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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는 한강을 잃지 않았다

현행 국사교과서는 중학교용이나 고교용이나 가릴 것 없이 서기 475년 백제가 장수왕이 이끄는 고구려에게 한강 유역 전체를 상실했다고 하면서 이 즈음 만주와 한반도 강역을 아주 똑같은 지도로 싣고 있다.

이 지도를 보면 고구려는 서해안의 온양만과 동해안의 영일만을 동서로 가르는 광활한 지역까지 남쪽으로 진출한 것으로 돼 있다. 이 지도만 보면 신라와 백제는 북쪽에서 죄어오는 고구려에 숨통이 막힐 정도로 찌그러진 깡통 모습을 하고 있다.

한국 고대사학자 대부분은 국사교과서처럼 475년 전쟁 결과 백제는 고구려에 한강 북쪽은 물론이고 그 남쪽도 잃었다가 약 80년 뒤인 서기 551년 신라군과 합동 작전을 개시한 백제가 이를 탈환했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다.

물론 475년 전쟁 당시 백제는 비록 한성이 무너지고 개로왕과 그 일족이 몰살당했을 망정 한강 유역을 상실하지는 않았다는 반론이 있기는 하지만 별다른 반향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기존 통설을 만든 사람들이 이병도를 필두로 이기백씨 같은 이른바 '거물'들이니 반박하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주 이상한 것은 기존 통설이 백제가 한성을 함락당하고 도읍까지 웅진(공주)으로 옮겼으므로 한강 유역 또한 고구려에 빼앗겼으리라는 막연한 선입관에서 나온 것일 뿐 이를 뒷받침할 만한 결정적인 증거가 그 어디에도 없다는 점이다.

오히려 그보다는 기록을 들춰볼 때 백제는 475년 한성 함락 이후에도 한동안 한강 유역을 여전히 장악하고 있었다는 증거만 무수히 쏟아지고 있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동성왕 4년 기록을 보면 "말갈이 한산성을 깨뜨렸다" 하고 이듬해에는 "왕이 사냥을 나갔는데 한산성에 이르러 군사와 백성을 위로했다"고 하며 같은 왕 21년조에는 "가뭄이 들었는데 한산 사람중에 고구려로 도망해 들어간 이가 2천명이었다"고 하고 있다.

또 무령왕 7년 겨울 11월에는 고구려 장군 고로(高老)가 말갈과 공모해 한성을 치고자 했다 하며 같은 왕 23년조에는 왕이 한성으로 행차했다는 기록도 있다.

한성은 두말할 것 없이 475년 전쟁에 고구려에 함락된 백제 왕도이며 한산 또한 이미 한성 도읍 때에도 고구려 정벌을 위한 백제의 전진기지였음에 미루어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으나 한강 이북 어딘가에 있었음은 틀림없다.

이런 기록들은 백제가 475년 전쟁 이후에도 적어도 수십년 동안은 고구려에게 빼앗긴 적이 없었다는 명백한 증거이다.

그런 증거는 또 있다. 백제는 동성왕 17년 8월과 무령왕 즉위년 11월에 각각 치양성(雉壤城)과 수곡성(水谷城)이라는 곳에서 고구려와 전투를 벌이고 있다. 수곡성과 치양성은 백제의 한성 도읍기에 이미 빈번히 백제와 고구려가 싸우던 곳이다.

한성 도읍기 두 나라 국경이 한강에서 북쪽으로 훨씬 올라간 임진강 혹은 황해도 일대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으니 웅진 도읍기 수곡성과 치양성이 날개를 달아 어디론가 훌쩍 날아갔다면 모를까 위치는 변동이 없다.

이런 것들 말고도 475년 전쟁 이후에도 백제가 한강 유역을 상실하지 않았다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가 있다.

고구려 3만 대군이 왕도로 쳐들어오자 백제 개로왕은 아들(혹은 동생)인 문주를 신라에 보내 구원병을 얻어오게 한다. 이에 따라 문주는 신라 자비왕에게 1만명을 얻어 한성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한성은 이미 고구려군의 말발굽에 쑥대밭이 돼 있었다. 이 대목을 「삼국사기」 백제본기 문주왕 원년조에서 "고구려군이 비록 물러갔으나 성은 함락하고 왕(개왕)은 죽었으므로 드디어 즉위했다"고 하고 있다.

여기서 분명히 고구려군은 한성을 함락시키고 개로왕을 죽인 다음 물러갔다고 했다. 이는 한성 함락 뒤 고구려군이 그곳에 진주하지 않았다는 명백한 증거이다.

또 다른 기록을 보자. 문주는 한성을 떠나 남쪽으로 달려 웅진(공주)에 정착한다. 재위 불과 4년만에 권신 해구에게 암살당하는 문주왕 재위 때 「삼국사기」 기록을 읽어내려가다 보면 재위 2년째인 476년 2월 대목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나온다.

"대두성(大豆城)을 수리하고 한강 이북의 백성들을 옮겼다"

대두성이 어디인지 확실하지 않으나 한강 이북 백성들을 이곳으로 옮겼다 함은 웅진 시대에도 한강 남쪽은 물론이려니와 그 북쪽조차 여전히 백제 수중에 있었음을 보여 주는 결정적인 대목이다.

이처럼 무수한 증거가 있음에도 어찌된 셈인지 실증, 실증을 외치는 학계는 이런 기록들은 가짜라느니, 한강 유역 상실과 함께 한강 유역 지명들이 대거 남쪽으로 밀려내려왔다는 소설같은 상상력을 가미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리고 있다.

백제는 475년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패하면서 한강 유역을 몽땅 상실하고는 한반도 서남쪽 귀퉁이 소국(小國)으로 쪼그라들고 말았노라고...

2001-07-22 00:0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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