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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랑세기 특집] - ⑪ 용수와 용춘

「화랑세기」 필사본 출현 이후 학계가 가장 놀란 것은 단연 한 사람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용수(龍壽)와 용춘(龍春)이 여기에는 형제로 나오고 있다는 대목을 꼽을 수 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모두 김용수 혹은 김용춘은 진지왕의 아들이자 김춘추의 아버지라고 나온다. 전남대 이강래 교수의 말을 빌리자면 국내외를 통틀어 한국고대사 어느 연구자도 용수와 용춘이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한 이는 없다.

하지만 필사본에서는 용수.용춘이 같은 사람의 두 이름이 아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처럼 진지왕의 아들이기는 하되 형제로 등장하고 있다. 좀더 구체적으로 보면 동생인 용춘은 13대 풍월주를 역임한 것으로 돼 있다.

김춘추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용수가 친아버지이며 작은 아버지 용춘은 형 용수가 죽은 다음에 형수인 천명부인(天明夫人)과 조카인 김춘추를 각각 처와 아들로 삼았다고 하고 있다.

「화랑세기」에 나오는 표현을 그대로 빌린다면 김용춘은 천명부인의 '계부'(繼夫)가 되며 김춘추의 '의부'(義父)가 된다.

이런 기록은 필사본이 소설적 창작품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지금껏 당연히 한 사람으로 알고 있었던 김용수-김용춘이 실은 다른 사람일 수도 있다는 강력한 추정을 제공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실제 이런 중요성을 주목한 학계에서는 필사본 기록에 대한 다각적인 검토를 시도했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로 이강래 교수와 함께 서강대 사학과 이종욱 교수가 있다.

용수와 용춘은 같은 사람인가, 아니면 필사본처럼 다른 사람인가를 접근한 방법은 두 교수가 달랐으나 결론은 같았다. 다른 사람이라는 것이다.

만약 이런 주장이 성립한다면 필사본 진위논쟁은 사실상 막을 내린다. 왜냐하면 어느 누구도 용수와 용춘이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용수와 용춘은 학계가 믿고 생각한 것처럼 같은 사람인가, 아니면 필사본 기록대로 다른 사람인가? 이를 위해 우선 필사본은 논외로 치고 「삼국사기」「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용수 혹은 용춘에 대한 기록을 모조리 뽑아 접근해야 한다.

먼저 「삼국사기」다.

용수와 용춘이 어떤 순서와 모습으로 나타나는가, 예컨대 단독으로 등장하는가, 어떤 관위(官位)를 지니고 있는가를 아주 유심히 보아야 한다.

진평왕 44년(622) 대목을 보면 ①이 해 2월에 '이찬 용수(龍樹)를 내성사신(內省私臣)으로 삼아 대궁(大宮).양궁(梁宮).사량궁(沙梁宮)의 3궁을 모두 관장하게 했다'고 하고 있다.

용수라는 인물이 「삼국사기」에서 가장 먼저, 그것도 단독으로 등장하는 장면이다. 용춘이라는 이름은 일언반구 언급이 없다.

다음은 이보다 7년 뒤인 같은 진평왕 재위 51년(629) 기록이다. 여기에 다음과 같이 이르고 있다.

②'8월에 왕이 대장군 용춘(龍春).서현(舒玄)과 부장군(副將軍) 유신(庾信)을 파견해 고구려 낭비성(娘臂城)을 침공하게 했다' 서현은 (김)유신의 아버지다. 부자가 함께 낭비성 전투에 출전한 것이다.

그런데 이 전쟁에서 신라군을 이끈 대장군으로 김서현과 함께 용춘이 등장하고 있다. 이것이 「삼국사기」에서 용춘이 등장하는 첫 번째 장면이다. 용수라는 이름은 일언반구 언급이 없다. 이 순간을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왜냐하면 적어도 여기까지만 보면 용수와 용춘은 누가 봐도 다른 사람이다.

그런데 이보다 6년이 더 지난 뒤인 선덕왕 재위 4년(635)조의 다음 기록으로 발길을 옮기면 상황이 아주 달라진다.

③'10월에 이찬 수품(水品)과 용수(龍樹. 용춘< 龍春 >이라고도 한다)를 보내 주현(州縣)을 돌며 (백성을) 위로하게 했다' 여기에 와서야 비로소 '용수, 혹은 용춘이라고도 한다'(龍樹, 一云 龍春)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이런 사정은 서기 654년 태종무열왕 즉위년조 기록에 가면 비슷하게 반복된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④'왕은 생전 이름이 춘추이니 진지왕 아들인 이찬 용춘(龍春. 용수< 龍樹 >라고도 한다)의 아들이다...4월, 돌아가신 왕의 아버지를 문흥대왕(文興大王)으로 추봉(追封)하고 어머니를 문정태후(文貞太后)라 했다' ③과 ④의 기록 사이에는 미묘한 차이가 관찰된다. 용수와 용춘이 서로 자리바꿈을 하고 있다.

어떻든 학계에서 용수 혹은 용춘을 같은 사람에 대한 다른 이름으로 봤던 까닭은 뒤에서 다룰 「삼국유사」 관련 기록 및 이 두 기록(③과 ④)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런 기록은 두 사람을 같은 인물로 본 의미없는 자리바꿈인가, 아니면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어떤 다른 의미가 있는 것인가.

< 연합뉴스 기자 김태식 >

2002-01-27 17:0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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