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통일의 위업을 이룬 김유신(金庾信.595-673) 장군이 태어난 충북 진천군 곳곳에는 그와 관련된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그 대표적인 곳 중의 하나가 진천군 이월면 사곡리 사지마을 사자산 중턱의 장수굴.

소나무와 참나무가 울창한 산길을 따라 10여분 가량 걷자 높이 10여m가 족히 될 것으로 보이는 바위에 굴과 양각(陽刻)된 불상이 나타났다.

장수굴과 마애여래입상(磨崖如來立像.충북도 유형문화재 제124호)이다.

때마침 불상 위에서 한가로이 오수(午睡)를 즐기고 있던 부엉이 한 마리가 인기척에 놀라 황급히 하늘로 날라갔다.

높이 3m, 폭 9m, 길이 11.5m인 장수굴은 김 장군이 17세 되던 해 삼국통일의 큰 뜻을 품고 입산해 무술을 연마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또 김 장군이 나흘간 밤낮으로 기도를 올리자 한 신선이 나타나 천룡검(天龍劒)과 삼국통일의 비법을 전해주고 홀연히 사라졌다는 전설이 있다.

삼국사기에도 김 장군이 중악석굴에서 신선을 만났다는 기록이 나와 있으나 상당수 학자들은 이 석굴이 경주 인근의 산일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이 지역 주민들은 장수굴이 바로 그 곳이라고 믿고 있다.

장수굴 주변 바위 10여곳에는 패인 흔적이 발견돼 예전에 이 바위에 기대 세운 전각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굴 옆의 7.5m에 달하는 마애여래입상은 암벽을 이용해 직사각형으로 광배(光背)를 표현한 뒤 불상을 양각했다.

단정하고 근엄한 표정의 풍만한 얼굴을 하고 있으며 두 귀는 어깨에 닿고 있다.

오른 손은 가슴에 얹어놓고 왼 손은 몸 아래로 자연스럽게 펼치고 있다.

이 입상은 당초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졌으나 풍만한 몸체와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양각 등은 8-9세기의 전형적인 불상양식이어서 최근에는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졌다는 학설이 유력하게 제기되고 있다.

장수굴과 마애여래입상이 있는 이 바위에는 허리가 휘고 비틀어져 있는 10여그루의 소나무와 고란초가 자생하고 있어 보는 이들에게 신비로움을 더해 주고 있다.

그동안 이 곳은 찾는 이들이 많지 않았으나 1999년 진천읍 상계리 김 장군의 탄생지가 국가 사적으로 지정된 뒤 진천군이 이를 적극 홍보하면서 이 굴도 유명해져 학생 등의 주요 답사 코스 중의 하나가 됐다.

특히 소원을 빌기 위한 주민들과 무속인들의 발길도 이어지고 있어 주변에는 치성을 드릴 때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작은 불상과 그릇 등이 놓여 있다.

하산 길에 세 갈래로 갈라진 널찍한 바위가 눈에 들어와 잠시 쉬기 위해 자리를 잡았다.

답사를 동행했던 이윤석(39.진천군청 문화체육과)씨는 이 바위도 김 장군과 관련된 전설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씨는 '김 장군이 천룡검을 받은 뒤 시험 삼아 이 바위를 내려치니 여러 갈래로 쪼개졌다는 전설이 내려와 단석(斷石)이라고 불리고 있다'며 '주민들은 이 산에 삼국통일을 이룬 김 장군의 정기가 서려 있다고 믿고 있다'고 말했다.

역사는 사실(事實)의 기록이어야 하지만 때로는 시대의 상황에 따라 의미가 더해지기도 한다.

이 곳에서도 삼국통일을 이룬 김 장군으로부터 우리 시대의 명제인 남북통일의 정신을 찾으려는 주민들의 바람이 곳곳에 배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