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청전에서 주목할 곳은 심청을 공양미 300석에 사들인 이들이 중국 선원이라는 점이다.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해신에 대한 인신공양은 중국 풍습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일본서기」에 나오는 다음 설화를 살펴보고 앞서 말한 「화랑세기」 필사본 관련 기록을 비교할 때 이러한 바다 인신공양은 비단 중국에만 그치는 게 아니라, 동아시아 고대의 보편적 풍속이자 신앙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일본서기」에 따르면 초대 진무(神武) 이후 12대 천황인 게이코(景行)는 11대 스이닌(垂仁)천황의 셋째 아들이다. 연대를 믿을 수는 없으나 「일본서기」에 따르면 게이코는 스이닌 재위 17년(기원전 13년)에 태어나 같은 왕 재위 37년(서기 8년) 정월 초하루에 태자가 되었다가 서기 71년 7월 11일에 즉위한다. 60년을 재위한 게이코는 서기 130년 11월 7일 143세를 일기로 사망했다는 것이다.

일본사에서 게이코는 그의 아들로 기록된 야마토타케루(日本武尊)라는 영웅에 가려 그다지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야마토타케루는 누구인가? 게이코에게는 황후가 둘이다. 첫째인 하리마노이나히노오오이라쓰메(播磨稻日大郞姬)가 죽은 다음에 야사카이리히메(八坂入媛命)가 황후가 된다.

게이코는 첫 황후에게서 아들 둘을 보는데 큰아들이 오오우스노미코토(大確命), 둘째가 오우스노미코토(小確命)였다. 이 둘째가 나중에 여러 주변 지역 야만족을 정벌하는 과정에서 야마토타케루(日本武尊)라는 존칭을 얻게 된다.

「고사기」에는 야마토타케루를 '倭建命'(왜건명)이라 표기하고 있는데 발음은 같은 '야마토타케루'다. 각종 혁혁한 전공을 올린 야마토타케루는 게이코 재위 40년 여름 6월에는 동방의 한 시골에 변란이 일어나고 변경이 소란해지자 천황의 명을 받아 동방 정벌에 나선다.

이것이 일본사 혹은 신화사에서 아주 유명한 야마토타케루의 동정(東征) 이야기다. 역사적 진실성이야 어떻든 게이코 천황 무렵 「일본서기」 기록을 뜯어보면 이 때 일본 조정의 중심지는 규슈 일대 어딘가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야마토타케루가 정벌에 나선 동방(東方)이라 함은 나중에 야마토정권이 확고하게 자리잡는 킨키(近畿) 지방 일대 어딘가를 말할 것이다. 여기에서 반란이 일어난 것이며, 그 진압 책임자로 게이코는 아들 야마토타케루를 임명한 것이다.

야마토타케루는 군권(軍權)의 상징인 부월(斧鉞. 일종의 도끼)을 아버지에게서 받아들고 반란이 일어난 그 해 10월 동쪽을 향해 출정한다.

동쪽으로 가는 진압군은 해로를 이용했다. 일본 전도를 펼쳐놓고 보면 실제야 어떠했건 야마토타케루가 건넌 바다는 시모노세키에서 긴키지방으로 통하는 세토나이해였다.

한데 김춘추가 당나라에 사신으로 갈 때 서해에서 그랬던 것처럼 야먀토타케루는 모진 풍랑을 만나 난파 일보직전에 처한다. 바다 가운데서 갑자기 폭풍이 일어난 것이다. 이때 야마토타케루를 따라온 한 여인이 나선다. 오토타치바나히메(弟橘媛)라는 여자였는데 오시야마스쿠네의 딸이었다.

「일본서기」는 오토타치바나히메가 야마토타케루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지금 풍랑이 매우 심해 배가 가라앉으려고 합니다. 이는 반드시 해신의 짓입니다. 천한 첩의 몸을 왕의 목숨에 대신하여 바다에 들어가려 합니다' 말을 마친 오토타치바나히메는 정말로 거센 파도가 치는 바다로 뛰어들었다. 그러자 폭풍이 이내 그쳤고 표류하던 야마토타케루의 배도 해안에 닿을 수 있었다.

「일본서기」는 이런 사건 때문에 이 바다를 '하시리미즈'(馳水. 치수)라 했다고 전하고 있다. 하시리미즈란 물을 길들인다, 혹은 길들인 물이라는 뜻이다.

우리는 실제 이런 사건이 일본 고대에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관심이 없다. 다만 이 기록을 통해 풍랑을 일으키는 주체는 해신(海神)이며, 또 여자를 바다에 집어던지면 해신의 노여움을 풀 수 있다는 믿음과 풍습이 고대 일본에도 있었다는 사실을 주목할 뿐이다.

인신공양을 골자로 하는 심청전의 원형은 이처럼 아주 오래된 것이며 동북아시아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그러한 사실을 필사본 「화랑세기」에서도 확인하는 것이다.

현존 심청전에서 우리가 주의할 것은 조선시대에 문자로 정착됐음이 확실한 이 작품은 이미 원시신앙의 원형을 많이 상실해 버리고 조선시대 이데올로기인 성리학으로 짙게 덧칠이 돼 있다는 사실이다.

심청전을 관통하는 사상은 충효, 그 중에서도 특히 효(孝)에 가 있음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심청전을 태동시킨 해신에 대한 인신공양의 원초적인 모습은 이렇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원초적인 모습을 우리는 「일본서기」 뿐만 아니라 「화랑세기」 필사본에서 또 하나 찾아낸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가 필사본 및 「일본서기」 인신공양 기사에서 주목할 것은 여기에는 유교적 이데올로기 흔적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필사본에 따르면 데리고 가던 여자(틀림없이 당나라 조정에 바치기 위한 유화 3명중 한 명일 것이다)를 뱃사람들이 빠뜨려 해신의 분노를 녹이려 하자 예원은 다음과 같은 말로 설득해 막은 것으로 나온다.

'사람의 목숨은 지극히 중한데 어찌 함부로 죽이겠는가' 같은 사신단 일원인 양도 또한 예원의 말에 동조하며 여자를 바다에 빠뜨려서는 안된다고 했다. 그래서 결국은 인신공양 행위는 일어나지 않았다. 한데 묘하게도 예원과 양도의 말이 끝나자마자 바다가 곧 잠잠해졌다. 이 장면을 필사본은 말한다.

'사람들은 해신(海神)이 공(예원공)의 말을 듣고 노여움을 풀었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분명 인신공양을 받는 주체는 해신으로 그려지고 있다. 후대에 각색된 심청전처럼 용왕(龍王)이 아닌 점을 주목해야 한다. 필사본이 심청전을 베꼈다면 아마도 용왕이라 했을 것이다.

어떻든 이런 대화를 통해 우리는 설혹 해신에 대한 인신공양이 일어나지 않았음에도 이런 풍습이 당시까지 뱃사람들에게는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아울러 이를 통해 민속학자들이 그토록이나 뿌리와 증거를 찾아 헤맨 심청전의 원형이 바로 신라시대에 존재했음을 알게 되었다.

물론 이번에도 「화랑세기」 가짜론자들이 '그렇다면 필사본은 「일본서기」와 심청전을 적절히 베꼈다'고 하면 할 말은 없겠지만.

< 연합뉴스 기자 김태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