민국 해군 - 국방일보 - 국정브리핑 - Defense LINK - 군사저널
공정거래위원회 고시 제2000-1호에 따른 안내, 사업자 등록번호 : 220-86-07275
(주)아이엠알코리아, 대표이사 주재은, 전화 (02) 578-8278 (■ 잡지 취급하지 않습니다. 문의사절합니다.), 통신판매업 허가 : 서초 제 3300호
광고문의 - 개인정보 취급방침 - MR 이용자 약관 - 회원관련문의 - 탈퇴신청
Copyright ⓒ 1998-2017 (주) iMR Corea.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