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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숨결을 찾아] (16) 안산 첨성리(瞻星里)

경기도 안산시 이동 단원조각공원 바로 옆 언덕 위에 조선조 대표적 실학자 성호(星湖) 이익(李瀷:1681∼1763년) 선생의 묘소가 있다.

묘소 봉분의 규모는 600×550×220㎝로 제법 크고 석물로는 지난 1967년 세워진 묘비(墓碑)와 상석(床石), 향로석(香爐石), 망주석(望柱石) 등이 있다.

묘소 바로 우측 아래에는 선생의 영정을 모신 경호제(景湖濟)란 조그만 사당이 있어 매년 5월이면 선생에 대한 제사와 함께 숭모제(崇慕際)가 열린다.

이 기간 개최되는 안산종합문화예술제에는 선생의 실학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성호백일장, 성호사상학술대회를 비롯, 청소년 국악경연대회, 풍물놀이경연대회, 전통민속놀이한마당 등 대형 전통문화 행사가 펼쳐진다.

특히 다음달 25일에는 선생의 학문적 업적과 사상 등 역사적 자료를 보전, 전시하기 위한 성호기념관이 묘소 주변에 문을 연다.

39억원이 투입된 기념관은 대지면적 9천246㎡, 연면적 1천480㎡,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로 기획전시실, 상설전시관, 다목적 영상관 등이 설치돼 그의 실학사상을 조명하게 된다.

이렇듯 안산에서 성호선생에 대한 숭모 열기는 그가 세상을 떠난 지 2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뜨겁기만 하다.

선생은 도승지를 역임한 부친 이하진(李夏鎭)이 당쟁에 휘말려 귀양살이를 한 평안도 운산에서 태어났으나 부친의 사망과 함께 지금의 안산시 이동, 과거 첨성리(瞻星里)로 이사를 오게된다.

선생은 어릴 때 건강이 좋지 않아 10여세가 지나 글공부를 시작했고 25세 때(1705년) 증광시(增廣試)에 낙방했으며 이듬해 형 잠(潛)의 상소가 문제가 돼 역적으로 몰리는 바람에 과거공부를 포기하고 결국 학문연구에만 몰두하게 된다.

처음에는 성리학(性理學)에서 출발했으나 차차 이이(李珥), 유형원(柳馨遠)의 학문에 심취했으며 특히 유형원의 학풍을 계승, 천문.지리.율산(律算).의학(醫學)에 이르기까지 능통했고 서학(西學)에도 관심을 가졌다.

선생은 이 같은 연구를 통해 천문.지리.의학.재정제도.과거제도.학제.병제.관제 등 현실적인 문제에 대한 비판과 이상, 그리고 사상을 폭넓게 서술한 성호사설(星湖僿說), 곽우록(藿憂錄), 성호문집(星湖文集) 등을 남겼다.

특히 중농사상(重農思想)에 입각, 개인의 토지점유를 제한하고 전주(田主)의 몰락을 방지하기 위한 한전론(限田論)을 주장했고 노비신분을 점차적으로 해방시킬 것을 역설했다.

또 양반도 산업에 종사해야 한다는 사농합일(士農合一)이론을 주창했고 인재등용에 대해서는 과거제도에만 의존하지 말고 공거제(貢擧制)를 아울러 실시할 것도 제시했다.

이 같은 주장은 당시대 기득권층으로부터 큰 반발을 샀지만 그의 사상은 제자, 후손들에 의해 더욱 연구돼 조선후기 실학사상을 꽃피우는 모태가 됐다.

다음달 성호 선생의 기념관 개관을 계기로 그동안 선생에 대한 잘못된 생거지(生居地) 논란이 종식될 전망이다.

선생에 관한 각종 논문이나 자료는 물론 묘소 입구에 새겨진 안내판마저 그의 생전 거주지를 경기도 광주군 첨성리라고 기술하는 등 첨성리가 과거 광주군 땅이었다는 학설이 학계의 정설이었다.

그러나 최근 첨성리는 단 한차례도 광주군에 속한 적이 없다는 향토사학자의 주장이 받아들여져 그릇된 내용이 전면 수정될 예정이다.

류천형(66) 전 안산문화원장은 '최근 경기도의 성호 묘역 안내문에 적힌 광주군 첨성리란 표현은 잘못된 것으로 광주가 아닌 안산으로 바꿔야 한다는 사실을 각종 자료와 함께 보내 경기도로부터 수정회신을 받았다'며 '국사편찬위원회, 국립도서관, 각 대학도서관에도 내용 수정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류 전 원장은 '지난 2년 동안 서울대 규장각에서 선생과 관련한 각종 서적과 자료.지리지 등을 조사할 결과, 첨성리는 고려시대부터 지금까지 단 한번도 광주였던 적이 없다'며 '특히 여주 이씨 족보, 성호문집 등에서 모두 안산군 첨성리로 기록돼 있는 사실을 확인하게 됐다'고 말했다.

첨성리가 광주라는 오류는 선생의 제자이자 당시 경기관찰사였던 채제공(蔡濟恭:1720∼1790)이 쓴 묘갈명(墓碣銘:묘비석에 새긴 글)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다.

당시 안산군과 광주군의 경계지역이었던 첨성리를 외지인인 채제공이 광주땅으로 잘못알고 묘비를 썼기 때문에 후학들이 이를 토대로 광주군으로 기록한 것이다.

류 전 문화원장은 '선생이 평생 농사를 지으면서 실학사상을 연구하던 곳이 바로 광주가 아닌 안산 첨성리라는 사실을 뒤늦게 확인하고 복원하게 됐다'며 '다음달 선생 기념관이 개관되기 이전에 그 분의 생거지 논란을 종식시키게돼 매우 기쁘다'고 말했다.

2002-04-21 15: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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