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회원가입  
Home MR뉴스 무기체계 컨텐츠 신제품 유료존 MR기네스 KNIVES 특수부대 軍뉴스 프리존
천벌과 은혜로 둔갑한 원자폭탄

미국은 1942년 이른바 '맨해튼 계획'에 따라 뉴멕시코주 로스앨러모스 원자폭탄연구소에서 원자폭탄이라는 신형 무기를 비밀리에 개발했다.

대량 살상무기인 이 폭탄은 1945년 7월 16일 뉴멕시코주 남부 앨러모 근처 사막에서 시험 폭파를 거쳤다. 이어 미국은 그해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廣島)에 우라늄 235 폭탄을 투하하고 이어 사흘 뒤인 9일에는 나가사키(長崎)에 플루토늄 239 폭탄을 떨어뜨렸다.

이로 인해 당시 히로시마 인구 34만3000명중 약 7만명이 사망했고 13만명이 부상했으며 가옥 6만2000호는 완파됐고 1만호는 반소 또는 반파됐다. 나가사키가 본 피해는 사망자 2만명, 부상자 5만명, 완전 연소 및 완파 가옥 2만호, 반소 또는 반파 가옥 2만5000호 등으로 대략 집계되고 있다.

이런 수치는 조사기관 혹은 연구자마다 다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원자폭탄이 순식간에 너무나 많은 인명과 재산을 잿더미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여기서 떠오르는 의문 하나. 미국은 왜 하필 원폭 공격 목표지점으로 이 두 도시를 선택했는가? 그것은 군수공장이 밀집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의문을 품고 이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아야만 근.현대 한국이 겪은 최대 비극의 한 단면을 들여다볼 수 있다.

왜 그런가? 첫째 수십만을 헤아리는 피해자 숫자에는 애꿎은 식민지 조선인이 다수 들어 있다. 조선인 희생자는 얼마인가? 아무도 정확한 수치는 모른다. 조사기관마다, 연구자마다 다르고 그것조차 추정치다. 하지만 원자폭탄 투하로 사망한 조선인만 수만명이 되는 것은 분명하다.

문제는 사망자뿐이 아니다. 원폭은 피해자뿐 아니라 그 후손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 러시아 체르노빌 원전 사고를 보면 안다. 국내 원폭 관련 단체에 2001년 현재 등록돼 있는 남한의 원폭 피해자만도 2천200명을 헤아리고 북한은 970명이라고 보고 된 자료가 있다.

그 자신이 원폭 피해자, 혹은 피해자의 후손임을 숨기는 경우가 많은 것을 감안하면 그 숫자는 훨씬 증가한다. (등록된 피해자중 일부가 정말로 원폭 피해를 봤는지는 차치하고라도 말이다)

둘째 조선인 희생자 대부분이 징용 노무자라는 점이다. 앞서 하고 많은 장소중에 원폭 투하 장소로 왜 나가사키와 히로시마가 선택됐는지 알아야 한다고 지적한 것이 이때문이다.

이들 두 도시에는 미쓰비시조선소(현재의 미쓰비시중공업)와 일본제철을 비롯한 군수업체들이 밀집해 있었고 여기에 동원된 노동력 상당 부분을 조선을 비롯해 중국등 외국 징용 노무자들로 채웠다. 물론 외국 노무자중 압도적 다수가 조선사람이었다.

남의 나라 식민지로 전락한 것도 원통한데 식민통치국의 군수물자를 만들기 위해 이국으로 끌려갔다가 원자폭탄 세례까지 맞았으니 비극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원폭 피해는 3년간이나 계속된 한국전쟁의 그것을 능가한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일선 교육현장에서는 어찌된 셈인지 고작 "일본은 원자폭탄을 두들겨 맞는 게 당연했으며 이때문에 일본이 항복하고 우리의 독립이 앞당겨졌다"는 식으로 가르치고 있다.

요컨대 일반 한국사회에 각인된 1945년 원폭 투하사건은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천벌이자 한민족 해방의 직접 도화선이다.

반면 일본사회, 특히 우익 보수계열은 이 원폭 투하사건이야말로 일본은 태평양전쟁 가해국이 아니라 오히려 피해국이라고 선전하기에 더없이 안성맞춤인 소재로 활용하고 있다.

