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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난과 투쟁뿐인 국사교과서

한국사의 독자성과 발전과정을 짓밟았던 일제 식민사학이 이 땅에서 물러난 해방 이후 한국 역사학계에는 부쩍 자본주의 맹아론이나 한국사회 자체의 내재적 발전과정을 역설하는 연구가 쏟아져 나왔다.

이런 맥락에서 조선시대 당쟁을 긍정적 측면에서 보는 연구가 압도적으로 늘어났고 한국 자본주의는 이미 조선 후기에 자체 태동해 한창 기운을 싹틔우다가 식민지로 전락함으로써 오히려 퇴보하고 말았다는 주장이 힘을 얻기도 했다.

하지만 식민사학을 극복한답시며 제창한 이런 논리(이를 역사학자 자신들은 흔히 신민족주의 역사학이라고 했다)는 자칫 '조국 근대화'와 '민족주체성'을 부르짖는 역대 (군사)독재정권과 쉽게 결합될 수 있는 독소도 아울러 내포하고 있었다.

자본주의 맹아론이나 내재적 발전론이 부쩍 높아진 때가 하필이면 박정희 유신정권의 태동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는 점을 우연으로만 볼 수 없다. 말하자면 신민족주의가 때로는 민족의 영광만을 찾는 국수주의로 변질되고 만 것이다.

하지만 우리 역사를 냉철히 볼 필요는 있다. 조선은 망했다. 더구나 35년간이나 다른 나라의 식민통치를 겪어야만 했다.

일제 어용사가들처럼 조선의 멸망 및 식민지 전락이 오로지 조선사람들의 타고난 당파성때문이라고만은 할 수 없지만 왕이 죽었는데 그 어미가 상복을 1년 동안 입느니, 3년 동안 입느니 하는 따위로 싸우다가 급기야 많은 사람을 죽이고 만 당쟁이 그 원인의 하나임은 분명하다.

또 조선의 멸망을 세도정치, 혹은 앞을 내다보지 못한 흥선대원군의 우둔함 때문이라고만도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를 우국지사로 자리매김할 필요도 없거니와, 빈 껍데기만 남은 상태에서 그 자신과 부인을 각각 황제와 황후라 칭했다고 해서 지금의 우리까지 고종과 민비를 고종황제 혹은 명성황후라고 추겨 읊조릴 필요도 더더욱 없다.

우리 국사교과서는 이 시대를 어떻게 기술하고 있을까?

실로 우스꽝스럽게도 이 시대 국사교과서는 온통 일본을 비롯한 제국주의 국가들에 의한 수탈과 식민지 극복을 위한 각종 영광의 투쟁으로 점철돼 있다. 조선 패망 즈음을 다룬 고교 교과서 제3장 '민족의 독립운동' 첫 머리인 단원 개관이다.

"19세기 후반 제국주의 열강의 침탈이 강화되어 가는 가운데 근대 국민국가의 수립을 추구하였던 우리 나라는 20세기 초 무력을 앞세운 일제의 침략으로 나라를 강점당하였다"

이 말을 뒤집어보면 우리는 잘했는데 일본을 비롯한 제국주의 열강때문에 망하고야 말았다는 결론밖에 나오지 않는다.

그 어디에서도 조선이 멸망에 이르를 수밖에 없었던 '내재적 원인'에 대한 설명은 없다. 패망 무렵 암울한 시대 분위기를 전해야 할 바로 앞 단원은 제목부터가 '근대사회의 전개'라고 해서 신문 발간이니 국학운동이니 서양 과학기술의 수용이니하는 각종 '근대화를 향한 움직임'만을 기술하고 있다.

이런 국사교과서를 통독하고 나서 드는 느낌은 단 하나.

그런데도 왜 조선은 망했으며 왜 우리는 35년이나 식민통치를 당해야 했는가?

교과서대로라면 조선의 멸망은 오로지 외세때문이다. 근대화를 향한 우리 민족의 업적만을 나열하다가 일어난 국사교과서의 자가당착이다.

민족수난의 원인을 남의 탓으로만 돌리는 흐름은 일제 식민강점 시기로 넘어가면 더욱 극단을 향해 치닫는다.

