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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를 떠도는 일본사의 망령 - 1

「삼국사기」 '신라본기' 나해왕(奈解王) 14년(서기 209) 대목을 보면 유명한 포상 8국(浦上八國)의 난(亂)과 신라에 의한 진압 기
사가 다음과 같이 나온다.

"포상 8국이 가야를 침략하려 하매 가야의 왕자가 와서 도움을 청하므로 왕이 태자 우로(于老)와 이벌찬(伊伐澯) 이음(利音)에게 6부(六部)의 군사를 이끌고 가서 가야를 구원하게 했다. (포상) 8국의 장군들을 쳐 죽이고 그들이 노략질한 (가야인) 6천명을 도로 빼앗아 (가야로) 돌려보냈다"

이들 포상 8국이 그 명칭이 각각 무엇이며 지금의 어디쯤에 있었는지 기록이 부족해 알 수가 없다. 다만 강이나 바다 어귀를 뜻하는 '포상'(浦上)이라는 말 등으로 미뤄 남해안 어딘가에 있던 8개 소국(小國)이 아닐까 학계는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 일이 209년 사건이라는 데 대해 학계 대부분은 인정하지 않는다.

대체로 「삼국사기」 초기기록을 불신하는 우리 학계에서는 이러한 일이 있었음은 인정하는 대신 209년이라는 연대는 부정한다.

신라가 서기 3세기 초반에 남해안 지방까지 진출할 수는 없었으리라는 생각때문이다. 이들에 따르면 이때 신라는 지금의 경주 일원 정도를 장악한 조그마한 정치집단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고대사학계에 횡행하는 낮도깨비 같은 이른바 기년(紀年) 조정, 즉 '「삼국사기」 연대 바로잡기' 작업은 이렇게 해서 생겨난다.

한 가지 사례를 보자. 어떤 이는 포상 8국의 난을 2주갑, 즉 120년 가량을 끌어내려 서기 330년쯤에 일어난 일로 본다. 갑자년이 한 바퀴 도는 데 60년이 걸리므로 120년은 주갑(周甲=환갑)으로 따지면 2주갑이다.

이 학자가 기년 조정한 연대와 「삼국사기」 연대가 왜 하필 하고 많은 숫자중에서도 2주갑 차이가 나야 하는지를 알고 나면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2주갑을 이용한 연대 조정은 다름아닌 일본 고대 정사인 「일본서기」를, 그것도 일본 역사학자들이 연구하는 과정에서 파생된 유산이다.

「일본서기」는 워낙 조작과 꾸밈이 많아 역사기록으로 그대로 인용할 수는 없는 문헌이다. 연대 문제는 특히 더 그렇다.

예컨대 「일본서기」를 보면 초대 천황이라는 신무(神武) 이래 제13대 수인(垂仁)까지 천황의 평균 수명이 120세를 헤아리는 것은 물론 신무가 일본을 건국한 때를 기원전 660년이라 하는 등 황당무계한 이야기로 득실댄다.

하지만 「일본서기」에 나오는 모든 기록이 허황되지는 않은 듯 이 가운데 일부는 「삼국사기」와 겹치고 있다. 이들 두 문헌에 모두 걸치는 기록들은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첫째, 주로 백제와 관련되고 둘째, 「일본서기」기록이 「삼국사기」보다 대체로 2주갑, 즉 120년 가량이 빠르게 나타나며 셋째, 실제 연대는 「삼국사기」가 맞다는 점이 그것이다.

다시 말해 「일본서기」에 기록된 사건의 실제 연대는 「삼국사기」를 통해야만 비로소 바로잡힌다. 「일본서기」는 서기 475년 고구려군에 의한 백제의 한성 함락사건 기록에 가서야 비로소 「삼국사기」와 연대가 일치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어찌된 셈인지 「삼국사기」를 통해 뒤틀린 「일본서기」 연대를 바로잡는 데 쓰인 이른바 기년 조정법이 어느새 물길을 거슬러 「삼국사기」로 치고 들어오는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삼국사기」에 서기 209년으로 기록된 포상 8국의 난을 그 많은 연대중에서도 2주갑을 이용해 120년을 끌어내린 근거는 바로 「일본서기」 연대교정법에서 온 것이며 이런 방식을 「삼국사기」에 처음 도입한 주인공이 일본 학계였다.

