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회원가입  
Home MR뉴스 무기체계 컨텐츠 신제품 유료존 MR기네스 KNIVES 특수부대 軍뉴스 프리존
[문화유산 답사] ① 화양구곡과 송시열



조선시대의 대표적 주자학자인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1607-1689).

그 처럼 우리 역사에서 다른 평가를 받는 인물도 흔치 않다.

병자호란의 치욕을 씻기 위해 효종과 함께 북벌(北伐)의 웅비를 펼치려 했던 그를 예송논쟁(효종의 장례 등을 두고 서인과 남인, 노론과 소론이 벌였던 논쟁)에서 출발한 조선후기 당파싸움의 중심인물로 보는 이들도 적지 않다.

충북 괴산군 청천면 속리산국립공원 내 낙영산에서 뻗어 내려 온 화양계곡과 송시열은 떼어 놓을 수 없다.

송시열은 74세가 되던 1683년 모든 벼슬을 버리고 은거생활을 하며 이 계곡 아홉 곳의 명소에 이름을 붙인 뒤 화양구곡(華陽九谷)이라 불렀다.

300여년의 역사가 흘렀지만 아직도 곳곳에서 송시열과 그의 사상에 대한 편린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계곡의 기암절벽이 하늘을 떠받치고 있다는 1곡 경천벽(擎天壁)과 구름이 그림자처럼 맑게 비친다는 2곡 운영담(雲影潭)을 지나면 송시열이 효종의 승하를 애도하며 새벽마다 엎드려 통곡했다는 3곡 읍궁암(泣弓巖)이 나온다.

읍궁암 앞쪽에는 화양서원지(華陽書院址)와 만동묘지(萬東廟址)가 있다.

송시열은 1689년 왕세자(경종)가 책봉되자 이를 반대하는 상소를 해 제주로 유배됐다가 국문을 받기 위해 상경하던 중 남인들에 의해 사사됐으나 5년 뒤 신원(伸寃)됐으며 노론들이 그를 제향하기 위해 화양서원과 화양서원묘정비(華陽書院廟庭碑.충북도 기념물 제107호)를 세웠다.

이후 전국에서 서원이 잇따라 설립됐으니 당대에 송시열의 영향력을 짐작케 한다.

만동묘는 송시열의 유언에 따라 수제자인 수암(遂菴) 권상하(權尙夏)가 임진왜란 때 원군을 파견한 명나라 신종과 의종의 위패를 모시기 위해 숙종 29년(1703)년에 건립하고 만동묘정비(萬東廟庭碑.도 기념물 제25호)도 세웠다.

송시열은 갔지만 그의 사상은 이 곳을 통해 전파되면서 화양서원이 노론을 대표하는 위세 당당한 서원으로 자리잡게 됐다.

화양서원은 고종 7년(1870년) 서원철폐령에 의해 헐렸으며 만동묘는 1942년 일제에 의해 불타고 묘정비들은 땅에 묻혀버렸다.

묘정비들은 광복 뒤 다시 세워졌으나 건물 초석 일부만 덩그러니 남아 있어 번창했던 서원의 모습을 찾아 보기 힘들다.

특히 화양서원은 지난 80년대 수해로 인해 13채 중 11채의 초석마저 유실됐고 그 자리를 화장실, 급수대 등이 차지하고 있어 세월의 무상함을 보여주고 있다.

화양구곡 중 암서재(岩棲齋.도 유형문화재 제175호)가 으뜸으로 꼽히고 있다.

송시열이 물가에 우뚝 솟은 커다란 바위를 주춧돌로 삼아 방 한칸짜리 집을 올린 뒤 이 곳에서 책을 읽고 시를 읊었다고 한다.

주위에는 기암절벽과 노송, 모래밭이 어우러진 4곡 금사담(今砂潭)이 있어 누구라도 암서재에 오르면 시조 한수를 읊으며 감상에 잠길듯하다.

화양구곡이 중국의 무이구곡을 모방했듯이 암서재도 주자가 기거했던 운곡정사를 염두에 둔 것이어서 송시열이 주자사상에 얼마나 심취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이와 함께 그의 중화사상과 반청의식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암서재 옆의 바위와 5곡 첨성대(瞻星臺)에는 `창오운단(蒼梧雲斷.푸른 벽이 구름을 끊고), 무이산공(武夷山空.주자가 있었던 무이산이 비었네)', `비례부동(非禮不動.예가 아니면 행동하지 않는다)'라는 음각이 있어 그가 명나라를 얼마나 숭상했는지를 암시하고 있다.

이 곳을 지나면 계곡을 따라 능운대(凌雲臺), 와룡대(臥龍臺), 학소대(鶴巢臺), 파곶(巴串)이 펼쳐지고 바위 곳곳에 송시열과 화양서원을 찾아온 어사(御使)의 관직, 이름 등을 적어놓은 음각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처럼 송시열에 의해 명명된 화양구곡은 그의 사후에도 후학들과 영욕을 같이하는 해 온 역사의 현장이다.

기암절벽, 울창한 노송, 맑은 계곡수 등 구곡의 명소를 하나씩 지날 때마다 역사의 한 페이지씩을 넘기는 듯한 감상에 젖어드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그러나 답사를 마친 뒤 너럭바위에 앉아 따뜻한 봄볕을 맞으며 바라본 화양계곡은 자연의 아름다움보다는 중화사상을 최고의 가치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던 우리 역사에 대한 아쉬움으로 다가왔다.

2002-04-05 10:47:05

덧글쓰기

협력기관 및 업체 : 대한민국 공군 - 대한민국 해군 - 국방일보 - 국정브리핑 - Defense LINK - 군사저널
공정거래위원회 고시 제2000-1호에 따른 안내, 사업자 등록번호 : 220-86-07275
(주)아이엠알코리아, 대표이사 주재은, 전화 (02) 578-8278 (■ 잡지 취급하지 않습니다. 문의사절합니다.), 통신판매업 허가 : 서초 제 3300호
광고문의 - 개인정보 취급방침 - MR 이용자 약관 - 회원관련문의 - 탈퇴신청
Copyright ⓒ 1998-2017 (주) iMR Corea.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