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종(中宗)과 명종(明宗)이 재위한 조선 중기를 전후해 조선의 화약무기는 큰 변화를 겪는다. 조선 중기의 대형총통들은 천·지·현·황자 총통(天·地·玄·黃字 銃筒)이라고 부른다.

조선 초기의 1세대형 천·지·현·황자 화포(火砲)와 조선 중기의 2세대형 천·지·현·황자 총통은 이름이 비슷하지만 규격이 전혀 다른 무기들이다.

예를 들어 조선 초기의 가장 큰 화포였던 천자화포(일명 장군화통)는 길이 89.5cm, 구경 109mm이지만 조선 중기의 가장 큰 화포인 천자총통은 길이 129~136cm, 구경 118~130mm에 달한다. 이처럼 1555년 무렵부터 대량으로 제작된 조선 중기의 화약무기들은 세종대에 완성된 조선 초기의 총통들보다 화포 구경이 더 커지고 포신의 길이도 더 길어진다.

임진왜란을 40여 년 앞두고 1555~1557년에 기존의 총통보다 훨씬 큰 대형총통이 대량으로 생산된 것은 역사상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미 일본이 조총을 생산한 상태에서 이총통이나 삼총통, 기타 이보다 크기가 더 작은 조선 초기의 소형 총통들은 큰 가치를 가질 수 없었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 수군이 조총으로 무장한 일본 수군을 화력과 사거리로 압도할 수 있었던 것은 보다 대형의 천·지·현·황자 총통 덕택이었다. 그러한 대형총통들이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불과 40여 년 전에 대량으로 생산된 것이다.

임진왜란이라는 민족적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조선 수군의 공이 제일 컸다. 그 조선 수군을 이끈 인물은 이순신 장군이다. 이순신 장군의 수군을 물질적으로 뒷받침한 것은 판옥선과 대형총통들이다. 그 판옥선과 대형총통들이 모두 명종 10년(1555년)을 전후해 개량·개발·제작된 것이다. 과장해서 말하면 임진왜란의 승패는 전쟁이 발발하기 40여 년 전에 이미 결정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 초기의 화약무기를 집중적으로 연구·재현한 인물이 채연석 항공우주연구원 원장이라면 조선 중기의 화약무기를 집중적으로 연구한 인물은 해군 충무공수련원의 최두환 연구실장이다.

1998년 9월15일, 최실장과 육군사관학교 관계자들은 육사 연병장에서 복원 제작한 천자총통으로 대장군전(大將軍箭)을 발사하는 실험을 했다. 천자총통의 발사체인 대장군전은 길이가 2m46cm이며 지름이 10cm가 넘어 화살이라기보다 나무기둥에 가깝다. 실험 당시 천자총통에서 발사된 대장군전은 400m를 넘게 날아간 것도 모자라 육사 연병장 외곽의 화강암 석축을 80cm 깊이로 뚫고 들어갔다.

실험을 참관한 당시 천용택(千容宅)국방부장관은 결과에 놀라 “이 정도 위력이라면 성곽을 파괴하는 공성전에도 사용할 수 있겠다”고 감탄했다고 한다.

< 출처 : 국방일보=밀리터리 리뷰, 2003. 10. 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