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설명] 30여년째 계속된 복원공사로 차츰 제모습을 되찾아가는 삼년산성.
'현존하는 신라 최고(最高)의 성(城)'
충북 보은군 보은읍 어암리 오정산 정상을 둘러싸고 있는 삼년산성(三年山城.사적 제235호)을 일컫는 말이다.
대부분 신라계 성의 축성연대가 불분명한 반면 이 성에 대한 소개는 이례적으로 '삼국사기'에 매우 상세히 실려 있다.
신라 자비왕 13년(470)년 처음 축조돼 16년 뒤인 소지왕 8년(486년) 일선 지방(지금의 구미시 선산읍 일대)의 군사 3천명이 동원돼 개축한 것으로 성을 쌓는 데 3년이 걸려 '삼년산성'이라 이름 붙였다고 한다.
산 등성이를 휘감으며 까마득한 절벽 위에 우뚝 선 거대한 성곽의 규모나 1천500여년간 원형을 보존할 만큼 견고하게 쌓아진 축성술을 따지지 않더라도 신라가 백제 공격의 최전방 기지로 이 성을 얼마나 비중 있게 다뤘는 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보은군 문화재 담당자 홍영의(36)씨 안내를 받아 보은군청 맞은 편으로 건너다 뵈는 삼년산성을 찾는 날은 잔뜩 찌푸린 하늘에서 간간이 빗방울이 들었다.
아카시아 꽃이 흐드러진 좁다란 진입로를 따라 300여ｍ 올라가니 눈 앞에 나타나는 성은 절로 감탄사를 터트릴 정도로 웅장하다.
보수공사를 하느라 여기저기 파헤쳐진 돌무더기를 지나 성 중앙에 오르자 보은읍 내와 대전, 청주, 상주, 속리산으로 이어지는 사방의 도로가 한눈에 들어온다.
신라는 상주 사벌성을 점령하고 이 곳으로 나와 백제의 동진에 대비해 이 성을 쌓았다.
그 후 이 성은 백제와 고구려의 공격을 저지하며 서.북진하는 신라의 전초기지가 돼 훗날 삼국통일의 토대가 된다.
진흥왕 14년(554) 대가야군과 연합한 백제 성왕이 관산성(지금의 옥천)으로 쳐들어오자 이 곳에서 출병한 원군이 관산성에 나가 성왕을 죽이는 대승을 거뒀고 이는 결국 한강유역을 장악하는 계기가 된다.
태종무열왕 7년(660)년 당나라와 연합해 백제의 사비성을 깨고 의자왕의 항복을 받았을 때도 신라는 이 곳에서 당나라가 파견한 웅진 도독을 맞았다고 한다.
그 후 김헌창(金憲昌)의 난 때는 반군의 거점으로 이용되기도 했으며 고려 태조1년(918년) 왕건이 이 곳을 공격하다 실패하고 임진왜란 때도 이용된 기록이 있다.
삼국의 국운을 결정짓는 역사의 중심에 있던 이 성은 숱한 전적만큼이나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벽돌로 쌓은 듯 직각으로 깎아지른 성벽은 감히 누구의 접근도 허용할 수 없다는 듯 위엄있는 모습으로 능선을 따라 일렁거린다.
총 길이 1천680ｍ, 폭 5-8ｍ, 높이 10-13ｍ에 달하는 거대한 성곽은 오랜 세월의 풍파을 겪으며 군데 군데 무너져 내렸으나 동남 쪽의 오목한 부분은 아직 제 모습을 간직한 곳이 많다.
1천500여년간 버티고 있는 이 성이 견고함은 구들장같이 납작한 장방형(길죽한 사각형) 판돌을 가로.세로 엇물리게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쌓아 위쪽의 하중을 골고루 퍼지게 한 데서 찾을 수 있다.
하중이 큰 성벽 모퉁이는 기초가 견고하도록 4중 계단식으로 쌓고 성곽 안쪽은 흙과 작은 돌 등으로 메워 빗물이 스며들 틈조차 없앴다.
당초 이 성에는 사방으로 폭 4-5ｍ의 출입문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사각모양의 구멍 뚫린 기둥 받침돌과 수레가 드나들기 편하게 문지방돌을 깎은 흔적 만이 문 위치를 확인해주고 있다.
성 내에는 또 아미지(蛾眉池)라는 연못과 마르지 않는 5개 샘물이 있었고 그 주변의 바위에 玉筆(옥필), 有似巖(유사암) 등의 글씨가 새겨져 있는 데 이는 김생 선생의 친필로 전해온다.
1973년 이 성이 문화재로 지정된 뒤 보은군은 그동안 42억여원을 들여 성곽보수 작업을 펴고 있다.
지난 30년간 보수.복원된 성곽만도 전체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400여ｍ를 웃돈다.
군은 또 아미지 등 연못을 발굴하고 진입로를 확.포장한 데 이어 지난해 충북대 중원문화연구소를 통해 보전관리 종합계획도 수립했다.
지표조사를 통해 우물터와 건물이 있던 자리를 발굴하고 산책로를 정비해 역사유물로 보존한다는 계획이다.
뒤늦게 나마 원형을 찾아가기 시작한 삼년산성이 언제쯤 우리 앞에 완벽한 모습을 드러낼 지 관심이 모아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