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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와 국정 국사교과서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1900년 「꿈의 해석」을 출간한다. 이 책은 프로이트라는 이름을 정신분석학자라는 특정 학문 연구자를 뛰어 넘어 20세기 서구 사상계의 거목으로 우뚝 서게 한다.

「꿈의 해석」이 몰고 올 파장을 프로이트 자신도 알았던 듯하다. 이 책에서 프로이트는 "우리는 지금 세번째 화살을 쏘았다"고 선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에 따르면 첫번째 화살은 코페르니쿠스가 쏘았고 두번째 화살은 찰스 다윈이 당긴 시위를 떠났었다.

지동설을 주창한 코페르니쿠스나 진화론을 제창한 다윈 모두 서구 사상의 흐름을 바꾼 인물들이다. 그런데 프로이트는 이들에다가 자기를 비유하고 있다.

하지만 「꿈의 해석」이 출간되던 바로 그 무렵에 서구 사상계를 향해 또 다른 화살을 쏘았던 인물이 세상을 떠나고 있었다. "신은 죽었다"고 외친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1844-1900). 흔히 그를 광인(狂人)이라 하거니와 실제 정신병동에서 장기간 치료를 받기도 했고 그가 남긴 많은 글이 광기를 풍긴다.

신을 몰아낸 니체는 초인(超人)의 출현을 갈망했다. 니체가 말한 초인은 물론 600만불의 사나이나 소머즈, 혹은 슈퍼맨이 아니다. 하지만 꼭 아니라고 할 수도 없다. 니체가 생각한 초인의 의미가 얼마나 심오한지는 모르지만 중요한 것은 그의 입을 떠난 초인을 철학가가 아닌 보통 사람들은 슈퍼맨으로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그는 '금발의 야수'의 우수성을 주장하고 노예를 지배하는 주인의 '권력에의 의지'를 삶의 본질이자 추구해야 할 도덕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니체가 말하는 초인은 정의의 사도 슈퍼맨을 넘어 철권통치자, 독재자와 아주 쉽게 연결될 수 있는 독소를 품고 있다. 니체가 말하려던 초인이 물론 독재자는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니체가 죽은 다음 독일에서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니체의 후계자를 자처하는 이가 나타났다. 나치 1당 독재체제를 구축한 히틀러가 그 주인공이다.

여기서 니체가 말한 초인과 나치즘 사이에 정말로 친연성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철학적인 물음은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히틀러가 니체 철학을 교묘하게 나치즘 창출에 응용했다는 점이다. 반유대주의자들과 나치 정부는 파시즘의 정신적 대부로 니체를 꼽았다. 니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말이다.

1960년대 박정희 정권 치하 한국사학계. 이 즈음 남한에서도 구석기시대 및 청동기시대의 존재가 확인됐고 자본주의 맹아론이 한창 일어났으며 독립운동사 연구가 아연 활기를 띠고 있었다.

이중 독립운동사 연구가 주목을 끄는데, 여기에 불꽃을 지핀 것은 학계가 아니라 5.16 쿠데타를 이끈 군사정부였다. 군사정부는 국사편찬위원회에 독립운동사를 연구하라는 지침을 하달한다.

이 무렵을 고비로 해서 각종 묵직묵직한 독립운동사 관련 자료집이 정리돼 나오기 시작하고 이 분야 연구물도 양과 질 모두 폭증한다.

군사정부는 왜 하필 많은 과제중에서 독립운동사 연구를 주목했을까? 여기서 박정희 정권이 제창한 여러 구호(이는 통치 이데올로기라 할 수도 있다)중에서도 유난히 자주 등장한 게 '조국근대화'와 '민족주체성'이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런 구호를 체계화하고 이데올로기화하는 데 역사가 동원된 것이다. 한반도에도 구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가 있었고, 자본주의가 일제 식민통치가 아닌 우리 전통사회에 뿌리를 둔 자연발생적 체제였다는데, 민족주체성 혹은 조국근대화를 선전하기 위해 이보다 더 좋은 소재가 있을 수 없다.

독립운동사 관련 자료 정리 및 이 분야 연구도 바로 '민족주체성'을 살린다는 측면에서 박정희 정부가 주목한 소재였다. 이런 흐름에 발맞춰 1969년 서울대를 시발로 각 대학 역사학과에서 한국사학과(혹은 국사학과)가 딴살림을 차리기 시작하고 더불어 국사교과서 개편 문제가 대두됐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국사교과서는 검인정이었다. 그러다가 유신체제가 출범한 1973년 국사교과서는 국가가 편찬한 단 한 종류의 교과서만을 인정하는 이른바 국정체제로 바뀌게 되고 이 체제가 지금까지 30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다.

최근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가 불거지면서 국정인 우리 국사교과서 체제를 바꾸자는 목소리가 아주 높다. 그러면서 많은 역사학자가 검인정이던 국사교과서를 국정으로 개편한 원흉이 박정희 유신정권이라면서 화살을 겨누고 있다.

하지만 국정 국사교과서에 대한 책임은 고스란히 박 정권이 뒤집어써야 하는가?

아니다. 의도했건 하지 않았건 국사교과서의 국정화를 촉발한 직접 도화선은 놀랍게도 역사학자들 자신이었다.

그 증거들을 보자. 1968년 역사학계는 '국사교육심의위원회' 설치를 촉구한다.

그때까지의 10년 동안 조사 및 연구성과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는 게 명목상 이유였다.

덩달아 이듬해에는 5명의 역사학자가 '중고등학교 국사교육 개선을 위한 기본방향'이라는 책자를 발간해 정부를 향해 교과서 개정을 촉구하고 나서기에 이른다. 이책자의 집필진에는 한우근, 이기백, 이우성, 김용섭이 들어 있다. 정권과 야합하지않은 깨끗한 학자로 통하는 이름들이다.

이 책이 제시한 (국사교과서 개편을 위한) '시안작성의 기본원칙' 5개 항목을 보자.

① 국사 전기간을 통해 민족의 주체성을 살린다.
② 민족사를 세계사적 시야에서 본다.
③ 민족사 전과정에서 내재적 발전방향을 파악한다.
④ 인간중심 역사를 서술한다.
⑤ 각 시대 민중활동과 참여를 부각시킨다.

이중 인간중심, 민중중심을 제외한 나머지 3개 항목, 특히 민족주체성과 내재적 발전 운운하는 대목이 주목을 끈다.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지만 박정희 이데올로기를 빼다박고 있다.

어떻든 이런 움직임에 맞춰 1971년에는 문교부 주도로 '국사교육강화위원회'가 설치되고 각 신문사 또한 '한국사연구위원회'란 기구를 출범시켰다. 학계와 정부, 언론이 한 덩어리로 역사교육 강화에 나선 것이다.

그 결과는 조동걸이 지적했듯이 놀랍게도 1973년에 확정되고 1974년 시행에 들어간 국사교과서 국정화였다.

1960년대말 이래 70년대 초반까지 역사학계가 외쳤던 역사교육 강화가 실제 목적하는 바가 국사교과서 국정화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이 의도하는 바가 역사의 정치권력 시녀화도 아니었을 것이다. 오히려 그 반대로 정말로 역사를 사랑하는 '순수한' 혹은 '순진한' 마음의 발로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니체 철학이 파시즘 창출에 이용당했듯이 분명한 것은 역사교과서를 국정화한 상당한 책임을 역사학계 스스로 져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국사의 국정교과서 책임을 박정희와 유신정권에 돌리기에 앞서 역사학계 스스로에 대한 철저한 비판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2001-07-22 04:3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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