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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랑세기 특집] - ⑨ 진지왕의 두 가지 죽음

먼저 「삼국사기」에 기록된 진지왕의 죽음이다.

이곳 신라본기에 이르기를 진흥왕의 아들 금륜인 진지왕은 재위 4년째인 서기 579년 가을 7월 17일에 죽으니 시호를 진지(眞智)라 하고 영경사(永敬寺)라는 절 북쪽에 장사지냈다고 하고 있다.

이 기록을 그대로 믿는다면 진지왕은 왕위에 있다가 죽은 것이 된다. 여기서 주목할 것 중 하나는 「삼국사기」로는 아주 드물게 왕이 죽은 날짜가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다는 점이다.

「삼국사기」는 주지하다시피 날짜는 중시하지 않았고 월까지만 밝히는 게 통례다. 신라에 의한 삼한 통일 이전 왕의 죽음에 대해 구체적인 날짜를 명시한 사례는 제12대 첨해왕(재위 247-261)과 함께 진지왕의 경우가 유일하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첨해왕은 재위 15년(261) 겨울 12월 28일에 갑자기 병이 나서 죽었다. 「삼국사기」 체제가 전반적으로 월(月) 중심임에도 첨해왕의 경우 사망 날짜를 밝힌 것은 이른바 기년법 때문이었다.

「삼국사기」는 즉위년 기년법이라 해서 신라는 물론 백제, 고구려에 대한 기록에서도 이 방법을 택하고 있다. 즉, 전왕(前王) 재위 마지막 해를 새로 즉위한 왕의 원년으로 삼았던 것이다.

하지만 첨해왕의 경우 공교롭게도 사망일자가 한 해가 다 끝나가는 12월 28일이었으므로 그가 죽은 해가 뒤를 이어 즉위한 미추왕의 즉위 원년이 될 수는 없었다.

미추가 정확히 몇 월 몇 일에 즉위했는지는 기록이 남아있지 않으나 틀림없이 첨해왕 사망 이듬해 1월 초순 무렵에 왕위에 올랐을 것이다. 그래서 첨해왕의 경우 사망 날짜까지 「삼국사기」는 밝히게 된 것이다.

이런 전례에 미뤄보면 「삼국사기」에서 유독 진지왕에 대해서만 사망일자까지 남기고 있는 데는 틀림없이 무슨 곡절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삼국사기」 기록만으로는 알 수가 없다.

여기서 같은 사건을 전하고 있는 「삼국유사」를 참조할 필요가 있다. 이 책 도화녀-비형랑 설화에는 진지왕이 신라 제25대 사륜왕(舍輪王)으로 등장하거니와 진지는 그의 시호라고 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진지는 대건(大建) 8년 병신년(576)에 즉위해 나라를 다스린지 4년만에 정치가 문란하고 음탕하게 놀아(政亂荒淫) 임금 자리에서 축출됐다 하고 있다.

진지왕은 축출과 더불어 이내 사망했다고 「삼국유사」는 덧붙이고 있다. 이에 바로 뒤이어 그 유명한 도화녀-비형랑 설화가 나오고 있다.

어떻든 「삼국사기」든 「삼국유사」든 진지왕은 재위 4년째에 죽었다고 했다. 한데 두 기록 사이에는 아주 중요한 차이가 존재하고 있다. 즉 「삼국사기」는 진지가 왕으로 있다가 자연스런 죽음을 맞이했다고 전하는데 비해 「삼국유사」는 진지가 쫓겨난 뒤 죽었다고 하는 점이 그것이다.

「화랑세기」필사본에는 「삼국유사」처럼 진지가 쫓겨난 것으로 돼 있다. 그런데 필사본에는 「삼국유사」에서는 보이지 않는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으니 첫째, 진지를 쫓아낸 주축이 미실을 비롯한 궁중 여인들이라는 점이요, 둘째, 진지는 축출된 뒤 유궁(幽宮)에 3년 동안이나 유폐돼 있다가 죽었다는 점이 그것이다.

「화랑세기」에는 도화녀라는 여인은 물론이고 그와 진지에 얽힌 설화도 없다. 다만 비형랑이라는 인물만 등장하고 있으니 13대 풍월주 용춘공전에 '(용춘이) 비보랑을 형으로 섬기고 서제(庶弟) 비형랑과 함께 힘써 낭도를 모았다'고 하고 있다.

김춘추의 아버지인 김용춘이 진지왕의 아들임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공히 전하고 있다. 따라서 비형랑 또한 진지왕의 아들이니 김용춘에게는 서제, 즉 서출 동생이 되는 것이다.

진지왕이 3년 동안 유폐생활을 했다는 필사본 기록이야말로 「삼국유사」에 나오는 도화녀-비형랑 설화에 대한 모든 궁금증을 일거에 풀어주는 모든 키워드가 들어 있다. 무엇이 그런가? 첫째, 진지왕은 축출됐으며 곧바로 죽지 않고 3년 동안 유폐생활을 했다.

둘째, 그 유폐생활 동안 진지는 도화녀라는 여인과 관계했다.

셋째, 이들 사이에 난 결실이 비형랑이라는 아들이다.

넷째, 그러므로 비형랑은 용춘과는 어머니가 다른 형제가 된다.

다섯째, 비형랑이 밤마다 부린 귀신은 실은 화랑의 무리였다.

여섯째, 따라서 비형랑이 진평왕에게 천거한 귀신 길달 역시 화랑이었다.

「삼국유사」에서 비형랑이 죽은 진지가 낳은 아들로 기록되고, 진지가 도화녀와 이레 동안 머물 때 '언제나 오색 구름이 지붕을 덮고 향기가 방에 가득했다'는 기록은 진지왕의 유폐생활을 상징화한 설화 장치임에 틀림없다.

어느 누구도 지금껏 도화녀-비형랑 설화를 이렇게 풀지 못했다.

그런데 필사본 「화랑세기」는 가짜이므로 나는 필사본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노라고 공언하고 다니던 국내 한 고대사 연구자가 이 설화에 숨은 역사적 의미가 무엇인지를 파고드는 작업에 뛰어들었는데, 아주 역설적이게도 그의 연구성과는 필사본이 가짜가 아님을 증명하고 말았다.

< 연합뉴스 기자 김태식 >

2002-01-25 15: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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