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동두천시 상봉암동 소요산 자재암(自在庵)은 등산로가 시작되는 입구의 일주문을 지나 마주 보이는 가파른 암벽 아래 자리잡고 있다.

산의 규모가 작아선지 자재암의 규모도 크지 않다.

이 작은 사찰에 신라 고승 원효(元曉.617∼686)와 요석공주(瑤石公主) 사이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가 남아 있다.

원효가 요석공주를 만나는 장면은 몇가지 문헌에 매우 드라마틱하게 전해진다.

젊은 시절 원효는 당(唐)으로의 유학을 포기한 뒤 불교가 귀족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서민과 고통받는 하층민까지 포용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민중 속에서 활동했다.

이때 원효는 '누가 내게 자루 빠진 도끼를 빌려주면 하늘을 받칠 기둥을 만들겠다'는 노래를 부르고 다녔고 이 노래 뜻을 알아챈 신라 태종무열왕이 과부가 된 누이 요석공주와 짝을 맺어주기로 했다.

무열왕은 원효가 소요산 자재암에서 정진하고 있을 때 요석공주를 소요산으로 보내 자재암 아래에 별궁을 짓고 원효와 함께 살도록 했다.

여기서 아들 설총(薛聰)을 낳았다.

원효와 요석공주가 만나는 장면은 다른 설화로도 전해온다.

원효가 경주 남산에서 내려올 때 문천교라는 다리를 지난다는 사실을 알고 무열왕이 나졸들을 풀어 요석공주가 있는 궁으로 데려오게 했다.

다리에서 만난 원효와 나졸들은 무술을 겨뤄 나졸이 이기면 원효가 궁으로 가기로 했는데 나졸들이 당하지 못했고 무열왕의 뜻을 안 원효는 마지막 나졸과 함께 일부러 다리 밑으로 빠져 궁으로 가게 됐다.

원효는 젖은 옷을 말린다는 구실로 요석공주와 며칠 머물며 인연을 맺었다.

아무튼 설총은 '하늘을 받치는 기둥'이라는 원효의 외침처럼 훗날 우리나라 문묘에 배향되는 18인의 유현(儒賢) 가운데 첫번째로 모셔지는 학문의 큰 업적을 이뤘다.

요석공주와 속계(俗界)의 인연을 맺은 원효는 이후 파계하고 촌락을 다니며 교화하다 소요산 자재암에서 정진에 몰두한다.

요석공주는 아들 설총과 함께 자재암이 바라보이는 산 아래에 별궁을 짓고 원효의 뜻이 이뤄지길 기원했다.

요석공주의 별궁터인 요석궁터는 지금 표석만 남아있다.

원효가 자재암을 창건한 것이 무열왕 1년(654)으로 기록돼 있어 원효가 자재암에 머물던 때의 나이가 30∼40대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자재암 주변에는 이밖에 원효가 수도했다는 원효대(元曉臺)를 비롯해 원효굴, 원효폭포, 원효약수 등이 있어 스치는 곳마다 원효의 발길을 느끼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