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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脈을 잇는 사람] (20) 북장 임선빈

예로부터 북은 제사나 주술, 놀이는 물론 전쟁터에서 그 소리를 신호로 삼을 만큼 요긴하게 사용된 우리 민족의 전통 악기다.

북은 일반적으로 나무통에다 가죽을 메워 만드는데 모양과 치는 법, 쓰이는 곳에 따라 북의 종류는 수십가지나 된다.

경기도 안양에서 공방을 운영하는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30호 기능보유자 임선빈(林善彬.55.만안구 석수동)씨는 대형 북을 주로 제작하는 이 분야 최고 권위자다.

임씨는 악기를 만드는 장인으로는 치명적이라 할 수 있는 청각장애인이지만 언제나 한국 최고 크기에, 최고의 소리를 지닌 북을 만드는 데 도전한다.

안양시청 로비에 전시돼 있는 임씨의 대형 법고는 울림판만해도 240㎝에 달하는 국내에서 가장 큰 북이다.

임씨가 북 만드는 일을 처음 시작한 것은 그의 나이 11살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10살 때 가족과 뿔뿔이 흩어져 서울에서 넝마주이 생활을 해야 했던 임씨는 연장자들로부터 잦은 폭행을 당하자 전남 여수로 도망쳤고 그 곳에서 스승 황용옥(작고)씨를 만났다.

하루 세끼 밥을 먹여준다는 이야기에 임씨는 대구 칠성동에 있는 황씨의 공방으로 함께 가 북 만드는 일을 배우게 됐다고 한다.

"처음에는 일도 시키지 않고 편히 쉬도록 해주시더군요.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북소리가 서럽게 들리면서 나의 마음을 애절하게 잡아주더군요. 1년 6개월만에 북을 처음 만들었고 그것이 천직이 됐습니다"
요즘은 북 만드는 작업도 기계화가 많이 됐지만 임씨의 북 제작방법은 전통방식 그대로다.

북통에 사용될 소나무는 대략 80∼100년 정도는 돼야 하고 가죽도 농사용으로 일한 한우의 것이라야 제격이다.

임씨는 좋은 가죽을 구하기 위해 전국의 도살장을 돌며 농사용으로 일했던 한우를 찾기도 하고 북통에 쓰일 소나무나 오동나무를 고르기 위해 국내는 물론 해외에까지 발품을 팔곤 한다.

힘들게 구입한 가죽과 나무는 적절한 관리방식과 조건하에서 수개월 또는 수년씩이나 자연 건조된다.

특히 가죽의 털을 벗길 때 화공약품을 사용하면 제소리가 나지 않기 때문에 임씨는 절대 약품을 사용하지 않고 털을 제거하며 두께를 맞추고 건조하는 데 온 정성을 기울인다.

"가죽은 온도와 습도, 날씨에 따라 소리가 천차만별로 달라집니다. 털을 뽑을 때 화공약품을 사용하거나 좋은 조건에서 건조되지 못하면 절대 좋은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임씨는 어릴 때 매를 맞아 오른쪽 고막을 다쳤고 왼쪽 고막은 밀폐된 공간에서 북의 소리를 잡다 난청이 되는 바람에 보청기를 끼어야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러나 소리는 귀로만이 아닌 가슴으로 느껴야 한다고 임씨는 강조한다.

법당에서 치는 법고는 소리가 법당을 돌아 가슴에서 느껴지도록 만들어야 하고 열린 공간에서 대중을 향해 울려야 하는 대북은 울림이 웅장하고 넓게 퍼져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이 때문에 그는 대북을 만들 때 아예 보청기를 빼고 울림으로 소리를 판단한다.

상품이 아닌 예술작품으로 북을 제작하는 임씨는 경제적으로 매우 곤궁한 삶을 살고 있고 후계자마저 없어 대북의 명맥이 조만간 끊길 위기에 처해 있다.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 일을 누가 배우려 하겠습니까. 북을 사는 것은 고사하고 만들어 놓은 북을 보관할 장소조차 없습니다"
임씨의 희망은 우리 나라에서 가장 크고 가장 오래 갈 수 있는 북을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 8년 전에 구입한 80년생 소나무를 자신의 공방에 보관하며 자연건조시키고 있다.

임씨는 "이 나무로 북을 만들면 400년 이상 끄떡없이 버틸 수 있을 것입니다. 후세에 길이 남길 가장 크고 오래 가며 소리도 좋은 역작을 만들 생각"이라고 말했다.

2003-05-18 12:4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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