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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랑세기 특집] - ⑦ 권력투쟁에 밀린 화랑 대세

「화랑세기」에는 대세(大世)라는 인물이 9대 풍월주 비보랑전에 동대공(冬臺公)의 아들로 모습을 들이민다. 대세가 동대의 아들이라는 사실은 「삼국사기」와 일치하고 있다.

필사본에 이르기를 비보랑은 대세가 뛰어난 재주가 있으므로 그를 화랑도 상층부를 이루는 핵심 직위의 하나인 '전방화랑'에 앉히려 했다고 한다.

비보랑은 어머니가 실보(實寶)였다. 실보에게는 손아래 여동생이 있었으니 이름을 골보(骨寶)라 했고 대세는 그 아들이었다.

따라서 대세는 비보랑과 종형제가 된다.

비보랑은 풍월주 자리를 미생에게 물려준다. 미생은 진흥.진지.진평에 이르는 3대 왕을 대대로 섬긴 미실이라는 여인의 남동생으로 10대 풍월주에 취임한다.

비보랑은 물러나면서 미생에게 부탁해 대세를 '전방대화랑' 자리에 앉힌다. 하지만 대세는 이내 밀려나고 만다. 왜 그랬는지 필사본 설명은 이렇다.

신임 풍월주 미생은 첩을 아주 많이 거느렸는데 애첩 중 한 명에게 제문랑(諸文郞)이라는 동생이 있었다. 이 제문랑이 누나의 권세를 빌려 대세를 밀어내고 전방대화랑 자리를 꿰차고 들어앉았던 것이다.

한데 축출 명분이 필요했던 듯, 대세에게는 유화(柳花)를 탐하고 폭음하며 행동이 거칠다는 비판이 가해졌다. 실제 대세에게는 이런 성격이 있었던 것 같다. 후견인격인 비보랑이 그에게 술에 빠지지 않도록 권고했다고 필사본에도 나온다.

술과 신선을 뗄 수 없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한데 대세는 자기를 중국 역사에서 죽림칠현(竹林七賢)으로 알려진 완적과 모랑에 비교했다고 한다. 하기야 대세(大世)라는 이름조차 그가 도가에 심취한 인물이라는 인상을 짙게 풍긴다.

이에 대해 「화랑세기」는 미생랑이 전임 풍월주인 비보랑의 청에 못이겨 대세를 전방대화랑 자리에 앉히기는 했으나 실권은 주지 않았다고 하고 있다.

그 때문인지 몰라도 대세는 미생을 싫어했다고 한다. 이에 대세는 그만 술병이 도지고 미생을 가리켜 '탐욕스럽고 어리석어 가뭄을 불러왔다'고 욕을 하고 다녔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 대세가 신라를 떠나 서해 바다로 사라지기 2년 전인 「삼국사기」 신라본기 진평왕 7년(585)조 기록을 보면 '봄 3월에 가물었으므로 왕이 정전(正殿)에 거처하기를 피하고 평상시의 반찬 가짓수를 줄였으며, 남당(南堂)에 나아가 몸소 죄수의 정상을 살폈다'는 기록이 나오고 있어 흥미를 더한다.

어떻든 대세는 급기야 화랑도에서 쫓겨나고 만다.

「화랑세기」는 이어 대세가 비보랑의 위로를 받아 분발하고 힘써 공부해 신선의 참된 도를 터득하고자 친구인 구칠과 더불어 바다를 건너 서쪽으로 갔다고 하고 있다.

「화랑세기」는 구칠 또한 비보랑을 따르는 화랑이었다고 전하고 있다.

이런 필사본 기록들을 살펴보고 난 후에도 여전히 한 가지 의문이 남는다. 대세와 구칠의 수수께끼 같은 증발 사건이 왜 「삼국사기」에도 남게 되었을까? 그만큼 대세와 구칠의 증발이 당대 신라인들에게 중요한 사건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이에 대한 단초는 「화랑세기」 필사본에 있다. 여기에는 대세와 구칠이 떠나자 전임 풍월주 비보랑의 심복 낭도들이 많이 불안해했다고 하고 있다.

이것만으로는 이 사건이 「삼국사기」에 남은 까닭이 잘 설명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우리가 정말로 주목해야 할 것은 대세와 구칠의 증발이 실은 화랑도가 각 계파로 갈라지는 본격적인 신호탄이었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 「화랑세기」는 (떠나가는 대세와 구칠을 가지 말라고) 힘써 달랬으나 실패하니 이로 인해 마침내 (화랑도의) 당파가 나뉘었다고 하고 있다.

필사본에 따르면 화랑도는 미생이 풍월주로 재임할 무렵에 5개파로 쪼개졌다.

이를 구체적으로 보면 첫째는 통합원류파라 해서 8세 풍월주 문노를 따르는 무리 중에서도 최정예로 임종.대세.수일이 주축이었다. 두 번째는 하종과 구륜공이 중심을 형성해 '대원신통'(왕비를 배출하는 혈통의 하나)을 받들려 한 미실파이다.

세 번째는 보리랑과 숙리부 중심으로 진골 정통을 받들려는 문노 일파이며, 네 번째가 정숙태자를 풍월주로 삼고 원광을 부제로 삼으려 한 이화류이다. 마지막 다섯 번째로는 천주공을 풍월주로 하고 서현랑(김유신의 아버지)을 부제로 삼으려 한 가야파가 있다.

신라 화랑도는 비보랑과 미생랑이 풍월주로 있던 시대에 이르러 이렇게 5개 당파로 쪼개지게 된 것이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진흥왕 재위 9년조에 대세와 구칠에 대한 행적이 남게 된 까닭이 화랑도의 분열에 있었다고 보아야 하며 그래야 뚱딴지같은 이 기록은 비로소 그 '뚱딴지성'이 해명된다.

더불어 우리는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대세와 구칠이라는 인물이 명확한 증거는 없으나 이들이 스승을 찾아 명산에서 도를 물으려 하고 평범한 인간에서 벗어나 신선(神仙)을 배우려는 부류로 그려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이 실은 화랑도였음을 명확하게 알게 된 것이다.

필사본이 가짜라면 그 창작자는 김부식과 헤로도투스를 아울러 능가하는 위대한 역사가이자 소설가라고 해야 할 것이다.

< 연합뉴스 기자 김태식 >

2002-01-23 19: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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