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질문을 던져 본다. 미식축구(American Football)와 야스쿠니신사를 관통하는 공통분모는 무엇일까?

매년 겨울철이면 미국은 미식축구로 열광한다. 2001년 현재 미식축구리그(NFL)에 속한 프로팀은 28개. 14개팀씩 아메리칸풋볼콘퍼런스(AFC)와 내셔널풋볼콘퍼런스(NFC)로 나뉘어 플레이오프를 거쳐 콘퍼런스별 우승팀을 가린 뒤 1월 마지막 일요일에 단판제로 챔피언을 가리는 결승전인 '슈퍼볼'을 치른다.

시즌당 한 팀이 치르는 정규리그는 16게임에 불과하다. 미국의 '국민오락'(National Pastime)이라는 별칭이 있는 메이저리그 야구(MLB)가 팀당 162게임, 농구(NBA)가 82게임인데 비해 턱없이 적은 정규리그 경기 숫자다.

하지만 경기는 매주 일요일에만 있기 때문에 팀당 경기 수가 적은데도 정규시즌은 꽤 길다. 이런 상대적 '희소성'때문인지는 몰라도 홈팀 성적이 아무리 나쁘다 해도 NFL 경기장은 만원을 이루기 일쑤다.

볼티모어 레이븐스가 34대 7로 뉴욕 자이언츠를 누르고 슈퍼볼 우승컵인 '빈스롬바르디 컵'을 품에 안은 2001년 1월 29일 제35회 NFL 결승전을 보자.

400달러짜리 입장권은 암표상을 통해 5천달러(약 650만원)에 거래됐으나 7만5천석 경기장은 꽉 찼다. 슈퍼볼 입장권이 매진되지 않았던 해는 1967년에 있었던 제1회 대회뿐이다. 결승전을 중계한 CBS 방송사 30초짜리 광고를 위해 광고사는 무려 230만달러를 쏟아부어야 했다. 이 덕택에 이 방송사는 광고료 수입만 1억5000만달러
를 올린 것으로 추정됐다.

주한미군 파견 한국군인 카투사(KATUSA)나 이곳에서 일하는 한국인 노무자들에게는 아주 익숙한 일이지만 매년 슈퍼볼 결승전이 열리는 날이면 주한미군은 대체로 반나절 근무만 한다. 슈퍼볼이 군대조차 한 순간을 멈추게 하는 것이다.

미국인 스스로는 미식축구를 가장 미국적인 스포츠, 가장 남성적인 스포츠라고 한다. 그렇다고 남성만의 스포츠라고 속단해서는 안된다. 남녀노소가 따로 없다 할 정도로 미국은 미식축구에 광분한다.

한국인이 미국이라는 나라를 바라볼 때 수수께끼처럼 느끼는 대목의 하나가 겉으로 보기에는 모래알처럼 보이는 미국이라는 거대한 실체를 지탱하는 힘이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미국은 흔히 앵글로-색슨족 출신 프로테스탄트, 즉 WASP(White Anglo-Saxon Protestant)이 사회 상위층을 구성한다고 하지만 아프리카 노예의 후손인 흑인, 중남미에서 건너온 히스패닉에서 한국인, 중국인, 일본인, 베트남인을 비롯한 아시아계 유색인종이 뒤섞여 있다. 그래서 미국을 인종의 도가니(Melting Pot)라 한다.

금방이라도 무너져내릴 것 같은 이런 잡다한 사회를 하나, 즉 국가로 지탱시키는 힘은 과연 무엇인가? 여러 답이 있을 수 있지만 미식축구는 결코 빠질 수 없다.

미국 사회는 미식축구라는 매개를 통해 공동체임을 확인하고 있다.

파편같은 미국 사회를 하나로 지탱하게 하는 자석같은 또 하나의 존재로 알링턴국립묘지도 흔히 거론된다. 여기는 국가를 위해 죽어 간 이들이 묻히는 곳이다. 베트남 전쟁에서 죽은 군인도 있고 화재진압 현장에서 순직한 소방관도 있으며 범인을 쫓다 총격을 받고 사망한 경찰관도 있다. 성조기가 휘날리는 가운데 알링턴 국립묘지에서 웅장하게 울려퍼지는 '성조기여 영원하라'를 들으며 미국인은 국가를 위해, 사회를 위해 이 한 몸 아낌없이 던지리라 하는 최면에 빠져든다.

