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鍮器)는 청동기시대부터 연탄이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1970년대 이전까지 우리 생활공간에서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물건이었다.

식기, 공예도구, 생산기계, 악기, 무기 등 다양한 분야에서 유기가 사용됐다.

유기란 자연적으로 출토된 광물질이 아닌 구리에 주석이나 아연, 니켈 등을 혼합해 만든 합금물체로 놋쇠라고도 불린다.

유기는 만드는 방식에 따라 방자(일명 방짜.方字)와 주물(鑄物), 반방자(半方字)로 크게 나눌 수 있는데 합금놋쇠를 망치로 두드려서 늘이고 다듬어 만드는 유기를 통칭해 방자라고 말한다.

주물로 녹여내면 그만인 것을 왜 하필이면 두드려서 만들까?
징이나 꽹과리 같은 악기는 주물로 만들면 소리가 제대로 나지 않을 뿐 아니라 쉽게 깨지기 때문이다.

또 악기는 음을 조율해 줘야하는데 음을 맞추기 위해서는 때리면서 두께와 크기를 섬세하게 조정해야 한다.

방자유기는 구리와 주석을 72대 28 비율로 섞은 합금으로, 비율이 다르거나 다른 성분이 조금만 섞여도 터져버리는 특성이 있다.

방자유기를 만들 때 구리와 주석 외에 더 들어갈 수 있는 합금은 금과 은뿐이다.

금이 악기에 섞이면 부드럽고 맑은 소리를 내며 은이 섞이면 높은 소리를 낸다.

특히 금이 식기에 들어가면 손으로 만져도 자국이 나지 않기 때문에 고급제품일수록 금이 많이 들어간다.

국내에서 유기를 만드는 대표적 인물은 안성의 김근수(주물유기장)씨, 전남 순천의 윤재덕(반방자 유기장)씨, 서울의 이봉주(방자유기장)씨 등으로, 모두 국가지정 중요 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로 지정됐다.

경기도 무형문화재 10호 기능보유자로 지정된 김문익(金文益.60.군포시 대야미동)씨는 이봉주씨의 제자로 12살 이후 40년 가까이 방자유기를 만들고 있다.

김씨의 방자기술은 소리를 생명으로 하는 풍물용 악기에서 특징을 찾을 수 있다.

악기에 적정한 소리를 우려내는 과정, 이른바 울음깨기 공정이 방자의 핵심기술인데 김씨는 이를 위해 보통 방자의 배합비율이 아닌 구리 3㎏에 주석 8.25㎏을 배합한다.

징이라고 해서 다 같은 징이 아니라고 김씨는 말한다.

"무속용이라도 산에서 사용하는 것과 바다에서 사용하는 것, 보살이 사용하는 것, 그리고 지방마다 소리가 제각기 다릅니다. 용도에 따라, 지역에 따라 합금할 때부터 구리와 주석, 금, 은의 비율을 다르게 하고 소리를 잡을 때도 원하는 소리를 내게 해줘야 합니다"
방자유기는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고 기술이 발달했다 해도 혼자서는 제작할 수 없다.

도가니 속에서 1천500℃로 끓는 쇳물을 물판에 부어 주물을 만든 다음 단조(때림질), 우김질(2차 때림질), 가공(모양내기), 가질(깎기), 울음(소리잡기) 등의 과정을 거치려면 최소한 5명 이상이 필요하다.

"옛날에 유기는 대단히 수익성 높은 상품이었습니다. 아무에게 가르쳐 주지도 않았지요. 그런데 1960년대부터 연탄이 본격적으로 사용되면서부터 사양길에 접어들었어요. 가스에 오염된 유기는 빚을 잃고 시커먼 얼룩이 지기 때문이지요"
김씨는 이런 이유로 해서 요즘은 배우려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김씨는 안산시의 경계인 군포시 대야미동에 150평 규모의 공장을 차려놓고 이춘복(44)씨 등 전수자 10명과 함께 작업을 하고 있다.

공장 바로 옆에는 군포시가 만든 30평 규모의 전시관이 개관을 앞두고 있는데 이곳에서는 그의 작품이 일반에 전시, 판매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