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설명] 1990년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98호로 지정된 오수복(79) 할머니가 펼치는 경기 도당굿.


'화랭이들이 줄을 타는 모습은 아찔하기만 한데 기생의 소리와 춤은 식어갈 줄 모른다. 화랭이와 무녀가 어우러져 신령의 뜻을 청하고 기생이 흥을 돋우는 신명나고 걸판진 굿판은 밤새 계속된다'
경기도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굿은 정월과 10월에 마을의 안녕과 집안의 안과태평(安過太平)을 기원하고 풍농(豊農)이나 풍어(豊漁)를 기원하는 도당굿이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규경(李奎景)의 '오주연문 장전산고(五州衍文 長箋散稿)를 보면 '호랑이 때문에 밤에 나다닐 수 없게 되자 백성들이 제물을 마련하여 마을의 진산(鎭山)에 있는 신당(神堂)에서 제(祭)를 올렸고 무격(巫覡)들이 분으로 단장하고 북을 두드렸는데 이를 도당제(都堂祭)라 한다'는 기록이 있다.

예전에는 도당굿이 호환(虎患)을 피하기 위해 올리던 제 혹은 굿임을 알 수 있다. 오늘날에는 온 마을 주민들이 합심해 무격으로 하여금 도당에 모시는 신에게 마을의 안녕을 빌게 하는 대동굿의 성격을 띠고 있다.

경기도 지방에서 전해지는 도당굿을 보면 지리적 여건에 따라 모셔지는 신위(神位)가 각기 다르게 나타난다. 내륙지방에서는 산치성이나 산제라고 하여 도당할아버지나 도당할머니가 산신(山神)으로 나타나며, 바닷가와 섬지방에서는 용왕이나 임경업 장군 등의 신격(神格)을 모시는 경우가 많다.

이런 다양한 형태의 경기 도당굿은 이제 '수원 영동 거북산당 도당굿' 기능보유자인 무녀 오수복(79)에 의해 그 명맥이 유지되고 있을 뿐이다.

경기 도당굿은 일반적으로 굿을 하기 전날 당주의 집에서 하는 당주굿을 시작으로 부정청배(不淨請拜)→부정굿→당맞이→돌돌이→장문잡기→시루굿→터벌림→제석청배(帝釋請拜)→제석굿→손굿→군웅굿→당할머니굿→뒷전의 순으로 구성된다.

이 가운데 돌돌이와 장문잡기, 터벌림 등은 다른 굿에서 볼 수 없는 거리다.

돌돌이는 마을의 경계를 다니면서 모든 부정을 막는 수살(守殺)의 기능을 하는 과정으로 활옷에 갓을 쓰고 부채를 든 주무(主巫)가 장승마다 찾아다니며 수살굿을 반복한다.

돌돌이를 끝내고 당에 도착하면 장문잡기가 이어진다. 징과 취타가 울리는 가운데 당할머니가 볏섬 위에 올라앉아 "마을의 광대나 재인이 나서서 재주를 보이라"고 하면 화랭이(창부)가 단가를 부르거나 어름산이(줄광대)가 줄타기를 하는 등 재주와 재담을 선보이는데 이를 장문잡기라 한다.

신라의 화랑(花郞)에 어원을 두고 있는 화랭이는 세습(世襲)으로 무업에 종사하며 굿판에서 재주와 재담을 펼치는 일종의 광대를 말한다.

'터를 벌린다' 또는 '터를 밟는다'는 의미의 터벌림에는 몰려든 구경꾼들에 의해 좁아진 굿판을 넓힌다는 의미와 터를 다진다는 지신밟기의 뜻이 함께 내포돼 있다. 터벌림에서 흥미를 끄는 것은 도당굿에서만 나타나는 화랭이의 춤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이다. 화랭이는 두루마기에 갓을 쓰고 꽹과리를 들고 터벌림 장단이라고 하는 반설음 장단을 치면서 터벌림춤을 춘다.

경기 도당굿은 절차가 까다롭고 소리와 춤이 어려워 수십년을 배워야 하는 탓에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 1990년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98호로 지정된 경기 도당굿의 기능보유자 오수복은 그런 점에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한다.

기능세습무인 오수복은 31세에 강신무(降神巫) 이가보에게서 신내림을 받고 무녀의 길로 들어선 뒤 화랭이 이용우 선생 밑에서 도당굿의 전통 춤사위와 법문을 배웠다.

도당굿이 무속신앙의 표현방식이라는 점과 함께 전통문화의 한 부류로 인식되면서 춤사위와 소리, 장단을 배우기 위해 찾아드는 후진들이 있어 오수복은 이제 이를 고스란히 전해주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이천 도자기축제, 과천 세계마당극제 등에서 수십차례 공연했고 무용을 공부하는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정기적인 연수교육을 갖는 등 8순을 바라보는 노구에도 전수활동을 그치지 않는다.

계미년 정초 수원 매교동 도당굿보존회 사무실에서 마주한 그녀는 "그 예술성을 보전하기 위해 도당굿은 꼭 살아남아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