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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대와 위안부 사이

일본 중학교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가 대두되면서 우리 정부는 일본 문부성 검인정 통과 교과서 8종에서 모두 35개항의 역사서술에 문제가 있다며 이의 시정을 촉구하는 요구서를 일본 정부에 발송했다.

지금은 시들해진 느낌이지만 덩달아 국내 언론과 역사관련 단체 및 시민단체에 이르기까지 일본을 비난하는 각종 성토대회가 난무했고 몇몇 국회의원은 일본으로 날아가 삭발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들 교과서중에서도 극우보수 성향이 농후한 '새로운 역사를 만드는 모임'이 제작한 후쇼샤(扶桑社) 간행 역사교과서는 왜곡시정 대상의 표적이 됐다.

우리 정부가 지적한 35개 항목은 이른바 임나일본부설을 필두로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 문제에 이르기까지 고대 이래 근.현대까지 걸쳐 있는데 한 마디로 '역사적 진실, 혹은 사실의 왜곡'으로 요약될 수 있다.

어느 한쪽이 상대방을 공격하거나 비판하고, 또 그런 주장이 설득력을 지니기 위해서는 다른 무엇보다 도덕적 우위가, 그것도 월등하게 있어야 한다. 그 스스로가 깨끗하지 못하면서 상대의 도덕성을 흠잡기는 곤란하다.

이런 점에서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를 비판하고 있는 우리는 어떤지 냉철하게 짚어 볼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우리 역사교과서에 대한 관찰과 분석이 필요하다.

여기서는 35개항에 걸친 왜곡시정 대상 항목 가운데 우리측이 특히 분개한 이른바 위안부 강제동원 문제 하나에만 초점을 맞춰 보기로 한다.

우리 정부는 많은 일본 교과서가 위안부 강제동원 사실을 아예 누락시키거나 위안부 동원 과정에서 정부권력이 개입한 사실을 지적하지 않았음을 문제삼는 한편 나아가 위안부 동원에 대해서는 별도의 장(章)을 마련해 기술하라고 했다.

여기서 검인정 체제인 일본 교과서와는 달리 국가가 편찬한 단 한 종류의 교과서만 존재하는 우리 국사는 이른바 위안부를 어떻게 기술하고 있는가.

먼저 중학교 교과서다. 이 책 하권 제5장은 '민족문화 수호운동'이라는 제목인데 이중 '일제의 민족말살 정책'이라는 소항목을 보면 "이에 많은 한국의 청.장년들이 각지의 전선에서 희생되었다. 이때 여성까지도 정신대라는 이름으로 끌려가 일본군의 위안부로 희생되기도 하였다"(151쪽)고 나온다.

이른바 위안부 동원 만행에 대한 기술은 이것이 처음이자 끝이다. 위안부가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도 없고 그들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도 없다.

다음은 고교 국사교과서. 이른바 위안부는 하권 136쪽 '민족 말살 통치'라는 소제목 아래 역시 단 한 군데에 등장하는데 이 대목을 그대로 옮겨 본다.

"또, 징병제와 징용령에 의해 일본, 중국, 사할린, 동남아 등지로 강제 동원되어 목숨을 잃었으며 여자들까지도 정신대라는 이름으로 끌려가 일본군의 위안부로 희생되기도 하였다"

중학교 교과서 관련 기술과 차이나는 대목을 찾을래야 찾을 수가 없다.

위안부에 대한 서술이 턱없이 모자라는 것은 물론, 읽을수록 가관인 것은 이처럼 간단한 기술에서조차 두 교과서 모두 어처구니없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 교과서는 정신대와 위안부조차 구별하지 못하고 있다. 정신대는 태평양전쟁 즈음 조선총독부가 강제동원한 인력에 대한 일반 및 집합명사로서 여성뿐 아니라 처음에는 남자도 포함됐었다. 따라서 여성까지도 정신대라는 이름으로 끌려가 일본군 위안부로 희생됐다는 기술은 자던 소도 깨울 만한 구절이다.

정신대와 위안부는 다른 차원에서 봐야 한다는 주장은 이미 강만길 상지대 총장을 비롯한 여러 학자가 논문에서 발표한 바가 있다.

물론 위안부 피해자중 일부는 일본내 비행장에 끌려간 정신대 출신이었다는 증언이 있기도 했다. 비행장에 정신대로 끌려갔다가 도망치다 붙잡혀 위안부가 됐다고 증언한 고 김학순 할머니가 여기에 해당한다.

하지만 '정신대 여성'이 곧 위안부였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고 이를 입증해 줄만한 문건도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고 있다.

만약 우리 교과서 주장대로 정신대가 곧 위안부라면 이는 갖은 교묘한 말로 위안부 동원에 대한 정부개입 사실을 회피하려는 일본 정부로서는 엄청난 치명타가 된다.

왜냐하면 정신대는 조선총독부가 정식 법령에 따라 징발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법적 기반'을 갖는 정신대가 곧 위안부라면 위안부 동원에 일본이 정부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관여했다는 명명백백한 증거가 되며 이는 필연적으로 일본 정부에 의한 피해 보상 책임을 수반하게 한다.

하지만 정신대가 곧 위안부임을 입증하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이런 점들을 살펴볼 때 앞서 제기한 의문, 즉 일본 정부에 대해 위안부 강제동원 사실을 기술하되 별도의 장을 마련해 자국 학생들이 알도록 하라고 요구하는 우리 정부가 과연 일본 정부에 대해 얼마나 도덕적 우위를 갖는지는 자명하게 드러난다.

다시 말해 우리는 우리 교과서에조차 위안부 피해에 대한 서술은 단 한 줄로 간단히 처리한 것은 물론, 그나마 거짓된 기술을 하고 있으면서도 일본 정부에 대해서는 그러지 말라고 요구하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

물론 우리 교과서의 기술이 틀렸다고 해서, 혹은 그 기술이 너무 짧다고 해서 일본 교과서에 대해 그런 요구를 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할 수도 있고 설혹 우리가 잘못됐더라도 상대방에 명백한 잘못이 있으면 시정 요구를 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 자신조차 추스르지 못한 상황에서 내민 주먹은 반격의 빌미를 줄 뿐이다. 실제 이번 역사교과서 왜곡사태가 한창일 때 우익 성향인 요미우리(讀賣) 신문은 우리 교과서가 정신대와 위안부를 혼동했다는 비판을 한 바 있다.

물론 그 저의가 의심스럽기 짝이 없지만 이 신문의 지적은 분명 옳다. 그런데 이런 보도에 대한 국내 반응은 가관이었다. 국내 어느 언론도, 어느 사람도 요미우리신문 보도가 맞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랬다가는 맞아 죽을 것 같은 분위기라서 침묵했다고 하자.

그렇다고 우리 교과서에 무슨 내용이 어떻게 담겨 있는지조차 돌아보지 않은 채 조선 여성들을 위안부로 강제동원하는 만행을 저질러 놓고 무슨 딴죽걸기냐는 식의 단말마적인 반응을 보인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일본 정부에 대해 무슨 요구를 하기에 앞서 우리 스스로를 냉철하게 돌아봐야 한다. 그래야만 그런 요구가 정당성을 갖는 것이며 또 그래야만 이긴다.

2001-07-22 04: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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