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포드 행정부와 부시 행정부에서 두 번에 걸쳐 미국의 국방장관을 지낸 도널드 럼스펠드는 군 관계자 입장에서 연구대상 인물이다. 그런 럼스펠드에 관한 평전, ‘럼스펠드, 개인적 초상화’가 미국에서 곧 발매될 예정이다. 저자는 부시 행정부의 일방주의 대외정책에 강력한 영향력을 끼쳐온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의 한사람인 미지 덱터로, 럼스펠드와의 오랜 친분을 바탕으로 글을 썼다. 미국의 국방정책을 이해하는 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는 럼스펠드 평전을 김재명 국제분쟁지역 전문기자가 미리 입수, 주요 내용을 요약했다.〈편집자 주〉

파월 국무장관과는 제로섬 게임?

부시 행정부 출범 초기부터 워싱턴 정가에서는 럼스펠드-파월 두사람이 제로섬 게임(zero sum game)을 펼치고 있다고 여겼다. 둘 가운데 누군가 패배하지 않는 한 이길 수 없다고 보았다. 많은 사람들은 이라크 전쟁에서 럼스펠드의 승리는 콜린 파월 국무장관의 패배로 여겼다. 그런데 5월 초 이라크 전후 복구 행정을 맡기로 한 퇴역 장군 제이 가너가 물러나고 전직 대사 출신의 외교관 폴 브레머가 그 자리를 메우게 됐다. 럼스펠드가 적극 밀었던 제이 가너는 이라크의 복잡한 행정처리를 할 능력이 부족하다는 게 드러났다. 폴 브레머는 네덜란드 주재 미 대사를 지냈고, 국제컨설팅 조직인 ‘키신저 협회’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워싱턴 정가에서 쑥덕공론(gossip) 만들기에 이골이 난 사람들은 “브레머의 지명은 콜린 파월의 국무부가 럼스펠드의 펜타곤을 눌러 이겼다는 사실을 뜻한다”고 단정했다.

그러나 럼스펠드는 “처음부터 제이 가너 장군은 아주 짧은 기간만 일하기로 했다”고 설명한다. 능력 부족으로 물러난 게 아니라는 얘기다. 제이 가너의 사퇴와 폴 브레머의 지명이 무엇을 뜻하든 이라크 전후 통치는 럼스펠드를 비롯한 전쟁계획자들이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어렵고 복잡한 사안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외교와 군사는 기본발상부터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떠올리면, 국무부와 국방부 사이에는 누가 장관이든 간에 어느 정도 충돌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럼스펠드-파월에 관한 한 두 부서의 갈등은 제도적인 것이라기보다 두 사람 사이의 파워게임으로 받아들여졌다.

2002년 9월 부시 미 대통령이 유엔에서 이라크 제재를 둘러싼 국제사회의 지지를 호소했을 때, 럼스펠드와 그의 펜타곤 매파들이 파월에게 패배한 것으로 여겨졌다. 같은 맥락에서 유엔 안보리가 부시의 이라크 무력제재 요구를 거절하고 미국이 단독으로 이라크 자유작전(Operation Iraqi Freedom)을 펼쳤을 때 워싱턴의 정치평론가들은 “럼스펠드가 파월을 이겼다”고 단정했다.

그것은 게임이었다. 어떤 이들은 럼스펠드를 위해 열심히 플레이했고, 또 다른 이들은 파월을 위해 뛰었다. 럼스펠드를 흠집 내려는 다양한 종류의 말이 미 국무부와 그 주변에서 ‘익명의 정보원(anonymous sources)에 따르면…’이라는 식으로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럼스펠드는 그런 게임에 끼어들려 하지 않았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와 파월은 내가 국방장관으로 일하던 1970년대 중반 파월이 다른 일행을 이끌고 처음 펜타곤에 들어왔을 때부터 친한 사이였다. 그때 그는 대령이었다”.

