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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숨결을 찾아] ⑫ 광명 관감정(觀感亭)



[사진설명] 경기도 광명시 소하동 조선시대 대표적 청백리(淸白吏)인 오리(梧里) 이원익(李元翼:1547∼1634년) 선생의 묘.


경기도 광명시 소하동에는 조선조 대표적 청백리(淸白吏) 오리(梧里) 이원익(李元翼:1547∼1634년) 선생이 노후를 보낸 관감정(觀感亭)이란 누정(樓亭)이 있다.

길이 12m, 너비 4.4m 단층 목조와가(木造瓦家) 형태인 관감정 뜰에는 수령이 400년쯤 됨직한 측백나무를 중심으로 100년 전후의 향나무와 오동나무 등이 서있어 고풍스러움을 한층 더해준다.

관감정이란 옥호(屋號)는 벼슬에서 물러난 오리 선생이 비바람이 새는 퇴락한 집에서 끼니 걱정을 하며 생활하고 있다는 승지(承旨)의 보고를 받고 인조(仁祖)가 집을 하사하면서 지어준 이름이다.

인조는 '오리의 청백리 정신을 모든 신민(臣民)이 보고 느껴야 한다'는 의미로 관감정이란 옥호를 내렸다고 한다.

관감정의 유래에서 볼 수 있듯 오리 선생은 당 시대의 명신(名臣)이자 청백리로 대단한 칭송을 받은 듯하다.

오리 선생은 명종 2년에 태어나 18세에 진사시(進士試), 22세에 별시문과(別試文科)에 급제, 관직에 들어선 이후 예조판서와 우의정을 거쳐 선조, 광해군, 인조 등 3대에 걸쳐 여섯번이나 영의정을 지낸 인물이다.

오리 선생은 그러나 40년 정승생활 동안 청백리로 일관했으며 퇴임 후 인조로부터 누정을 하사받기 까지 온 식구가 몇 칸에 불과한 광명 소하동 초가에서 근근한 생활을 연명했다고 한다.

더구나 인조가 관감정과 무명이불, 흰 명주 요를 하사하자 상소를 올려 사양했을 만큼 자신에게 주어진 것조차 받지 않는 꼿꼿한 생활을 했다.

오리 선생의 대표적 업적으로는 백성들의 과도한 세부담을 줄이고 불합리한 조세제도의 폐단을 없애기 위해 주창한 대동법(大同法)을 들 수 있다.

당시대의 조세제도는 공물(貢物) 즉 각 지방의 특산물로 세금으로 내도록 하고 있었는데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관리들이 생산되지 않는 공물을 배정한다든지 다른 사람의 세금을 대신 물리는 등 폐단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로 인해 유민들이 양산됐고 국가는 재정수입이 점점 감소되는 악순환이 되풀이됐다.

오리 선생은 광해군 즉위 첫해인 1608년 영의정으로 재임하면서 공물 대신 쌀로 세금을 낼 수 있도록 하는 대동법 시행을 건의, 백성들의 과도한 세 부담을 줄이고 상공업의 발달을 촉진하는 탁월한 경륜을 펼친다.

이에 앞서 선조 20년(1587년) 안주목사로 재직 당시 1년에 3개월씩 복무해야 하는 군병방술제도(軍兵防戌制度)를 개혁, 2개월로 단축시켜 백성들의 고된 신역을 덜어주는 등 남다른 애민(愛民)정신을 보여줬다.

오리 선생의 청백리 정신은 손자 수약(守約)에게 쓴 글을 통해 엿볼 수 있다.

모두 8개 항 가운데 첫 항목에는 '세상을 다스리는 데에는 백성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한 것이 없고, 몸을 닦는 데는 욕심을 적게 하는 것보다 더한 것이 없다' 고 훈시했다.

또 죽음을 앞두고 유서를 통해 후손들에게 검소함에 대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오리 선생의 관직 생활이 평탄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선조 16년 우부승지로 재직 중 당시 도승지인 박근원의 죄에 연루돼 파직됐었고 선조 31년 영의정 재직 당시 유성룡(柳成龍)을 변호하다 사직하고 광해군시절에는 계모인 인목대비(仁穆大妃) 폐위를 반대하다 유배되기도 했다.

수차례에 걸친 시련에도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는 올곧음으로 일관했다.

관감당 바로 뒤편에는 선생의 영정(影幀)을 모신 작은 영당(影當), 오리영우(梧里 影宇)가 있다.

영당의 오리영우란 편액은 숙종때 이조판서를 지낸 근옹 이관징(李觀徵)이 썼다고 한다.

관감당과 오리영당 주변에 둘러 싸인 담장을 사이로 올라가면 고려조 강감찬(姜邯贊)장군과 서견(徐甄), 오리선생을 배향하고 봄.가을로 제향하던 충현서원(忠賢書院)의 터가 남아있다.

이 서원은 은퇴한 오리선생이 강감찬, 서견 두 분을 기리기 위해 이현사(二賢祠)로 건립하려다 숨지는 바람에 건립하지 못하고 훗날 효종 9년(1658년) 이 고장 유림들이 두분 외에 오리선생도 함께 배향할 수 있도록 삼현사(三賢祠)로 세워 이름하게 됐다고 한다.

서원 터 뒤편 언덕에는 풍욕대(風浴臺)와 삼상대(三相臺)란 정자가 나그네의 발길을 끈다.

오리 선생은 현재 관감당에서 안양 방면으로 1㎞ 남쪽에 위치한 서독산의 능선 아래 남향으로 안장돼 있다.

묘 입구에는 선생의 저서 '오리선생집'를 비롯, 후손들에게 남긴 유서, 영정 등을 보관, 전시하는 오리 이원익 기념관과 경기도 기념물 제 85호로 지정된 신도비(神道碑)가 있다.

2002-03-24 14: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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