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시를 소개할 때 으레 '효원(孝園)의 도시'라는 수식이 따라다닌다.

조선조 22대 정조대왕의 요절한 선친 사도세자(思悼世子)에 대한 지극한 효심이 깃든 곳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언제부터 효의 동산 또는 효의 능을 의미하는 '효원'이라는 표현이 사용되기 시작했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정조가 구상한 우리 역사 최초의 신도시 '화성(華城)'의 중심인 '화성행궁'을 지칭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정조의 화성 신도시 구상은 즉위 18년째를 맞은 179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뒤주 속에 갇혀 참살당한 부친을 그리워하다 마침내 어버이의 고혼(孤魂)을 위로하기 위해 2년여에 걸쳐 화려하고 웅대한 성곽을 축성한다.

성안에 조성된 화성행궁도 이 시기에 지어진 것으로, 현재 문헌상 알려져 있는 행궁 중 가장 규모가 큰 33채 577칸이었다고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는 적고 있으나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대부분 헐리고 낙남헌(洛南軒) 1채만이 유일하게 현존한다.

왕이 거동할 때 임시로 머무는 거처인 행궁은 삼국시대부터 존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문헌상 전하는 행궁지는 모두 10여곳에 이른다.

이 중 강화행궁.광주부행궁.의주행궁.양주행궁 등은 난을 당했을 때 왕이 피신할 목적으로, 온양행궁은 휴양의 목적으로 각각 사용됐던 것에 비해 화성행궁은 왕의 능행시 거처하기 위한 용도로 지어졌다.

조선 태조의 영정을 모신 경기전에 위치했던 전주에도 행궁이 있었고 사근행궁.시흥행궁.부안행궁.의주행궁 등도 문헌에 등장하고 있지만 대부분 그 흔적이 남아있지 않다.

화성행궁이 완성된 시기는 수원부(水原府)가 새로운 장소로 옮겨지고 나서 주변에 성곽을 새로 축조한 정조 20년(1796년)이다.

정조는 1789년 양주 배봉산에 있던 부친의 무덤인 영우원(永祐園)을 화산(花山)으로 옮겨 현륭원(顯隆園)이라는 명칭을 새로 정했고, 화산을 주산으로 삼고 있던 수원부를 팔달산 아래로 옮기면서 화성과 함께 행궁을 축조한 것이다.

이렇듯 수원부의 이전과 화성축조, 화성행궁의 건설은 하나의 맥락에서 이뤄진 사업으로, 단지 부친의 무덤을 명당으로 옮기고 참배하려는 뜻보다는 왕조중흥의 큰 구도 속에서 추진했던 신도시 건설이라는 의미를 갖는다고 최홍규(경기대)교수는 해석한다.

학계 일각에서는 정조가 천도(遷都)까지 계획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나 정설로는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아무튼 정조는 이 곳에 성곽을 건설해 서울을 호위하는 남방의 요새지를 구축하려 했고, 왕의 친위부대인 장용영(壯勇營) 외영을 설치하고 주변 다섯 읍의 군대를 합속시켜 수도 서울의 5위 체제와 비슷한 방어체제를 구축했다.

또 수원부를 지금의 광역시와 비슷한 개념의 화성 유수부(留守府)로 격상시킨 것도 이즈음(1793년)이며, 수리시설과 농장을 건설하고 도로를 정비해 근대적인 이용후생(利用厚生)의 도시로서의 바탕을 마련했다.

정조의 화성과 관련된 이런 생각과 계획들은 1789년 이후 해마다 한 두차례씩 실시했던 원행과정에서도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대규모의 인원을 동원해 길을 닦고 다리를 건설했으며, 많은 군사를 이끌고 훈련을 실시하거나 현지에서 별시를 열어 지방 인재를 발탁했던 것이다.

이런 정황은 모친인 혜경궁 홍씨의 회갑잔치가 치러졌던 '을묘년(1795년) 원행'에서 가장 두드러져, 그 공간적 배경이 된 화성행궁이 왕의 일시적인 처소라기보다는 왕권의 위엄을 나타내는 상징적 건축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화성행궁은 같은 시기에 건축된 화성, 인근에 있는 융.건릉 등과 역사적 의미를 공유하며, 화성행궁과 화성의 건립과정을 상세히 기록한 '화성성역의궤'와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가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한편 수원시는 이런 역사적 의미가 깃든 유적지를 복원하기 위해 지난 93년 자문위원회를 구성, 95년 화성행궁을 경기도기념물 제65호로 지정한 뒤 이듬해 7월 기공식을 갖고 본격적인 복원작업에 착수했다.

이후 지난 98년 3월 봉수당(奉壽堂) 등 4동의 복원을 완료했고 이달말 월드컵 개막에 앞서 33동(棟) 577칸의 복원을 모두 마친다는 목표로 막바지 단청작업이 진행중이어서 조만간 그 위용이 눈앞에 펼쳐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