1990년대 들어 일본 사회 전반에 보수주의 물결이 거세지면서 평화라는 구호가 이곳 저곳에서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이보다 더 좋은 말일 수 없는 평화. 하지만 평화라는 말은 유토피아이며 형이상학이다.

여기서 평화를 상징할 수 있는 구체적인 실체, 이것이 바로 평화다 라고 사람들이 느끼고 말할 수 있는 물건이 필요하다. 평화를 외치는 일본 사회는 나가사키와 히로시마를 보라고 했다.

원폭 투하가 있은지 반세기가 흐른 지금 두 도시에는 원폭돔을 중심으로 원폭위령비, 원자폭탄자료관, 평화기념자료관 등이 있는 평화기념공원이 조성돼 있다.

이들 기념관에는 원폭의 참상이 어떤지를 보여 주는 각종 자료가 전시돼 있고 시내 곳곳에는 원폭 투하 당시 앙상하게 무너져 내린 건물도 그때의 참상을 보여 준다는 취지에 따라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하지만 이들 기념관 혹은 파괴 건물 어디에서건 원자폭탄 투하로 일본이 당한 피해만 잔뜩 나열돼 있을 뿐 왜 이런 비극을 불러오게 됐는지에 대한 설명은 좀처럼 찾기 힘들다. 그러면서 다시는 이런 비극은 없어야 한다며 평화를 외친다.

하지만 피해만 나열하는 평화란 기만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일본 사회에서 보수주의 계열은 구제불능이라 치고 우리가 바라보는 원자폭탄 투하사건은 어떠한가? 중고교에서 통용되는 국사 및 세계사 교과서를 들여다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죄없이 끌려간 징용 노무자를 비롯한 우리 나라 사람 수만명이 순식간에 불귀의 객이 됐고 거기서 살아남은 그보다 많은 사람들과 그 후손이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음에도 현행 중고교 국사교과서는 이런 사실을 일언반구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다.

검인증인 세계사 교과서들은 어떤가? 앞서 말한대로 대체로 우리가 겪은 피해에 대한 언급은 없이 많은 사람이 죽었으나 이때문에 일본의 패망이 앞당겨졌다는 정도로만 언급되고 있다.

왜 이런 어처구니없는 현상이 빚어지는가? 우선 우리 국민 절대 다수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 투하가 일본과 미국, 혹은 '위대한 과학자' 아인슈타인이 관계된 일이라는 정도로만 알고 있다. 둘째, 이 분야 전문가가 국내에는 전무에 가깝다.

여성 및 인권운동 차원에서 접근한 이른바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비해 원폭피해 문제는 우리 학계에서도 철저히 관심권 밖에 있다. 일본에 대한 전후보상 운동을 촉발한 첫 도화선은 위안부 문제도 아니요, 징용노무자 문제도 아니요, 사할린동포 문제도 아니었다. 1970년대 손진두 재판이었다. 손진두는 원폭피해자였다.

그럼에도 원폭피해 문제는 학계는 물론이고 일반인의 관심에서도 멀어졌고 이 때문인 듯 중고교 국사.세계사 교과서에서도 아예 누락되거나 본질이 호도된 채 기술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비록 원인에 대한 설명없이 피해만 나열하고 있기는 하나 원폭 투하 당시의 각종 수기나 회상록을 더불어 실으면서 원폭의 참상을, 그리고 기만과 동의어인 평화를 외치는 일본 역사교과서가 그나마 낫다는 생각도 든다.

2001-07-22 04:11:41

덧글쓰기

협력기관 및 업체 : 대한민국 공군 - 대한민국 해군 - 국방일보 - 국정브리핑 - Defense LINK - 군사저널
공정거래위원회 고시 제2000-1호에 따른 안내, 사업자 등록번호 : 220-86-07275
(주)아이엠알코리아, 대표이사 주재은, 전화 (02) 578-8278 (■ 잡지 취급하지 않습니다. 문의사절합니다.), 통신판매업 허가 : 서초 제 3300호
광고문의 - 개인정보 취급방침 - MR 이용자 약관 - 회원관련문의 - 탈퇴신청
Copyright ⓒ 1998-2017 (주) iMR Corea.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