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맥락으로 주목할 인물은 김유신의 친동생 김흠순이다.

김유신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공히 595년에 태어났다고 했으니 그 동생 김흠순이 쌍둥이가 아닌 이상 595년 이후에 출생해야 한다.

「삼국사기」와 같은 기존 사서에는 김흠순이 신라의 삼국통일 전쟁에서 형 못지않은 업적을 쌓은 것으로 기록돼 있으나 생몰연대는 나와 있지 않다.

그런데 「화랑세기」 필사본에는 그가 599년에 태어나 19대 풍월주를 역임했으며 문무왕 재위 20년째인 680년 2월에 82세(만 81세)로 세상을 떠난 것으로 기록돼 있다. 김유신보다 네 살 어리다. 형제가 모두 대단한 장수를 누렸다.

김유신 시대 신라인들의 평균수명이 얼마였는지 알 수는 없으나 이들은 현대 한국인의 평균수명보다 오래 살았다.

김유신-흠순 형제의 친여동생인 문희 또한 필사본 전후 맥락으로 보면 70세 가량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같은 부모에게서 난 형제자매가 비슷한 평균수명 곡선을 그리고 있는 현상은 굳이 유전학의 도움을 빌리지 않더라도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어떻든 「화랑세기」가 없어도 김흠순이 당대 신라 조정에서 얼마나 중요한 인물이었는지는 새삼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김흠순이 언제 죽었는지, 그때 그의 직위가 무엇이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이 점은 「화랑세기」도 마찬가지다. 다만 그가 삼국통일전쟁과 나당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으며, 당대 불세출의 영웅인 김유신의 친동생이자 문무왕비의 친오빠이며 천수를 누렸다는 점에서 그가 죽었을 때 상당한 고위직에 있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물론 말년에는 은퇴했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 그가 죽었을 때는 82세나 되었기 때문이다.

어떻든 이런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김용춘의 경우처럼 「삼국사기」에서 680년 기록을 모조리 뽑아보자.

'봄 2월에 이찬 김군관(金軍官)을 상대등으로 삼았다.

3월에 금은으로 만든 그릇과 여러 채색 비단 100단을 보덕왕 안승에게 내려주고 왕의 여동생< 잡찬 김의관(金義官)의 딸이라고도 한다 >을 아내로 삼게 했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은 교서를 내렸다'(이하 줄임) 이처럼 이찬 김군관에 대한 상대등 임명기사가 나온다. 그렇다면 김군관 이전 상대등은 누구였는가? 「삼국사기」는 중국의 승상과 비슷한 상대등 임명 기사를 대체로 남기고 있다. 물론 모든 상대등 임명 기사를 수록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김군관 바로 직전 상대등으로 이름이 남아 있는 인물은 김유신이다. 그는 태종무열왕(김춘추) 재위 7년 봄 정월에 상대등 금강(金剛)이 죽자 그 후임자가 됐다.

하지만 김유신은 673년에 죽었다. 따라서 673년 이후 김군관이 임명되는 680년까지 7년 동안은 상대등이 누구였는지 알 수가 없다.

그렇지만 김군관이 상대등에 임명된 된 때를 주목하자. 하필 「화랑세기」에서 김흠순이 죽었다고 하는 그 해 2월이다.

「화랑세기」 필사본이 김대문의 진본을 베낀 것이라면 김군관은 전임 상대등 김흠순이 죽고 난 뒤에 그 직위에 취임했을 것이다.

< 연합뉴스 기자 김태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