마치 우리 한국인이 우리 선수가 올림픽 금메달을 따고 시상대에 올라가 태극기가 올라가고 애국가가 울려퍼질 때 느끼는 그런 감정을 미국인은 알링턴에서 맛본다.

그러면 왜 미국은 미식축구나 알링턴과 같은 국가.국민 통합기제가 필요한가?

일본 천황제를 주요 연구테마로 삼고 있는 박환무 서강대 강사의 설명을 들어 보자.

그에 따르면 한 국가에 한 종교만 허용되던 절대왕정이 종교개혁과 프랑스혁명등을 겪으면서 종말을 고하고 출현한 근대사회는 신분제를 폐지했고 자유와 평등, 박애라는 가치를 제시했다. 근대사회에서 특히 국가는 자유와 같은 구성원들의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하지만 자유만 강조하다 보면 그 사회, 국가는 모래알과 같다. 그래서 사회 혹은 국가 구성원으로서의 개인에게 이에 따른 역할과 의무가 필연적으로 수반된다.

납세의 의무, 징병의 의무 따위가 다 여기에 해당한다.

아울러 근대국가는 구성원들이 의무감을 기꺼이 받아들이도록 우리 모두가 국가 구성원임을 느끼게 할 수 있는 어떤 구심체를 찾아내야 한다. 이런 구심체를 박씨는 '시민종교'(Civil Religion)라는 말로 표현한다. 이 시민종교는 절대왕정시대의 한 국가에 하나만 통용되던 기독교처럼 '강요된 종교'와는 물론 다르다.

미국의 경우 알링턴묘지와 미식축구가 바로 국가의 시민종교라는 게 박씨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현대 한국의 시민종교는 무엇인가? 여기에 대해 그는 '통일'이라고 잘라 말한다. 그의 말마따나 '통일'이라는 시민종교를 통해 대한민국이라는 국민 통합 이데올로기가 창출되고 있다.

제국주의시대 일본에서 미국의 미식축구나 알링턴 국립묘지처럼 국가통합 이데올로기 역할을 했던 것이 바로 야스쿠니신사(靖國神社)였다. 야스쿠니란 나라를 편안하게 했다는 뜻이니 결국 야스쿠니신사란 국가를 위해 죽어간 이들을 안치한 곳이다.

도쿄(東京) 중심가 황궁 옆, 도쿄돔 야구장의 두 배나 되는 9만㎡ 광활한 대지에 자리잡은 이 신사는 1869년 메이지(明治)천황의 지시로 황군(皇軍), 즉 천황의 군대를 위해 죽어간 혼령을 달래기 위해 세워진 국가신사였다.

도쿠가와(德川) 막부가 무너진 이른바 무진전쟁 이후 태평양전쟁에 이르기까지 11개 전쟁에서 양산된 전몰자 246만여명의 위패를 안치하고 있다.

맥아더는 국가와 종교는 분리돼야 한다는 원칙에 따라 야스쿠니신사에서 국가신사 자격을 박탈했으며 이런 상태로 지금에 이르고 있다. 따라서 엄밀히 말하자면 야스쿠니신사는 일본 전국에 걸쳐 8만개나 된다는 신사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렇게 받아들이는 일본인은 드물다. 특히 우익보수 계열에게 야스쿠니신사는 여전히 국가신사로 통한다. 설혹 우익보수계열이 아니라 해도 아주 많은 일본인은 야스쿠니신사라는 존재를 통해 어떤 경외심을 느끼곤 한다.

이는 야스쿠니신사가 정교분리 원칙에 따라 명목상은 민간단체인 사단법인체로 활동하고 있다 해도 여전히 일본이라는 국가를 하나로 묶는 국가통합 이데올로기의 상징물이라는 의미이기도 한다.

바로 여기에서 미식축구와 야스쿠니신사의 공통분모가 발견된다.

