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신의 맏아들 삼광(三光)

김유신에 대해 파격적인 분량을 할애하고 있는 「삼국사기」 열전 김유신전을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아내 지소부인(智炤夫人)은 태종대왕(김춘추)의 셋째 딸이다. 아들 다섯을 낳으니 맏이는 이찬 삼광(三光)이요, 다음은 소판 원술(元述)이요, 다음은 해간(海干) 원정(元貞)이요, 다음은 대아찬 장이(長耳)이며, 다음은 대아찬 원망(元望)이다.

딸은 넷이다. 서자(庶子)로는 아찬 군승(軍勝)이 있는데, 그 어머니 성씨는 전하지 않는다. (유신이 죽은) 뒤에 지소부인은 머리를 깎고 거친 옷을 입고 비구니가 되었다' 삼광 이하 원망까지 아들 다섯과 이름이 전하지 않는 딸 넷을 모두 지소부인이 낳은 것으로 돼 있다. 지금껏 모든 연구자가 이들의 어머니가 누구인지 의심을 품지 않았던 것은 바로 이 기록 때문이었다.

과연 이들의 어머니가 지소부인이 될 수 있는지를 기록이 그나마 많이 남아 있는 맏이 삼광을 중심으로 살펴보자.

「삼국사기」 신라본기 문무왕 재위 6년(666) 기록을 보면 여름 4월에 영묘사에 불이 나자 죄수를 크게 사면한 일과 함께 '천존의 아들 한림(漢林)과 유신의 아들 삼광(三光)은 모두 나마로서, 당나라에 들어가 숙위(宿衛)케 했다'고 나온다. 숙위란 당나라 인접국의 왕자나 고위관리의 자제가 당나라 황실에 머물면서 황제를 호위하던 의장대에 속하던 것을 가리킨다.

김유신이 지소와 결혼한 때가 655년 12월이고 「삼국사기」 기록대로 삼광이 과연 이들의 맏아들이라면 아무리 빨라도 삼광은 656년 이전에 태어날 수가 없다.

넉넉잡아 삼광이 656년에 태어났다고 하자. 그렇다면 불과 11살짜리 어린애가 나마(11등) 관위에 있으면서 당나라로 들어가 숙위했다는 말인가? 잠꼬대 같은 소리다.

또 이보다 2년 뒤인 같은 문무왕 8년(668)조를 보면 신라가 당나라 군대와 연합해 고구려를 정벌하는 내용이 여름 6월 12일조에 다음과 같이 나오는데 여기에 당나라에서 숙위하던 삼광이 돌아오고 있는 모습이 포착된다.

'6월 12일에...(중략) 유인궤(당나라 신하)가 (고종)황제의 칙명을 받들고 숙위하던 사찬 김삼광과 함께 당항진(當項津)에 도착했다. 왕이 각간 김인문(문무왕의 둘째 아들)에게 성대한 예식으로 맞게 했다' 2년 전 17관위(官位) 중 11번째인 나마로 떠났던 삼광이 3계단 뛰어오른 제8등 사찬으로 진급한 채 귀국한 것이다.

삼광이 정말로 지소의 아들이라면 이 때쯤 아무리 나이가 많아야 13살인데 이런 어린아이가 당나라 황제의 칙사를 모시고 신라로 귀국한다는 말인가? 삼광이란 인물은 문무왕을 뒤이은 신문왕 재위 3년(683) 신라본기에도 모습을 드러내니 이해 봄 2월조에 다음과 같이 이르고 있다.

'(왕이) 순지(順知)를 중시로 삼았다. 일길찬 김흠운(金欽運)의 작은 딸을 맞아들여 부인으로 삼았다. 먼저 이찬 문영(文穎)과 파진찬 삼광(三光)을 보내 기일을 정하고 대아찬 지상(智常)을 보내 납채(納采)하게 했는데 예물로 보낸 비단이 15수레이고 쌀, 술, 기름, 꿀, 간장, 된장, 포, 젓갈이 135수레였으며, 조(租)가 150수레였다' 사찬 삼광이 15년 뒤에는 다시 4단계를 뛰어 17관위중 네번째 고위 관등으로서 진골만이 될 수 있다는 파진찬이 돼 있다. 그가 지소의 아들이라면 이 때 아무리 많아 봐야 나이 27세를 넘지 않는데 이런 애송이가 어떻게 기라성 같은 나이 많은 다른 진골들을 제치고 파진찬이 될 수 있다는 말인가? 이 또한 어불성설이다.

신라본기가 아닌 '열전' 중 김유신전을 보면 '건봉(乾封) 원년(문무왕 6년, 666년)에 황제(고종)가 칙명으로 유신의 맏아들 대아찬 삼광(三光)을 불러 좌무위익부중랑장(左武衛翊府中郞將)으로 삼아 숙위하게 했다'는 기록이 있다.

하지만 신라본기와 비교해 볼 때 '대아찬 삼광'은 '나마 삼광'의 잘못일 가능성이 크다. 설혹 이 열전 기록이 사실에 부합한다 해도 대아찬 역시 파진찬 바로 아래 제5관위 고위 등급이니 10대 어린아이가 앉을 수 있는 자리는 아니다.

따라서 이런 고찰을 통해 결론은 하나밖에 나오지 않는다. 삼광은 지소부인의 아들이 결코 아니며 지소 이전 누군가에게서 본 자식임이 명백하다. 그 누군가는 김유신과 신분이 같은 진골일 수밖에 없다. 삼광이 파진찬을 거쳐 나중에 제2관위인 이찬까지 역임한 것을 볼 때 그 어머니 또한 진골이어야 한다.

「삼국사기」 자체만 보아도 삼광의 어머니쪽 출자(出自.혈통)가 이렇게 의문 투성이인데도 기존 연구자 어느 누구도 이런 점을 지적하지 않았다. 이는 모든 연구자가 삼광은 김유신과 지소부인 사이에서 난 맏아들이라는 「삼국사기」 기록을 무턱대고 받아들였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삼광이 결코 지소부인의 아들이 될 수 없음을 이제 알았다. 바로 이 시점에서 우리는 다시 「화랑세기」로 눈을 돌려야 한다. 그것이 20세기 누군가에 의해 창작된 것이건 아니건 삼광이 지소의 아들이 아님을 알려주는 기록은 오직 하나, 「화랑세기」 필사본이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