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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한강 상실, 그 희한한 등식

앞서 한국 고대사학계의 일반적 견해와 달리 백제는 475년 전쟁에서 고구려에 대패해 수도 한성이 함락되고 개로왕을 비롯한 왕족이 몰살되다시피 했음에도, 적어도 무령왕 재위(501-523년) 때까지 한강 유역을 상실하지 않았다는 많은 증거를 「삼국사기」 기록을 통해 살펴보았다.

이런 기록들이 백제는 475년 이래 신라 진흥왕과 함께 대대적인 고구려 공략에 나서게 되는 551년까지 약 80년 동안 한강 유역 일대를 고구려에 점령당해 있었다고 보는 한국 고대사학계의 많은 이에게 걸림돌이 되고 있음이 분명하다.

차를 타고 달리기 위해서는 가로대는 들이받아 부수어 버리든지 치워야 한다. 마찬가지로 '백제=한강 유역 상실'이라는 등식을 만들기 위해서는 이를 가로막는 그렇지 않은 증거들을 어떻게든 걷어내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 학계는 어떤 방법을 썼을까.

첫째, 백제가 475년 전쟁 이후에도 한강 유역을 여전히 점령하고 있었다는 기록들을 모조리 가짜라고 몰아붙이는 아주 간단한 방법이 있다. 둘째가 아주 기발한데, 이른바 '지명 이동설'로 설명한다. 즉 백제는 한강 유역을 상실하고 난 뒤 웅진으로 밀려 내려오면서 한강 유역에 있던 지명조차 끌고 내려왔다는 것이다.

첫번째 견해를 대표하는 인물이 한국실증사학의 대부라는 이병도. 그는 백제가 475년 이후에도 한동안 한강 유역을 상실하지 않았다는 「삼국사기」 기록들을 "신빙성이 없다"는 단 한 마디로 걷어찼다.

1977년 출간한 「국역 삼국사기」(을유문화사 펴냄)라는 「삼국사기」 번역해설서에서 이병도는 동성왕 재위 4년째 9월에 "말갈이 한산성을 습격해 깨뜨리고는 300 여호(戶)를 사로잡아 돌아갔다"는 기록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때 (한강 유역을 포함하여) 죽령(竹嶺), 조령(鳥嶺)에서 차령산맥에 이르는 일대가 대체로 제려(濟麗. 백제와 고구려-필자 붙임)의 국경을 이루고 있었으므로, 여기에 이른바 한산성은 분명히 백제의 영토가 될 수 없었다. 이하에도 백제가 마치 한강 유역 일대를 점유하고 있는 것 같은 기사가 자주 나오는데 모두 그 신빙성이
없다."

이처럼 이병도는 한강 유역을 완전히 상실했다고 철석같이 믿었을 뿐만 아니라 이에 반대되는 「삼국사기」 기록은 전부 가짜라고 잘랐다. 이는 제8대 고이왕대 이후 「삼국사기」 기록은 신뢰한 것으로 알려진 이병도가 실은 그 이후 기록에 대해서도 얼마나 극도의 불신을 보내고 있었는지를 잘 보여 주는 대목이다.

두번째 '지명 이동설'은 이기백 전 서강대 교수가 리더격이다. 즉 그는 웅진 도읍기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한성이 지금의 충남 직산으로 이동해 왔으므로 동성왕과 무령왕이 행차했던 한성 또한 지금의 서울 혹은 광주 일대가 아니라 실은 충남 아산 일대의 직산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 교수는 그러한 근거로 「삼국유사」에 직산을 위례성이라고 기록하고 있음을 들었는데 많은 학자가 이를 따르고 있다.

하지만 이런 설명은 첫째, 한성이 이동했다는 증거가 그 어디에도 없을 뿐더러, 둘째 설사 직산이 위례성으로 전해지고 있다 한들 그것이 곧 지명 이동한 결과라는 증거는 될 수 없으며 셋째, 설혹 한성이 이동해 왔다 해도 한성 도읍기 한강 북쪽에 있었음이 확실한 수곡성과 치양성, 한산성 따위의 다른 지명도 모조리 한성을 따라 한강 남쪽 어딘가로 이동했다는 추정을 결코 뒷받침 해 주지 못한다.

요컨대 기록을 가짜로 본 이병도나 땅이 축지법을 썼다고 본 이기백 교수 가릴 것 없이 실증, 혹은 엄격한 사료비판이라는 이름 아래 실은 사료를 지극히 자의적으로 해석했을 뿐이다.

2001-07-22 00: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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