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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를 떠도는 일본사의 망령 - 2

그렇다면 우리 고대사 연구가 「일본서기」에 종속됐다는 증거는 주갑설을 이용한 기년 조정 하나뿐인가. 아니다. 부지기수라는 데 문제가 있다.

현행 우리 국사교과서는 백제와 신라가 어엿한 왕국이 된 시기를 각각 고이왕(재위 234-286)과 내물왕(356-402) 무렵이라고 한다. 이는 이병도의 주장을 옮긴 결과인데 문제는 그 뿌리를 어디에 두고 있느냐는 것이다.

검인정 체제인 현행 일본 역사교과서는 어느 것을 막론하고 백제와 신라의 고대국가 성립시기를 4세기 무렵이라고 얼버무리고 있다. 비록 연대 차이가 나지만 이병도가 말한 고이왕 및 내물왕 즈음과 얼추 맞아떨어지고 있다.

제국주의 시대 일본의 동양사 연구자들은 대체로 백제와 신라의 고대국가 성립시기를 각각 근초고왕(재위 346-375)과 실성왕(402-417) 즈음이라고 보았다. 이런 연대관을 이병도는 약간 끌어올렸을 뿐이다. 따라서 이병도가 말하는 고대국가 성립시기와 제국주의 시대의 일본인 연구자들이 말한 그것과 큰 차이가 있을 리 없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일본 학자건 이병도건 이른바 고대국가 성립 이전 시기의 「삼국사기」 기록을 가짜로 몰아붙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일본인 연구자들이 제시한 백제와 신라의 고대국가 성립시기의 판단 근거에는 놀랍게도 「일본서기」라는 유령이 도사리고 있다.

예컨대 일본인 연구자들이 왜 「삼국사기」 '백제본기'의 경우 그 많은 왕중에서도 근초고왕부터 인정했으며 나아가 이를 근거로 백제의 고대국가 성립시기는 이때쯤 된다고 했을까?

백제 왕들중에서도 「일본서기」에 가장 먼저 등장하는 인물이 근초고왕과 그 아들 근구수이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삼국사기」 기록은 「일본서기」에서 확인이 돼야 역사적인 기록으로 인정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한국고대사를 앓게 만든 「일본서기」의 병폐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이른바 '중국병'으로 확대된다. 제국주의 시대 한국고대사 연구를 독점하다시피 한 일본 학자들은 「일본서기」를 「삼국사기」 기록의 진위 여부를 가리는 잣대로 삼는 한편 중국기록들을 동원했다.

「일본서기」는 앞서 지적했듯 5세기 중.후반쯤 인물로 생각되는 웅략천황 즈음까지는 역사적 사실로 인정할 수 없는 기록들로 넘쳐난다. 실제로 5세기 중.후반까지 기술한 어느 일본의 역사서를 보더라도 「일본서기」 기록을 액면 그대로 인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최근 발간된 극우파 중학교 교과서는 예외다).

이런 「일본서기」를 이용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고고학 자료만으로 일본사를 서술할 수도 없으니 중국기록들을 동원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중국기록들을 보면 고대 일본에 관한 기록이 군데군데 나오기 때문이다.

중국기록 말고 한 가지가 더 추가되는데 그것이 광개토왕비 기록이다. 조작 여부로 논란이 많기는 하지만 이 비문에는 왜에 관한 기록이 비교적 많이 등장하고 있다.

요컨대 망탄된 기록으로 가득찬 「일본서기」를 이용할 수 없는 일본 고대사 연구자들의 중국기록 및 광개토왕비에 대한 사료 의존도는 높을 수 밖에 없다. 이 점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마치 주갑설이 그랬듯이 일본 학자들의 이런 '중국기록병'이 이번에도 고스란히 한국고대사 연구로 옮겨왔다는 점이다.

고대 일본에 관한 기록이 그런 것처럼 고대 한국에 관한 기록 또한 각종 중국기록에 남아 있다. 이런 중국기록과 함께 일본에는 「일본서기」가 있듯이 우리에게도 중국기록은 물론이고 「삼국사기」가 엄존하고 있다.

여기서 문제는 일본 고대사 연구자들이 「일본서기」에 대해 역사기록으로서 사망선고를 내린 것처럼 「삼국사기」에도 같은 잣대를 적용했다는 데 있다. 「일본서기」를 믿을 수 없으므로 「삼국사기」도 믿을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 것이다.

일본 학계뿐 아니라 국내 한국고대사학계도 여기에 동조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한 연구자는 국내 고대사학계의 대표적인 「삼국사기」 초기기록 신봉론자인 서강대 이종욱 교수를 공격하기를 "「일본서기」도 초기기록은 믿을 수 없는데 「삼국사기」도 그렇지 않은가"라고 반론을 가할 정도이다.

일본 연구자들은 「일본서기」를 들어낸 곳에 중국기록 및 광개토왕비 기록을 채웠듯이 「삼국사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방법을 대입했다.

일본 고대사에 팽배한 중국병의 대표적인 증거가 신라의 고대국가 성립시기가 내물왕 때라는 주장이다. 이병도 및 그 스승격인 일본인 연구자들이 가장 유력한 증거의 하나로 내세운 것이 바로 중국 고대기록중 「진서」(晉書)에 나오는 내물왕의 사신 파견 기록이다.

즉 「진서」를 보면 내물왕이 재위 26년에 위두(衛頭)라는 사람을 우두머리로 사신단을 진(晉)나라에 파견했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이는 '신라'라는 이름이 중국기록에 공식 데뷔하는 대목이다.

일본인 연구자들은 중국기록에 신라가 내물왕 때에 비로소 등장한다 해서 이 때를 신라 왕국의 실질적인 건국으로 삼았으며 이는 나아가 이 때를 신라의 고대국가 성립시기라고 본 이병도의 주장으로 확대됐다.

이런 설명은 일본학계는 말할 것도 없고 우리 학계까지 얼마나 심각한 중국병에 걸려 있는지를 잘 보여 주고 있으며 아울러 한국고대사학계가 앓고 있는 이런 중병이 실은 일본인 연구자들에게서 말미암았음을 뚜렷이 증거하고 있다.

2001-07-22 04: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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