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南漢山城)에서는 요즘 새로운 역사가 만들어지고 있다.

지난해 7월 시작된 행궁 복원공사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어 임금이 거처하던 내행전과 금군.승지 등이 머물던 남행각과 북행각, 광주유수가 집무를 보던 좌승당, 임금이 휴식을 취하던 재덕당 등 상궐 5채가 윤곽을 드러냈다.

내년부터 호텔과 음식점, 서양식 로터리 터에 관아거리와 종각마당이 복원되고 무예광장인 연무관과 산성마을 옛길이 복원되면 '닭죽촌'으로 더 알려졌던 남한산성은 진정한 역사의 현장이자 문화유산으로 거듭나게 된다.

아직도 씻지 못하고 있는 패성(敗城)의 오명과 달리, 남한산성은 삼국시대 이래 한강과 더불어 각국의 패권을 결정짓는 거점 역할을 해왔다.

행궁복원에 결정적 역할을 했고 남한산성 복원정비추진기획단을 이끌고 있는 '남한산성을 사랑하는 모임(남사모)' 전보삼(全寶三.54) 회장은 '백제인들은 남한산을 그들의 성산과 진산으로 생각했다'며 '산성에 백제 시조 온조대왕을 모신 사당 숭열전이 경기도문화재 제2호로 지정돼 있는 연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말했다.

또 남한산성 북문에서 하남시 춘궁동, 교산동으로 이어지는 토성은 이성산성과 백제시대를 설명하는 많은 역사적 자료를 남기고 있다.

지금의 남한산성 윤곽은 신라에 의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신라는 이 곳을 일장산성으로 부르며 국방요새를 만들기 위해 토성을 쌓았다.

조선시대에도 남한산성은 선조에서 순조에 이르기까지 국방의 보루였다. 특히 인조는 축성과 몽진(蒙塵), 항전의 역사적 회오리를 모두 남한산성에서 겪었다.

남한산성은 인조 원년 1623년부터 축성공사가 시작돼 1626년 지금과 같은 형태로 완공됐다.

산성 안에는 행궁을 비롯, 인화관과 연병관 등이 차례로 건축되면서 400년 역사의 수많은 문화유산을 남겼다.

건물들은 산성 내 9개 사찰 승려들의 승번(僧番)제가 폐지되면서 관리가 소홀해지더니 조선군대 해산 이후인 1907년 8월 일본군에 의해 '화약과 무기가 많다'는 이유로 잿더미로 변했다.

이후 광주관아까지 경안으로 이전하자 주인을 잃은 문화유산들은 돌보는 사람없이 방치되다 하나, 둘 역사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일부 남아 있던 부속건물도 1970년대초까지 개인에게 토지가 매각되면서 원형이 거의 파괴돼 지금까지 건물 초석과 담 흔적만 남아 있었다.

총길이 12.35㎞의 성곽 안에 5개의 옹성과 4대문, 11개의 암문, 2개의 배수문, 2곳의 봉화터를 가진 남한산성에는 국가사적 1곳과 경기도 유형문화재 6곳, 경기도 문화재자료 2곳, 경기도 기념물 3곳이 있다.

남한산성은 지난 63년 국가사적 제57호로 지정됐다.

그러나 이후 이렇다할 문화재 지정이 이뤄지지않다 71년 3월 도립공원 지정을 계기로 72년 5월 수어장대(지휘.관측소)와 숭열전, 청량당(사당), 침괘정(무기제작소), 연무관(군사훈련소)이 각각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됐다.

'굴욕의 성'이라는 군사정권의 역사인식과 왜곡된 식민사관 탓에 70년대 수원 화성과 강화성 등 국방유산이 대대적으로 복원될 때 복원대상에서 제외되는 수모를 겪었다.

남한산성은 지난 22년 동안 26차례에 걸쳐 땜질 수준의 보수공사만 이뤄져 왔다.

70년대 박정희정권 때 투입된 공사비는 600만원이 고작이었고, 서울올림픽을 앞둔 지난 87년 41억원을 들여 성곽 7곳을 보수한 것이 그 중 가장 큰 공사였다.

국가사적 지정 38년만에 시작된 남한산성 복원에는 '남사모'의 끈질긴 역사찾기 노력이 돋보였다.

지난 96년 남한산성 국제학술대회를 계기로 결성된 남사모는 수십차례의 현장답사와 사료추적을 통해 행궁터 등 각종 유적을 찾아냈으며 끈질기게 산성 복원.정비 필요성을 제기한 끝에 경기도의 '남한산성 마스터플랜'을 이끌어냈다.

오는 9월 행궁상궐 복원이 마무리되면 남한산성 종합발전계획에 따라 2008년까지 단계적으로 795억원이 투자돼 새로운 '역사주제공원'이 탄생하게 된다.

남사모측은 '복원 및 정비 계획이 마무리되면 남한산성은 진정한 역사적 정체성을 되찾는 것은 물론, 자연과 역사가 어우러진 체험 교육현장이자 관광지로 주목받게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