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약 1200년 전인 서기 828년 통일신라시대, 흥덕왕 앞에 구릿빛 얼굴을 한 씩씩한 사내가 등장한다.

사내는 왕 앞에서 대뜸 자신에게 일만 명의 군사와 완도에 수군기지 즉 청해진을 설치할 수 있도록 허가해 줄 것을 호소한다.

이유는 자신이 당나라 무령군 소장으로 있을 당시 중국 해적들에 의해 우리의 무고한 신라 동포가 본국에서 납치돼 노예로 팔려가는 광경을 목도하고 너무도 분해 청해진을 설치하고 해적들을 반드시 소탕하고 말겠다는 것이었다. 당시 신라와 당나라는 해적들 때문에 상당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흥덕왕은 사내의 청원대로 청해진을 설치케 하고 일만 명의 군사를 주어 해적소탕의 임무를 맡기게 된다. 바로 이 사내가 청해진의 장보고 대사다.

오늘(31일)은 `바다의 날'이다. 이 바다의 날은 1996년 5월 처음 법정 기념일로 지정됐으며 바다를 터전으로 사는 어민들과 바다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축제의 날이다.

많은 날 가운데 5월31일을 바다의 날로 지정한 것은 바로 장보고 대사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장보고 대사가 해적소탕을 위해 청해진을 설치한 달이 5월이며, 그 달의 마지막 날을 바다의 날로 기념한 것이다. 즉 바다의 날을 바꿔 말하면 `장보고의 날' `청해진의 날'이라고 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장보고에 대해 우리는 과연 어느 정도 알고 있는가. 바다의 날을 맞아 장보고 대사에 관해 알아보는 것도 이날을 맞는 의미가 더할 듯하다.

2년 전인가. 미국의 유명한 경제잡지 포브스(Forbes)지는 세계를 움직인 100대 인물에 대해 기사화한 적이 있다. 그중에 과연 한국인 몇 명의 이름이 올랐으며, 과연 그 사람은 누구인가. 우리는 항상 반만년 역사를 자랑스럽게 내세우며 무역대국·인터넷 강국을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그 위상만큼 한국인도 많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하지만 거기에 이름을 올린 한국인은 단 한 사람인데 그가 바로 장보고다. 장보고 대사는 우리나라에서는 그 위상에 걸맞은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여기에는 소수 사가(史家)들의 왜곡된 시선이 한 몫을 차지했지만 장보고 대사의 화려한 업적을 가리지는 못했다. 장보고와 동시대 인물인 당나라의 대시인 두목(杜牧)은 그의 대표적 저서인 번천집에서 장보고의 전기를 서술하며 그에 관한 칭송을 아끼지 않았다.

또한 일본 천태종의 3대 좌주인 엔닌(圓仁)스님이 지은 입당구법순례행기에 보면 장보고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송구스러울 정도의 문장으로 표현하고 있다.

근대에 이르러 미국의 유명한 동양사학자이자 외교관인 라이샤워(E O Reischauer)교수가 장보고 대사를 평하기를 이땅에 최초의 그리고 으뜸가는 바다의 정복자로서 그 시대의 동양이 낳은 재벌이고 무역가이며, 시민정치가였고, 또한 애국자였다는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렇다면 장보고가 어떤 인물이기에 이렇게 외국의 문장가·사가들로부터 칭송을 받고 있는가.

장보고는 서두에서도 밝혔듯 청해진을 기반으로 신라의 서남해안에 출몰하는 해적을 완전 소탕하고 청해(淸海)라는 말 그대로 바다를 맑게 했으며 거기에 그치지 않고 해상권을 장악, 국제적인 안목으로 동아시아 항로를 개척하고 통제하면서 중국 동남해안의 항구에서 일본의 출입국 관문소라고 할 수 있는 하카다를 잇는 해상 네트워크를 연결, 해상제국을 건설한 인물이다.

이로 인해 농업에만 머물던 생산체계에서 탈피, 무역을 통해 막대한 국부를 창출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 우리는 세계 10대 무역대국이며, 수출입 물동량의 99.7%를 바다에 의존하고 있다. 이 5대양 6대주로 뻗어 있는 바닷길을 현재 우리의 힘으로 보호하지 못하고 있다.

다른 국가의 해군력에 의지해 우리의 젖줄과 다름없는 해양운송로를 내어주고 있다. 바로 이러한 시점에서 우리는 과거의 역사를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강력한 제해권을 바탕으로 무역권을 장악, 국부를 창출한 장보고 대사는 우리에게 많은 점을 시사한다. 얼마 전 국방부에서는 자주 국방의 기치를 내걸었다.

이를 위한 선결과제로 먼저 우리의 해양 운송로는 우리의 자주적 힘으로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거기에 바로 대양해군의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민족 생존의 문제다. 이러한 시기에 장보고 대사의 역사는 우리에게 좋은 모델이 되고 있다.

바다의 날을 맞아 바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면서 21세기 선진한국의 새로운 장보고 시대를 꿈꾸어 본다.

< 출처 : 국방일보=밀리터리 리뷰, 2003. 5. 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