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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용 역사학과 임신서기석

역사학은 태생적으로 어용일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다. 특히 국사편찬을 왕실 혹은 국가가 관장한 전통 동양사회에서는 더욱 그랬다.

역사학의 이런 특성은 근.현대 한국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박정희 유신정권 아래서 많은 사학자가 유신 이데올로기를 창출하고 합리화하는 데 동원됐다. 그들은 유신에 이용당하기도 하고 그것을 이용하기도 했다.

유신과 역사학의 유착관계를 가장 잘 보여 주는 사례로는 이순신을 성웅(聖雄)으로 추앙한 것과 함께 신라 화랑을 순국무사(殉國武士)의 화신으로 치켜올린 것을 들 수 있다.

이순신은 군인으로 전장에서 장렬히 산화했다. 화랑 출신들인 김유신과 관창, 사다함 또한 조국을 위해 전쟁터에 몸을 던졌다. 태생이 군인인 유신정권 눈에 이순신과 화랑들은 국민들에게 국가를 위해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하도록" 자극하기에 안성맞춤인 소재였다.

이런 유신정권의 욕구에 일부 역사학자가 가담했다.

신라 화랑을 고리로 유신정신 창출에 나섰던 대표적 인물이 동국대 총장과 초대 한국정신문화연구원장을 역임한 리선근(李瑄根.1905-1983)이었다.

그는 유신정권이 한창 활개치던 1974년 「화랑도와 삼국통일」(세종대왕기념사업회)이라는 문고본을 내놓는다.

이 책 머리말은 '나는 이 책을 왜 쓰는가'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데 여기서 리선근은 "저 삼국통일의 앞뒤 사실과 이 대업을 성공으로 이끈 신라 때의 조상들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 봄으로써 우리 모두가 심혈을 기울여 염원하고 있는 남북통일의 기본 방향을 찾아 설정하는 데 훌륭한 표본이 되고 거울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고 하고 있다.

국민교육헌장의 한 구절을 연상케 하는 이 한 대목만으로도 그가 하필 왜 유신치하 때 화랑정신을 들고 나왔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는 궁극적으로 대한민국 국민을 화랑같은 순국무사로 개조하고자 했고 그가 말한 삼국통일은 남북통일이었다.

238쪽짜리 이 책의 한 항목은 '국난에 앞장선 화랑들'이라는 제목 아래 김유신과 사다함, 관창 등의 전기를 싣고 있다.

화랑을 순국무사의 전형으로 설정한 리선근은 그런 증거의 하나로 신라시대 금석문 하나를 제시하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임신서기석(壬申誓記石)이다.

1934년 경주 현곡면 금장리 석장사터 언덕에서 발견됐다는 이 금석문을, 리선근이 그랬던 것처럼, 현행 국사교과서 또한 나라와 임금을 위한 화랑들의 굳은 충성의 맹세쯤으로 가르치고 있다.

중학교 국사교과서는 상권 39쪽 '신라의 성장'이라는 대목에서 신라의 삼국통일 원동력의 하나로 화랑도를 지목하면서 그 옆에다가 임신서기석 탁본 사진을 싣고 있다.

국사교과서의 이런 영향때문인 듯 일반인 가운데 많은 이가 임신서기석이라는 키워드를 던지기만 하면 대뜸 화랑이라는 대응어를 내놓는다.

그렇다면 임신서기석은 과연 리선근이나 국사교과서가 말하는 것처럼 국가에 대한 충성을 맹세한 화랑들의 서약문인가? 문제는 임신서기석이 화랑과 관계있다는 증거를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는 점에 있다.

정통 한문이 아니라 어순을 국어에 뜯어맞춘 이른바 이두식 한문인 임신서기석 전문을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임신년(壬申年) 6월 16일 두 사람이 함께 맹세하며 쓴다. 하늘 앞에 맹세하노니 지금부터 3년 뒤에 충성의 도(道)를 확실히 잡고 과실이 없기를 맹세한다. 만약 이 맹세를 어기면 하늘로부터 큰 죄를 얻게 됨을 맹세한다. 만약 나라가 불안하고 세상이 크게 어지러워지면 행해야 할 것을 받아들임을 맹세한다. 3년 안에 시경(詩經), 상서(尙書), 예기(禮記)와 춘추전(春秋傳)을 습득하리라 맹세하노라".

이처럼 비문 그 어디에도 이것이 화랑의 흔적이라는 단서는 없다.

무엇보다 임신서기석은 임신년이라는 간지만 달랑 나와 있고 절대 연대를 밝혀주는 문구가 없어 언제 만들었는지조차 불확실하다. 신라에 화랑도가 설치됐다는 진흥왕 이전일 수도 있고 화랑제도가 폐지된 후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리선근은 물론이고 국사교과서까지 임신서기석은 신라 화랑들의 맹세라고 억지로 끼워맞췄다.

왜 이런 현상이 빚어지고 있을까? 임신서기석을 화랑과 연계시킨 이가 유신정권 이전에도 있었다 할지라도, 적어도 그런 담대한 추정이 국사교과서에까지 실리게 된 결정적 계기는 아마 화랑을 순국무사의 화신으로 설정하고자 한 유신정권과 여기에 봉사한 어용 역사학의 야합에 있었을 것이다.

2001-07-22 00:3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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