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회원가입  
Home MR뉴스 무기체계 컨텐츠 신제품 유료존 MR기네스 KNIVES 특수부대 軍뉴스 프리존
[역사의 숨결을 찾아] ⑪ 고양 연산군 금표비(禁標碑)

'금표(禁標) 안으로 들어온 자는 모두 참수하고 심한 경우 삼족을 멸하라' 듣기에도 섬뜩한 이 문구가 국왕이 유흥과 패륜을 위해 지시한 것이라면 과연 믿을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우리에게는 분명 이런 부끄러운 역사가 실재한다.

조선조 폭군의 상징이었던 연산군(燕山君)이 바로 그 역사의 중심에 서 있다.

이런 역사는 경기도 고양시 대자동 일명 '간촌마을'에서 발견된 연산군 금표비(禁標碑) 비문에 그대로 농축돼 나타난다.

금표비는 중국 역사에도 자주 등장하는데 주로 사냥이 목적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대체로 왕이나 왕족, 지역 수령이 사냥이나 군사훈련, 산림보호 등 특별한 목적을 위해 일정 구역에 설치, 사용한 것으로 조선왕조실록 등에 기록돼 있다.

세종때 사냥을 위한 금표 설치 기록이 나타나고 연산군 금표를 비롯해 강원도 영월 청령포 단종 유배지 금표나 강원도 원주 치악산 금표, 경기도 강화군 강화도 금표 등은 현재까지 실물로 전해져 오고 있다.

역모를 우려했던 세조에 의해 단종 유배지에 단종때 중신들이 찾아오지 못하도록 하는 등 특정 계층의 접근이 엄격히 통제된 적도 있었지만 금표 지역의 출입 통제는 일시적으로 사냥이나 산림보호 목적이 사라지면 출입 통제도 해제됐다.

그러나 연산군 금표비처럼 출입이 전면 통제된 가운데 유흥과 패륜의 목적으로 이용되고 그 면적 또한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넓은 데다 참수 등 끔찍한 출입 제재 수단이 동원된 사례는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비문을 보자.'금표내범입자논기훼제서율처단(禁標內犯入者論棄毁制書律處斷)'.

허가받지 않은 자가 금표 내로 들어오면 참수는 물론 삼족을 멸할 수 있도록 규정한 '기훼제서율'로 다스리라는 것이다.

연산의 폭정은 모두 70권으로 돼 있는 '연산군일기'에 이런 내용들이 낱낱이 서술돼 있다.

그 내용이 너무 끔찍하고 비상식적이어서 이 금표비가 발견되기 전까지 학계 일부에서 '설마 그렇게까지 심한 폭정을 했겠느냐'는 의문을 꾸준히 제기해 왔다.

더구나 연산군일기는 후세가 기록한 패자의 역사라는 이유 때문에 사실(史實)이 정도 이상으로 왜곡됐을 가능성도 있다는 주장까지 나올 정도였다.

그러나 지난 95년 당시 고양시문화원 연구원이었던 정동일(37.현재 고양시 전문위원)씨에 의해 이 금표비가 처음 발견된 뒤 이 논란은 자연스레 끝이 났다.

연산군이 직접 지시해 만들었던 금표비였기 때문이다.

이 금표비는 무수히 많이 만들어졌지만 연산군을 밀어 내고 왕위에 오른 중종(中宗)이 폭정의 상징으로 없애도록 결정, 모두 부수어 파묻는 바람에 그동안 한번도 발견된 적이 없어 발견 전까지 실재 여부가 큰 관심거리였다.

이를 주제로 석사학위 논문을 쓴 정동일씨는 '금표비는 기록으로만 나타나는 연산군의 폭정을 입증해 주는 명백한 증거물'이라고 말했다.

연산군일기를 자세히 살펴보면 초기에는 단순히 사냥을 목적으로 금표비를 세웠지만 집권 후기로 접어 들면서 점차 구역을 넓혀 유흥과 패륜의 장소로 변질시킨 것으로 보인다.

처음 금표비가 설치된 연산군 10년(1504년) 8월에는 그 면적이 도성으로부터 반경 12∼16㎞ 가량, 현재의 고양시와 양주군, 서울시 일대에 불과했지만 점차 구역이 확장됐다.

4차례에 걸친 확장 끝에 연산군 12년(1506년) 2월에는 도성으로부터 반경 40㎞, 지금의 서울.경기 전역과 서해에까지 이르렀다.

정 위원은 '면적 확대는 도성 인근에 사냥감이 적은 데다 왕실의 권위를 과시하기 위해서인 것 같다'며 '특히 장녹수와 여흥을 즐긴 일이 도성 내에 비판 대자보가 나붙자 글을 쓴 사람의 거주지인 당시 고양군을 없앨 정도였다'고 전했다.

이 금표비는 발견된 그 해 경기도문화재로 지정돼 방문객들이 잘 찾을 수 있도록 100여m 산 아래 큰 길로 옮겨져 철책 안에 잘 보존돼 있다.

그러나 우연히 옮긴 곳이 연산군의 폭정을 비판하다 연산군에게 자신은 물론 여섯 아들과 함께 죽임을 당한 태종의 증손 무풍군(茂豊君) 이총(李摠)의 묘 바로 앞이어서 보는 이들에게 묘한 역사의 아이러니를 느끼게 한다.

2002-03-17 17:14:07

덧글쓰기

협력기관 및 업체 : 대한민국 공군 - 대한민국 해군 - 국방일보 - 국정브리핑 - Defense LINK - 군사저널
공정거래위원회 고시 제2000-1호에 따른 안내, 사업자 등록번호 : 220-86-07275
(주)아이엠알코리아, 대표이사 주재은, 전화 (02) 578-8278 (■ 잡지 취급하지 않습니다. 문의사절합니다.), 통신판매업 허가 : 서초 제 3300호
광고문의 - 개인정보 취급방침 - MR 이용자 약관 - 회원관련문의 - 탈퇴신청
Copyright ⓒ 1998-2017 (주) iMR Corea.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