럼스펠드는 이어 “우리 두 사람은 사적으로 좋은 인간관계를 맺고 있고 공무상으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거의 날마다 아침이면 백악관에서 만나 인사를 나눈다. 그는 그 나름대로의 세계관을 지니고 있고 나도 마찬가지다. 요점은 우리 두 사람은 매우 강한 리더십을 지닌 대통령을 위해 함께 일한다는 점이다. 어떤 정책결정이 내려지면 사람들은 ‘그것은 파월의 것이니’ 또는 ‘럼스펠드의 것이니’라는 말을 한다. 그러나 사실은 부시 대통령이 내리는 결정이다. 부시 대통령은 매우 단호한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럼스펠드-파월 두 사람의 개인적 관계가 어떻든 역사가 빅터 D 핸슨이 최근 지적한 말을 상기하고 싶다. 그는 “럼스펠드 국방장관의 군사적 업적은 파월 국무장관에게 다른 어느 국무장관이 누렸던 것보다 더 유리한 외교적 지렛대를 제공한다. 그의 강력한 미군 병력은 신속하고 예상을 뛰어넘는 작전으로 이동한다. 이는 파월로 하여금 굽실거리는 외국 방문객들을 맞도록 한다”고 분석했다.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현재 이라크의 혼란스러운 사태와 관련해 비판을 받아왔다. 미군은 이라크 무장세력으로부터 공격을 받고 사상자를 내고 있다. 전쟁은 사실상 끝나지 않은 것인가. 곳곳에서 벌어지는 폭력과 약탈행위는 어떻게 된 것인가. 무슨 까닭에 미·영 점령당국은 이라크인들에게 전기 공급을 제대로 못하는 것인가. 국제 구호기관들의 활동은 왜 지지부진하고 혼란이 이어지는가.

“범죄율 비교하면 바그다드는 안정”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이렇게 설명한다. “이라크 전쟁은 속도가 너무 빨랐고 따라서 전후처리 문제는 뒤로 미뤄졌었다. 우리의 목표는 바그다드 점령과 후세인 체제 전복이었다. 사담 후세인은 전쟁 직전에 5만에서 10만 명에 이르는 죄수를 감옥에서 풀어주었다. 이들을 우리가 찾아내려면 시간이 걸린다. 후세인에게 충성을 바치는 바트당 잔당이 전 공화국수비대원·사담 페다인(민병대)과 더불어 게릴라 활동과 저격수로 나서고 있다. 여기에다 이란 국가수비대(National Guard)를 비롯한 외국 무장세력이 국경을 넘어와 혼란을 부채질하는 중이다”.

럼스펠드는 이런 이라크 혼란상을 비판자들이 과장하는 것이 불만이다. 그는 “지금 바그다드의 상황은 만족스러운 모습은 절대 아니다. 그러나 미국 도시들에서 벌어지는 살인·강도·방화 등 강력범죄들과 비교한다면, 그리고 인구 500만에 이르는 대도시 바그다드의 크기를 감안한다면, 바그다드는 세계 어느 도시 못지않게 안정적인 도시라 말할 수 있다”고 말한다.

후세인이 가지고 있다던 화학무기를 비롯한 대량살상무기(WMD)는 어떻게 된 것인가. 럼스펠드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우리 미·영 연합군이 이라크에 들어가기 앞서 그들이 모두 파기했을 수도 있고, 아직 우리가 찾아내지 못했을 수도 있다. 맹세코 이라크 안에 여전히 대량살상무기가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고급 정보원들도 여럿 있다. 그들이 지금도 그런 주장을 되풀이하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사담 후세인의 운명이 어떻게 됐는지 모르는 것처럼…”.

이라크 전쟁 승리 뒤 아직도 혼란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럼스펠드는 이 혼란이 승리 뒤의 일시적인 것이라 여긴다. 이라크에 얼마나 오래 미군이 주둔해야만 할까. 그리고 어느 정도의 병력이 주둔해야 할까. 이런 질문에 대해 럼스펠드는 답변하지 않는다. 언제쯤 얼마쯤이라는 식으로 추측하려 하지도 않는다. “그 문제는 부시 대통령만이 대답할 사안이라는 얘기다.

<뉴욕=김재명 국제분쟁지역 전문기자>

< 출처 : 국방일보=밀리터리 리뷰, 2003. 10. 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