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회원가입  
Home MR뉴스 무기체계 컨텐츠 신제품 유료존 MR기네스 KNIVES 특수부대 軍뉴스 프리존
[화랑세기 특집] - ⑤ 건복 연호 제정과 진평왕의 나이

신라 제24대 진흥왕이 서기 540년 큰아버지이자 외할아버지인(극심한 근친혼이기 때문에 관계가 복잡하다) 법흥왕에 이어 즉위했을 때 나이가 얼마였는지에 대해서는 두 가지 상이한 기록이 전하고 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기록된 7살과 「삼국유사」에 나오는 15살이 그것이다. 7세이든 15세이든 어렸기 때문에 즉위 초반기 한동안은 어머니 사도부인(思道夫人)이 집정했다.

두 가지 가운데 학계는 압도적으로 7세설을 따르고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 가장 유력한 근거로는 「삼국사기」 신라본기 진흥왕 12년(551)조에 기록된 '봄 정월에 연호를 개국(開國)으로 바꾸었다'는 점이 거론되고 있다.

다시 말해 진흥왕은 성인이 되던 18세에 친정체제에 들어갔거니와 이를 기념해 연호를 고친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진흥왕은 재위 37년만에 죽었으므로 생몰연대가 계산 가능하다.

먼저 7세설을 따른다면 534년에 태어나 43세 때인 서기 576년에 사망한 것이 된다. 15세설을 취하면 526년에 태어나 51세에 사망한 셈이 된다.

진흥왕은 재위 27년 2월에 큰아들 동륜(銅輪)을 왕태자로 삼았다. 하지만 「삼국사기」에 따르면 동륜은 같은 왕 33년(572) 3월에 뚜렷한 원인을 남기지 못하고 죽고 만다. 이 점에서 아버지 후궁의 처소 담장을 뛰어넘다 개에게 물려 죽었다는 필사본 기록과는 차이가 있다.

진흥이 죽었을 때 왕위는 진흥의 작은 아들 금륜에게 돌아가니 그가 바로 진지왕(재위 576-579)이다.

동륜이 태자가 된 시기와 그가 죽었을 때 진흥왕이 몇 살이었는지를 계산해 보면, 먼저 진흥왕이 7살에 즉위했다면 각각 34세와 40세가 된다. 15세설을 따른다면 각각 42세와 48세가 된다.

어떤 경우든 죽을 때 동륜은 나이가 20대를 넘어가지 못했음이 분명하다. 왜 진흥과 동륜의 나이를 따지는가? 진평왕 때문이다.

제26대 진평왕의 혈통에 대해서는 「삼국사기」「삼국유사」가 같은 내용을 전하고 있다. 즉 진흥왕의 큰아들 동륜의 아들이요, 어머니는 김씨 만호부인(萬呼夫人)이라는 것이다.

진평은 「삼국유사」에 따르면 진지왕이 정란황음(政亂荒淫), 즉 정치가 문란하고 함부로 색을 밝힌다는 이유로 재위 4년만인 서기 579년에 축출되자 왕위에 오른다.

진평의 나이는 필사본을 제외하고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삼국사기」「삼국유사」 모두 함구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진평이 어린 나이, 즉 성인이 되기 이전에 등극했을 것이라는 강력한 증거 몇 개를 갖고 있다.

첫째, 진평은 60년을 재위한 시조 혁거세를 제외한 신라 역대 56왕 가운데 재위 기간이 53년으로 가장 길다. 어린 나이에 즉위했으리라는 방증자료가 된다. 둘째, 진흥왕 재위 33년째인 서기 572년 동륜이 죽었을 때 나이는 아무리 많아봐야 20대 였다는 고찰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진평은 동륜의 아들이라 했으므로 동륜이 죽었을 때 10대도 되지 못했음이 틀림없다. 한데 진평이 즉위한 것은 동륜이 죽고 난 지 불과 8년이 흐른 시점이었다.

따라서 진평이 몇 살에 즉위했는지 알 수는 없으나 할아버지 진흥왕처럼 성인이 되기 이전에 즉위했고 즉위 초기 한동안은 어머니 만호태후와 같은 여성들에 의해 섭정이 이뤄졌음이 확실하다.

한데 필사본 22대 풍월주 양도공전에는 진평왕이 즉위할 때 13살이었다는 놀라운 기록이 나오고 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진평은 할아버지 진흥왕의 경우처럼 18세 무렵이 될 때까지는 직접 통치를 하지 못했을 것이다.

앞서 즉위 당시 나이가 두 가지로 전하는 진흥의 경우 재위 12년째 개국이라는 연호를 반포한 것을 근거로 7세설을 압도적으로 따른다고 했다. 마찬가지로 진평이 필사본 기록처럼 13살에 즉위했다고 가정하고 그가 18,19세가 됐을 무렵 「삼국사기」 기록을 들춰보자. 이 때는 진평왕 재위 6년 혹은 7년이 된다.

그 결과 재위 6년(584) 기록에 다음과 같은 예사롭지 않은 기사를 만나게 된다.

'봄 2월에 연호를 건복(建福)으로 바꾸었다' 필사본에 따르면 이 때는 진평왕이 18세 되던 해이다. 어린 나이에 즉위한 진평은 이 때 비로소 친정체제에 돌입한 것이다. 이를 기념해 종래 할아버지 진흥왕 이래 사용하던 '홍제'라는 연호 대신 '건복'이라는 새 연호를 반포했던 것이다.

이는 필사본이 단순히 믿을 수 있다는 정도가 아니라 믿을 수밖에 없는 사료임을 입증하는 일대 증거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필사본이 학계 일부에서 주장하듯이 20세기의 소설적 창작품이라면 그 창작자는 건복 연호 반포까지 고려해 진평왕의 나이를 조작해 냈다는 말인가?

< 연합뉴스 기자 김태식 >

2002-01-21 12:58:08

덧글쓰기

협력기관 및 업체 : 대한민국 공군 - 대한민국 해군 - 국방일보 - 국정브리핑 - Defense LINK - 군사저널
공정거래위원회 고시 제2000-1호에 따른 안내, 사업자 등록번호 : 220-86-07275
(주)아이엠알코리아, 대표이사 주재은, 전화 (02) 578-8278 (■ 잡지 취급하지 않습니다. 문의사절합니다.), 통신판매업 허가 : 서초 제 3300호
광고문의 - 개인정보 취급방침 - MR 이용자 약관 - 회원관련문의 - 탈퇴신청
Copyright ⓒ 1998-2017 (주) iMR Corea.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