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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을 두 번 빼앗긴 성왕 - 1

백제는 서기 660년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에게 멸망하기까지 한강 유역을 단 한 번도 상실하지 않았는가? 물론 그렇지는 않다.

진흥왕을 보좌하면서 신라를 삼국의 패자로 만든 인물로 거칠부(居柒夫)가 있다.

진흥왕 6년(554) 신라 역사서인 「국사」(國史)를 편찬한 거칠부는 지략이 뛰어난 장군이기도 했는데 그의 행적은 「삼국사기」에 열전 형태로 남아 있다.

그의 열전은 진흥왕 시대를 연 또 다른 축인 이사부(異斯夫)와 탈해왕 때 우시산국(지금의 울산 일대)과 거칠산국(부산)을 신라에 병합한 거도(居道), 수나라 100만 대군을 물리친 을지문덕과 함께 묶여 있다.

거칠부 열전 한 대목을 보면 신라와 백제 합동군에 의한 그 유명한 한강 유역의 대(對) 고구려 진격 사건이 다음과 같이 나온다.

"(진흥왕) 12년(551) 왕이 거칠부를 비롯한 8장군에게 백제와 함께 고구려를 치게 했다. 백제는 먼저 평양(平壤)을 격파하고 거칠부 등은 승세를 몰아 죽령(竹嶺) 이북, 고현(高峴) 안쪽 10개 군을 얻었다"

여기서 평양은 당시 고구려 수도인 지금의 평양이 아니다. 어디인지 확실하지는 않으나 평양 남쪽, 그러니까 지금의 황해도 일대 어느 곳에 있었고 서기 371년 백제 근초고왕이 이끄는 백제군에 고구려 고국원왕이 전사한 남평양(南平壤)을 말한다.

이 기록을 통해 서기 551년 백제와 신라가 대대적인 고구려 공습 작전을 벌인 결과 백제는 황해도 일대까지 미치는 한강 하류 유역을 수복했고 신라 또한 한강 중.상류 유역을 점령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거칠부 열전이 기록한 이 사건이 「일본서기」 흠명천황(欽明天皇) 12년 (551)조에도 나온다. "이 해에 백제 성명왕(聖明王=성왕)이 몸소 신라와 임나 두 나라 군대를 이끌고 고구려를 쳐 옛 땅인 한성(漢城)을 얻은 다음 또 나아가 평양을 치니, 무릇 6군(六郡) 땅으로 마침내 옛 땅을 찾았다"

신라와의 연합 진공을 통해 백제가 얻은 전과가 더욱 뚜렷해진다. 두 기록이 정확하다고 볼 때 551년 전쟁 결과 백제는 옛 도읍인 한성을 비롯한 한강 하류 유역 6 개 군을, 신라는 한강 중.상류 유역 10군 땅을 각각 장악한 것이 된다.

그런데 고구려 격파라는 공동 목표를 향해 잘 나가는 듯하던 백제와 신라의 공조 체제는 2년 뒤인 553년 백제로서는 허를 찔렸다고 할 수밖에 없는 신라의 전광석화같은 한강 하류 지역 점령사건으로 깨지고 만다.

이 사건은 「삼국사기」 '신라본기' 진흥왕14년 7월조와 '백제본기' 성왕 31년 7월초에 거의 비슷하게 실려 있는데 "(신라가) 백제의 동북 지방을 취해 신주(新州)를 설치하고 아찬(阿粲) 무력(武力)을 군주(軍主)로 삼았다"고 하고 있다.

여기 등장하는 무력은 김유신의 할아버지.

어떻든 뜻밖의 신라군 역습에 백제는 그 옛 터전인 한강 하류 유역을 수복한 지 겨우 2년만에 신라에 도로 내주고 만다.

이 사건을 「일본서기」 흠명천황 12년(553)조에는 "이 해에 백제가 한성과 평양을 버리자 신라가 한성에 들어갔다"라는 식으로 백제의 패배를 은폐하고 있다.

신라의 배신에 분개한 성왕은 이듬해 군사 3만명을 이끌고 대대적인 신라 침공에 나서지만 관산성 전투에서 거의 모든 군사가 몰살당한 것은 물론 왕 자신까지 신라군에 포로가 돼 참수되는 참혹한 패배를 맛보게 된다.

이 사건 이후 백제는 멸망할 때까지 온조가 건국했고 500년 동안이나 도읍으로 삼았던 한강 하류 유역은 영영 밟아 보지 못한다.

어떻든 성왕 재위 말기에 있었던 이런 기록과 사건들을 통해 백제가 비록 2년이라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한때 한강 하류 유역을 탈환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백제는 과연 언제 한강 유역을 잃었는가? 지금까지 학계에서는 대체로 서기 475년 장수왕이 이끄는 고구려 3만 대군에 왕도 한성이 무너진 다음 551년까지 약 80년 동안 이 지역은 고구려 수중에 있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551년 백제가 한강 유역을 탈환했다는 기록이 곧 475년 전쟁 때 그곳을 잃었다는 증거는 결단코 될 수 없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그곳은 적어도 무령왕 말년인 서기 523년까지만 해도 여전히 백제의 수중에 있었다.

2001-07-22 00: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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