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를 왕위에 머물며 탕평책(蕩平策)으로 나라를 안정시킨 조선조 21대 영조대왕은 인간적으로는 무척 불행한 임금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며느리인 혜경궁 홍씨(惠慶宮 洪氏)의 자전적 회고록인 한중록(閑中錄)을 보면 영조의 강박증이 결국 아들인 사도세자(思悼世子)를 뒤주 속에 가둬 죽게 했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불러일으킨다.

영조는 궁밖에서 돌아오면 입었던 옷을 반드시 갈아입었으며, 불길한 일로 대화한 뒤에는 귀를 씻고 양치질을 했다고 한다.

좋은 일이 있을 때와 좋지 않은 일이 있을 때 출입하는 궁문까지 달라서 영조가 만안문(萬安門)으로 들면 궁중은 우울해지고 경화문(景華門)으로 들면 궁중에 화기가 돌았다.

영조는 외아들인 사도세자와 열두 명의 옹주를 슬하에 두었는데 셋째와 아홉째 옹주는 지극히 사랑하고 사도세자와 일곱째 옹주는 극도로 미워했다.

내성적이고 우유부단한 성격의 사도세자는 이런 부친의 편견 속에서 극심한 갈등을 겪었다고 한중록은 적고 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서 사도세자에게서도 강박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혜경궁 홍씨는 이를 '의대병(衣 衣변에對 病)'이라고 일컬었다. 의대란 임금의 옷을 뜻한다. 곧 세자의 강박증이 옷에서부터 나타났음을 말하고 있다.

세자가 옷 한 벌을 갈아입으려면 열 벌 정도를 마련해 놓아야 했다. 이런 저런 탓을 해가며 찢거나 태워 버렸기 때문이다. 또 겨우 옷을 갈아입게 되면 그 옷을 더러워지도록 벗지 않았다 한다.

영조가 밖에서 정사를 보고 돌아올 때 반드시 옷을 갈아입고 안에 들었다는 점으로 미루어 세자의 강박증이 옷으로 폭발한 것은 곧 부왕의 강박증이 자주 옷에 투사됐던 것과 밀접한 연관이 있어 보인다.

사도세자에게서 이 의대증이 발작하기 시작한 것은 영조 33년인 1757년으로 그의 나이 스물세 살 때였다.

이후 광행(狂行)이 점점 심해지자 왕은 5년 뒤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어 굶겨 죽였던 것이다.

사도세자는 영조와 영빈 이씨(暎嬪 李氏)와의 소생으로, 그의 이복형 효장세자(孝章世子)가 10세의 나이로 요절한 뒤 영조의 나이 40세에 낳은 둘째 아들이다.

그는 왕세자로 책봉돼 10살 되던 해에 당시 영의정 홍봉한(洪鳳漢)의 딸(혜경궁 홍씨)과 결혼해 정조를 낳았다.

경기대 최홍규 교수는 사도세자의 죽음을 노론.소론간 당파싸움이 빚은 비극으로 해석한다.

영조는 노론과 소론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인재를 고루 등용하는 탕평책을 썼으나 청주지방에서 발생한 이인좌(李麟佐)의 난을 계기로 소론의 편으로 기울게 됐다.

이에 당시 노론측이 세자의 비행을 들어 상변(上變)하자 격분한 영조는 세자를 폐위하고 자결토록 명령한 뒤 뒤주 속에 가둬 8일 만에 죽게 했다.

세자가 영조의 명으로 15세부터 대리기무(代理機務)를 보게 된 것을 기화로 세력을 떨치게 된 소론 홍봉한 일파를 몰아내기 위한 노론의 음모가 부른 화(禍)였다는 것이다.

권력다툼의 결과였는지 아니면 부왕의 강박증세가 초래한 참변이었는지를 가리기는 어렵지만 아무튼 영조는 지나쳤음을 깨닫고 그 해 그의 죽음을 위로하기 위해 사도(思悼)의 시호를 내리고 함춘원(含春苑)을 짓도록 했다.

사도세자(莊獻世子.후에 莊祖 추존)와 그의 비 경의왕후(敬懿王后.혜경궁 홍씨)의 능인 융릉은 본래 양주군 배봉산(현재 서울 전농동 서울시립대 터)에 조성돼 영우원(永佑園)으로 불리다 정조(正祖) 13년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

정조는 불행한 삶을 살다 간 아버지의 무덤을 수원 화산(花山.현재 화성시 태안읍) 남쪽 기슭으로 옮기고 화성(華城) 축성과 함께 행궁을 지은 뒤 거의 해마다 능행을 하는 효심을 보였다.

융능은 정조와 비 효의왕후(孝懿王后)가 묻힌 건릉(健陵)과 함께 1970년 사적 206호로 지정됐다.

정조에 의해 현륭원(顯隆園)으로 이름붙여진 융능은 주위를 장식한 둘레돌(護石)과 덮개돌(床石), 8각의 장명등(長明燈).문석(文石) 등의 품격이 빼어나 이후 능묘 석물양식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