이를 극명하게 보여 주는 대목이 이 시기 국사교과서가 온통 일제에 의한 압박과 수탈 및 이에 대항하는 '가열찬 투쟁' 두 가지뿐이라는 사실이다.

국사교과서에는 윤봉길의 폭탄투척으로 대표되는 '의거'와 위안부로 통칭되는 우리 민족의 수난, 이 두 가지 말고는 없다.

국사교과서를 읽고 난 다음의 느낌 혹은 의문점은 세 가지. 첫째, 일본은 정말로 식민통치를 잘했다. 둘째, 우리 민족은 어떻게 씨가 마르지 않았는가? 셋째, 우리는 어떻게 식민통치를 35년간이나 겪었는가?

식민통치의 아픔과 이에 대한 저항만을 나열하고 있는 국사교과서 자체만을 보면 분명 이 세 가지 말고 다른 느낌이나 결론이 있을 수 없다.

왜 이런 어처구니없는 현상이 빚어질까?

말할 것도 없이 교과서가 균형감각을 상실하고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35년이나 되는 적지 않은 기간에 아무리 강대국이라 하더라도 일본과 같은 나라가 조선과 같은 약소국을 효율적으로 식민통치하기 위해서는 약소국 내부 구성원 상당수의 적극적인 지지, 혹은 암묵적 동의없이는 불가능하다.

조선의 경우는 어떤가? 윤봉길이나 안중근, 신채호처럼 조국 독립을 위해 목숨을 초개같이 버린 투사만큼이나, 아니 오히려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조선인이 일제에 빌붙었다. 이들은 투사도 아니요, 피수탈자도 아니다.

일본이 한국을 35년 동안이나 식민통치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그들의 국력이 우리보다 월등히 뛰어난 것도 있었지만 이런 조선 내부의 적극적인 협력없이는 불가능 했다. 하지만 수탈과 투쟁뿐인 국사교과서에 이들 친일부역배를 준엄히 꾸짖는 자리는 없다.

국사교과서의 이런 문제점은 이완용과 송병준으로 대표되는 을사오적과 이광수, 최남선이 상징하는 친일부역배에 대한 기술이 단 한 곳에도 없다는 점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국사교과서가 친일부역행위에 눈감음으로써 어떤 우스꽝스런 현상이 빚어지고 있는지 한 가지 사례를 더 보자.

일제하 민족 독립운동을 다루고 있는 고교교과서 3장의 한 부분이 '한국사의 연구'인데 여기서 박은식과 신채호 및 정인보를 민족주의 역사학자로 자리매김하면서 진단학회를 만든 이병도와 손진태조차 일제 어용사학에 대항한 인물처럼 묘사하고 있다.

친일행위가 발견되지 않고 있는 손진태야 논란이 있을 수도 있지만(그렇다고 그가 독립투쟁을 한 것도 아니다) 조선총독부 산하 어용역사연구기관인 조선사편수회에 봉사하기도 한 이병도를 일제 어용사학에 대항한 인물로 설명한 대목은 분명 문제가 있다.

진단학회에 독립투쟁가 기질을 지닌 인사가 꽤 참여했다고 해서, 또 회원 대부분이 일제 식민통치에 반감을 가졌다고 해서 진단학회나 그 회원들이 곧 일제 어용사학에 대항한 단체나 연구자라는 증거는 되지 못한다.

진단학회가 한국사 연구의 초석을 놓는 데 어느 정도 이바지했음은 부인할 수 없으나 그렇다고 식민통치 반대를 위한 어떤 구체적인 움직임을 보인 것도 아니다.

복지부동에 가까운 연구체에 불과했던 진단학회를 독립운동단체처럼 둔갑시키고 이완용 송병준이 대표하는 친일부역배 명단을 탈락시킨 채 오로지 우리 민족은 수탈만 당했고, 오로지 우리 민족은 가열찬 투쟁만 했다는 우리 국사교과서.

역사왜곡이 딴 게 아니다. 한쪽은 눈감아 버리고 다른 한쪽만 부각시키는 게 역사왜곡 아니고 무엇이랴?

2001-07-22 04: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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