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지정 현악기장 최태순(64.용인시 구성읍 보라리)씨의 집은 조용한 시골마을에 자리잡고 있다.

단아한 양옥 뒷마당의 20평 남짓한 작업실에는 끌과 망치 등속이 어느 것 하나 흐트러짐 없이 정렬돼 있어 최씨의 깔끔한 성품을 엿보게 한다.

창고에는 악기제조를 위해 말리고 있는 오동나무와 밤나무가 켜켜이 쌓여 있는 데 앞으로도 10년은 더 말려야 사용이 가능하다고 한다.

집 2층 가건물에는 거문고, 가야금, 아쟁 완성품이 가지런히 보관돼 있다.

줄을 퉁겨보니 '둥기둥' 소리가 왕산악이 거문고를 만들어 연주할 때 학이 날아와 춤을 췄다는 전설이 허튼 옛얘기는 아닌 듯 싶었다.

최씨의 작품은 미국 스미소니언 박물관에도 전시돼 있다.

최씨가 1982년 한미 수교 100주년을 기념해 직접 제작한 가야금과 거문고, 아쟁을 박물관에 기증한 것이다.

한국전쟁으로 소실된 국립국악원의 전통 현악기를 제작, 복원한 이가 바로 최씨며, 각 대학 국악과에서도 앞다퉈 최씨에게 제작을 의뢰한다.

"전쟁 통에 고모부(故 김광진씨) 집에서 살게 됐는데 고모부가 당대 최고의 가야금 명인이셨지만 아들이 없었어. 그 덕에 수제자가 돼 버렸지."
국내의 전통 현악기 명인들은 모두 최씨의 수제자이고, 최씨에게 사사하지 않은 제조자들도 최씨의 이름을 팔 정도다.

최씨는 요즘도 울림통 제조에 쓸 오동나무를 찾아 전국을 돈다.

"호남 것이 토질이 좋은 돌산에서 자라 최고지. 동해안 것은 다음이고..."
지난 60∼70년대 남벌로 인해 지금은 30년 이상된 오동나무를 구하기가 쉽지 않지만 최씨는 국산만을 고집한다.

최소 12년 이상 자연건조해야 하는데 중국산 오동나무는 밀도가 낮아서 썩어버린다고 한다.

명주실로 만드는 현은 제일 굵은 것이 60가닥으로 최고 열흘이 걸리기도 하지만 최씨는 업체에 맡기지 않고 직접 꼰다.

최씨는 울림통을 만들 때 절대 도끼와 톱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철저히 지킨다.

나무를 때리고 썰면 진동을 받아 미세하게나마 품질이 떨어져 제 소리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밑판은 10년 이상된 밤나무로 만들고 줄을 걸치는 오리발(안족)은 가볍고 질긴벚나무를 사용한다.

최씨는 "동생과 국악과를 졸업한 아들이 악기 만드는 걸 돕고 대를 잇겠다고 해 뿌듯하다"며 "고모부 윗대부터 치면 5대를 잇는 셈"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