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방영중인 드라마 '여인천하'의 문정왕후(文定王后)는 아들 명종이 즉위하고 20년이 되던 1565년 경기도 양주군 회천읍 회암사(檜巖寺)에서 무차대회(無遮大會)를 연다.

법회의 일종인 무차대회란 승려와 일반인을 가리지 않고 참여시켜 음식과 선물을 나눠주며 잔치를 베푸는 것으로 회암사 증축공사의 준공식을 겸한 것이었다.

회암사 무차대회 시주자는 문정왕후였고 주관자는 승려 보우(普雨), 그리고 정난정(鄭蘭貞)이 이 행사를 주선한다.

이때 문정왕후는 동생 윤원형(尹元衡) 등 외척을 앞세워 실권을 장악하고 있었고 난정은 윤원형의 정부인이 되고 나서다.

그러나 공교롭게 회암사 무차대회를 앞두고 문정왕후가 숨져 대회는 무산된다.

문정왕후가 운명하자 권력구조는 크게 변해 윤원형과 난정은 황해도로 귀양가고 승려 보우는 제주도로 유배돼 피살된다.

그리고 회암사는 큰 화재로 완전 소실된다.

문정왕후, 보우, 윤원형, 난정, 그리고 회암사는 운명을 같이 했다.

왕실의 후원을 받는 지극히 정치적인 사찰이었기 때문에 외척과 불교에 대한 유림의 분노가 회암사로 폭발한 것인지 모른다.

화재에 대해 주민들이나 일부 기록은 '유생들이 불을 질렀다'고 전하고 있으나 문정왕후 이후 집권세력은 회암사 화재 원인규명을 애써 외면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정황상으로 방화가 의심되는 조선시대 최대 사찰의 화재는 이렇게 의혹으로 남았다.

문정왕후 이전에도 회암사가 크게 융성했던데는 태조 이성계(太祖 李成桂), 무학대사(無學大師)와의 인연이 있기 때문이다.

태조는 조선 건국을 도모하며 국정을 자문하기 위해 정책 브레인 무학대사를 회암사에 머물게 하며 회암사를 마치 자문그룹의 캠프처럼 사용한다.

태조는 재임기간 왕실 주최 법회를 수시로 회암사에서 열었고 무학을 보기 위해 7차례 갔다고 실록에 기록돼 있다.

왕위에서 물러나 태종과 갈등관계에 있을 때는 회암사를 은신처로 삼았고 태종이 회암사에 은신한 태조를 찾아와 음식과 술을 바치는 장면도 실록에 기록돼 있다.

회암사는 이와같이 왕실의 적극적인 후원을 받아 고려시대부터 조선왕조까지 중창을 거듭하며 규모를 늘렸다.

화재로 소실된 뒤 방치되다 1821년(순조 21)에는 회암사 뒤편에 있던 지공, 나옹, 무학대사의 부도와 부도비를 이응준(李膺峻)이라는 사람이 허물고 선조의 묘를 만드는 유린을 당하기도 했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져 당시 경기지방 승려들이 이를 복원하고 그 자리를 보존하기 위해 현재의 회암사라는 작은 사찰을 지었다.

회암사에 지금 회암사는 없다.

다만 건물 터를 조성하기 위해 만든 석단과 경내.외 경계에 쌓은 석축, 그리고 주춧돌, 바닥돌 등이 남아있다.

경내 면적만 1만여평에 대웅전이었던 보광전 등 건물 터 23곳, 주춧돌 532개.

경외 뒤편 산기슭으로는 회암사지 부도, 나옹선사 부도, 지공선사 부도, 회암사지 쌍사자 석등, 무학대사비 등이 남아있어 당시 조선시대 최대 사찰의 규모를 짐작케 한다.

경기도와 양주군은 이 회암사지를 지난 98년부터 5년째 발굴하고 있다.

화재 뒤 흙 속에 뭍혀있던 주춧돌, 구들 등 생생히 보존된 건물터와 유물 850점을 찾았다.

도와 군은 이곳에 오는 2004년까지 전시관을 지어 발굴된 유물을 전시하고 구들등 건물구조를 보존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