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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숨결을 찾아] ⑬ 강화 고려궁지(高麗宮址)



강화도는 왕도(王都)로 불린다.

고려시대 몽골의 침략에 맞서 도읍을 개성에서 이 곳 강화로 옮겨 환도(還都)할때까지 39년동안 비운(悲運)의 역사가 간직돼 있기 때문이다.

강화대교를 건너 강화군청 우측으로 언덕위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송악산 중턱에 고려 고종 19년(1232년)부터 원종 11년(1270)에 이르기까지 왕들이 나라일을 보던 궁궐 터가 모습을 드러낸다.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에는 고려 고종 19년(1232년) 몽골의 침입에 맞서기 위해 권신(權臣) 최우(崔瑀)가 이령군(二領軍)을 동원해 이 곳에 궁을 지었다고 기록돼 있다.

몽골의 내정간섭이 심해지자 최우, 승천부(昇天府) 부사(副使) 윤린(尹燐) 등은 바다에 둘러싸인 강화도가 수전(水戰)에 약한 몽골군을 막아낼 수 있는 천혜의 요새라며 고종에게 강화천도(江華遷都)를 주창, 북산에 궁을 짓고 도읍을 옮겼다.

강화궁은 규모는 작으나 개성의 송악궁을 빼닮았으며 북산도 송악산으로 이름을 고쳐 부르는 등 왕도의 권위를 잃지 않으려는 흔적이 배어 있다.

고려궁은 2년만인 고종 21년(1234년)에 완공됐다.

본궁인 연경궁(延慶宮)을 비롯해 충렬왕이 장경도량을 베푼 강안전(康安殿), 왕실의 사당인 대관전(大觀殿), 행정.군사.의료 등을 담당하던 여정궁(麗正宮) 등 14개의 궁궐과 부속건물이 지어졌다.

또 둘레에 성을 쌓고 성문을 만들었다.

3개 문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큰 왕궁의 정문 승평문(昇平門)은 임금 전용문으로 외국 사신도 이용할 수 없었다.

임금이 밖에서 일을 보고 승평문을 통해 환궁할때는 조정 대신 이하 신료들이 말에서 내려 맞아 들였다.

단 한번 뜻하지 않은 일이 일어났다.

몽골에 볼모로 가 있던 태자 전(傳)이 고종이 하세(下世)했다는 소식을 듣고 환도하면서 승려인 대강화상과 함께 승평문으로 들어오는 전례에 없는 일이 발생했다고 고려사는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원종 11년(1270년) 개성으로 환도한 뒤 몽골군이 끝까지 저항하던 삼별초(三別抄)를 소탕한다며 도성에 불을 질러 대부분의 건물이 무너져 내렸다.

지금은 기단과 돌계단이 남아있을 뿐 옛 모습을 찾아볼 수 없으며 승평문만이 복원돼 후손들을 맞이하고 있다.

흔적만 남아있는 고려궁지 2천279평은 사적 제133호로 지정됐다.

그 뒤 조선 인조 9년(1631년)에 고려궁터에 행궁(行宮)을 지었다.

또 조선 태조의 초상화를 모신 봉선정(奉先殿), 임금의 책자를 보관하던 내책고(內冊庫), 금(金).은(銀)을 모아두던 북신고(北新庫) 등 많은 전각들을 건립했으나 병자호란과 병인양요때 모두 불에 탔다.

다만 인조 16년(1638년)에 지은 강화유수부 동헌(江華留守府 東軒)과 이방청(吏房廳)은 지금도 옛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조선시대 관아건물인 강화유수부 동헌은 일제시대부터 해방때까지 군청으로 사용하다 1977년 강화 북방유적 복원사업의 일환으로 개수됐다.

동헌에는 조선시대 명필 백하(白下) 윤순(尹淳)이 쓴 명위헌(明威軒)이라는 현판이 걸려있으며 인천시 유형문화재 제25호로 지정돼 보호 관리되고 있다.

동헌은 정면 8칸, 측면 3칸의 익공계(翼工系) 팔작(八作)지붕으로 돼 있다.

강화유수부 육방(六房) 중 하나인 이방청은 조선 효종때 세웠으며 정조 7년(1783년) 유수 김노진(金盧鎭)이 중수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방청은 'ㄷ'자 형태의 목조 단층 건물로 80평 정도의 터에 온돌방 8칸, 대청 12칸, 부엌 1칸 등으로 구성됐다.

일제시대부터 강화등기소로 사용하다 1977년 복원, 수리됐다.

현재 이방청 내벽에는 강화 국난극복의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사진과 그림이 전시돼 있다.

또 조선시대 강화성 남문에 걸어놓고 성문을 여닫는 시각을 알리던 동종(銅鍾)도 보관돼 있다.

병인양요때 프랑스군이 약탈해 가려다 갑곶(甲串)에 버린 것을 고려궁지 서쪽에 종각을 짓고 옮겨 놓았다.

이 종은 여느 종과는 달리 소리구멍인 용통(甬筒)이 없는 것이 특징으로 조선 숙종 37년(1771년)에 주조했다는 명문(銘文)이 남아있으며 보물 11호로 지정됐다.

강화동종에 균열이 생겨 타종할 수 없게되자 1999년 10월 같은 모양의 종을 만들어 설치하고 원래의 종은 강화역사관으로 옮겨 보관하고 있다.

2002-03-31 15: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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