일본 정치권에서는 툭하면 야스쿠니신사 참배 문제가 불거져 나오곤 한다. 특히 그 정점에 있는 총리와 그를 보좌하는 장관(급)이라는 인물이 개인자격으로 참배한다느니, 총리/대신 자격으로 참배한다느니 하는 말이 나올 때마다 한국과 중국을 비롯한 주변국들은 아연 긴장하곤 한다. 총리 혹은 대신 자격으로 참배하는 것과 개인자격으로 참배하는 것이 무에 그리 중요할까?

야스쿠니신사는 1978년 도조 히데키를 비롯해 도쿄전범재판을 통해 태평양전쟁 A급 전범으로 사형된 전쟁 책임자 14명의 위패를 합사(合社)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특히 이 대목을 한국을 비롯한 주변국은 예의주시하고 있다.

어처구니가 없는 것은 200만명을 넘는 영혼중에서 태평양전쟁에 강제동원됐다가 죽은 한국인(북한인 포함)이 96년 현재 2만1천181명이라는 사실이다. 남의 나라 식민지가 되고 전장에 끌려가 죽은 것도 억울하기 짝이 없는데 영혼, 혹은 그 유족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이들 조선인 영혼은 일본, 더 정확히는 일본 천황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일본의 순국영령으로 모셔지고 있는 것이다.

야스쿠니신사는 비록 민간단체의 허울을 쓰고 있으나 지금도 여전히 전쟁을 테마로 한 거대한 국민학습장이다. 이에 걸맞게 야스쿠니신사는 일본 육군의 아버지라는 오무라 마스지로의 동상을 정문에 세워놓는가 하면 각종 무기와 군인동상을 전시하고 있다. 단순한 신사라기엔 화약 냄새와 피 냄새, 군인 냄새가 너무 진동한다.

일본으로서는 패전일인 매년 8월 15일이면 이런 야스쿠니신사는 참배객들로 들썩이고 이들을 '기미가요'가 맞는다.

태평양전쟁 A급 전범의 위패 안치를 비롯해 야스쿠니신사에 서린 이런 군국주의적, 제국주의적 특성에 한국 등 주변국은 감시의 눈길을 떼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왜 총리 혹은 내각대신의 참배가 문제가 되는가? 신사는 종교시설이다.

더구나 야스쿠니신사는 국가신사도 아니요, 민간시설이다. 하지만 일본 헌법은 정치와 종교의 분리를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총리 혹은 대신의 참배는 이런 정교분리에 대한 헌법을 위반하는 것이 된다.

이런 탈법성을 회피하기 위해 일본 정치권이 개발해 낸 묘안이 총리 혹은 대신이 아닌 개인자격 참배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 또한 주변국 혹은 일본 내부에서 반발이 거세게 일자, 비판의 표적이 되고 있는 A급 전범만이라도 그들의 위패를 야스쿠니신사에서 떼어내 다른 곳에 모시자는 방안이 최근에 논의되고 있기도 하다.

합사와 대비되는 이른바 분사(分社) 논쟁이다.

하지만 개인자격으로 참배한다 해서 총리가 총리가 아닐 수 없고, 대신이 대신이 아닐 수는 없으므로 이 또한 정교분리를 규정한 헌법 위반일 뿐이다. 더불어 A급 전범의 위패를 신사에서 떼어낸다 해도 야스쿠니신사가 총리나 대신이 참배할 수는 없다. 이런 행위는 여전히 정교분리 위반이기 때문이다.

실제 야스쿠니신사 관련 행사에 지방정부 비용을 대는 것이 위헌이라는 일본 대법원의 판결이 나오기도 했다.

그래서 아예 정교분리를 규정한 헌법을 없애자는 주장도 보수주의 계열에서 나오고 있다. 이는 야스쿠니신사를 국가신사로 되돌리자는 것과 마찬가지다.

박환무씨는 "그래서 야스쿠니신사는 근대 동아시아에서 가장 일본적인 문제"라고 강조하면서 "일본 사회가 정말로 성숙했다면 과거 침략행위를 정당화하는 야스쿠니신사를 해체해야 한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