2주갑을 이용한 「삼국사기」 기년 조정은 포상 8국의 난에 그치지 않는다.

마치 인간이라는 숙주에 기생해 후손을 번식하는 에일리언처럼 「삼국사기」에 일단 정착한 '2주갑 인하론'은 스스로 자생력을 길러 「삼국사기」 기록 곳곳에 늘어붙었고, '2주갑' 또한 1주갑(=60년), 3주갑(=180년), 4주갑(=240년), 5주갑(300년), 6주갑(=360년) 따위로 증식을 거듭했다.

「삼국사기」중에서도 신라.고구려.백제의 역사를 연대순, 왕 재위 순서대로 기록한 부분을 '본기'(本紀)라고 하거니와 3국 본기중에서도 주갑설을 이용한 연대 끌어내리기는 유독 신라와 백제, 그것도 초기기록에 집중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이는 우리 학계, 특히 고대사학계에 「일본서기」라는 거대한 유령이 배회하고 있다는 단적인 증거다.

「일본서기」가 잉태한 주갑설을 이용한 이른바 「삼국사기」 기년 조정안의 문제점은 무엇보다 연대를 끌어내려야 한다는 뚜렷한 근거가 없을 뿐더러 적용되는 주갑 또한 60년에서 360년에 이르기까지 '엿장수 마음대로'라는 점이다.

「삼국사기」 '백제본기'와 '신라본기' 초기기록 연대를 그대로 인정할 수 없다고 하자. 그렇다고 그 연대를 끌어내려야만 한다거나 또 그것이 꼭 60배수에 맞춰져야 한다는 근거는 없다.

기록은 늘어날 수도, 줄어들 수도 있다. 「삼국사기」 기록도 마찬가지다. 「삼국사기」는 틀릴 수도 있다. 누락과 착오는 어느 기록에나 있다. 하지만 누락이 많고 착오가 있다고 해서 그것이 사료를 믿을 수 없는 증거가 되는 것은 아니다.

「삼국사기」를 보면 백제는 온조왕 이래 의자왕까지 왕이 모두 31명 있었다.

이중에서도 온조 이후 제5대 초고까지는 재위 기간이 평균 50년 안팎이며 더구나 이들이 모두 부자 관계로 왕위를 계승한 것으로 나온다.

이런 기록은 분명 문제가 있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고 해서 백제의 역사가 실제보다 늘어났다고만 간단히 생각할 수는 없다. 오히려 온조 이래 초고왕까지 몇 명의 왕이 있었는데 탈락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 또한 열어 두어야 한다.

1145년에 편찬된 「삼국사기」보다 150년 가량 뒤에 이승휴는 우리 나라 역사를 「제왕운기」라는 대하시로 읊고 있는데 이곳 '백제기'라는 곳을 보면 "돌아보니 (백제사는) 600년하고 78년, 34왕이 천복을 누리었도다"라고 나온다.

백제 역대 왕이 31명이라는 「삼국사기」와 달리 「제왕운기」는 34명이라 하고 있다. 온조 이래 초고 사이에 적어도 3왕이 탈락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신라 또한 마찬가지다. 학계에서는 너나 할 것 없이 건국연대가 기원전 57년이며 초대왕 박혁거세의 재위기간이 60년이라는 기록을 너무 빠르다거나 너무 길다고 해서 믿지 않는다.

z래서 신라사는 실제보다 늘어났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삼국사기」를 그렇게만 볼 수 없다. 오히려 건국연대는 대체로 사실에 가까운데 실제로 있었던 왕 몇 명이 탈락했을 수도 있다.

그렇다는 방증자료를 중국 기록인 「양서」(梁書) '신라전'에서 찾는다. 여기에 이르기를 「삼국사기」 제26대 왕으로 기록된 진평이 30세(世)라고 나온다. 이렇게 보면 「삼국사기」에서 왕 4명이 탈락했을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가능성은 팽개쳐 버린 채 오로지 「삼국사기」는 연대를 늘이기만 했다는 주장이 득세하고 있다.

2001-07-22 04:0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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