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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원지방(天圓地方)을 구현한 나정(蘿井)

지금까지 한국 미술사학계나 고고학계에서 8각형은 곧 불교와 동의어였다. 마치 연꽃 문양이 그랬듯이 말이다.

이러한 견해가 근거가 없지는 않다. 그것은 다름 아닌 삼국시대 이후 여러 불교 탑이라든가 부도와 같은 불교조각물에서 8각형 모티브가 자주 확인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8각형 모티브는 원래는 불교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동아시아 고유의 천문우주관에서 비롯됐다. 이는 불교의 본고장인 인도의 불교 관련 건축물에서 8각형을 활용한 사례가 거의 없다는 점에서 명백하다.

그럼에도 또 하나 분명한 것은 불교가 중국에 상륙하고 그것이 한반도에 도입되면서 원래는 불교와는 관계가 없었던 8각형 모티브가 불교와 결합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8각형 모티브는 어디에서 그 전통이 유래한 것일까?
8각형이 다름 아닌 도교신학에서 유래한 것임은 이미 얼마 전 타계한 일본 출신 세계 최고의 도교 연구자로 꼽히는 후쿠나가 미쓰지(福永光司)에 의해 이미 1980년대에 구명된 바 있다.

그러나 어찌된 셈인지 일본도 그렇고 국내도 마찬가지로 이와 같은 도교학계의 연구성과가 인근 학문에는 제대로 음미조차 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8각이 도교신학에서 유래했다는 근거는 무엇인가?
「노자」.「장자」와 함께 선진(先秦)시대 3대 도가철학의 고전으로 꼽히는 「열자」(列子) 중 제5권 '탕문'(湯問)을 보면 이번 경주 나정에서 확인되는 정사각형 담장 시설과 8각형 건물이 그 전통이 어디에서 유래하며, 그것이 상징하는 바가 바로 하늘과 땅이라는 사실이 너무나 싱겁게 드러난다.

이 '탕문' 편은 우주를 하늘과 땅으로 나누면서 하늘은 8굉(八紘)으로 묘사하는 반면 땅은 동서남북이 각각 모가 난 4방(四方)이라고 설정하고 있다. 우리가 익히 잘 아는 4방8방(四方八方), 혹은 4통8달(四通八達)이라는 표현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이와 같은 4방8굉 우주관에서 또 하나 주목할 대목은 하늘의 8각 끝인 8극(極)이 땅과는 각기 끈으로 연결돼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는 사실이다. 중국의 천문우주관에서 흔히 하늘을 8유(八維)라고 해서 실 혹은 끄나풀을 의미하는 '維'자를 쓰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이처럼 중국 도가철학, 혹은 그것을 형성하는데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 중국의 천문우주관은 진 시황에 의한 중국대륙 통일이 달성되던 바로 무렵에 완성된 「여씨춘추」(呂氏春秋) 단계에 와서 정연하게 정비된다.

「여씨춘추」 중에서도 '팔람(八覽)'은 하늘에는 9야(九野)가 있다고 하면서 땅은 동서와 남북길이가 모두 5억9만7천리의 정사각형인 4극(四極)으로 설정하고 있다.

9야란 8각형에다가 그 한복판에 균천(均天)이라 해서 점 하나를 더 찍은 것으로 실제는 「열자」와 마찬가지로 하늘을 8방으로 보았다.

흔히 땅을 묘사하는 4방 또한 그 한복판에 점 하나를 찍으면 그것이 곧 중앙이 되면서 5방(五方) 관념이 형성된다.

이와 같은 중국의 천문우주관은 전한시대 무제 때 학자인 동중서(董仲舒)에 이르면 완전한 음양오행사상으로 구현된다.

왜 음양사상이 가미되는가? 중국적 사고관념에서 하늘은 양이며 수컷이며 남성인 반면에 땅은 음이며 암컷이며 여성으로 곧잘 상징화된다.

음양사상은 하늘과 땅이 대표하는 음과 양의 기운이 서로 조화하며 우주만물이 생성되는 것으로 본다. 하지만 이와 같은 음양사상만으로는 많은 자연현상과 인간사를 설명하기에는 한계에 부닥치자 오행사상이 가미되게 되었던 것이다.

8각 혹은 9각과 관련해 주목할 또 다른 사실은 이것은 흔히 원(圓)과 동의어였다는 점이다. 8각과 원은 언뜻 보아 이질적인 듯하지만, 8각을 선이 아닌 곡선으로 연결해 버리면 쉽게 원이 형성된다.

4방과 8각으로 대표되는 하늘과 땅에 대한 전통적 중국 천문우주관이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가 났다"고 해서 흔히 천원지방(天圓地方)으로 표현되는 까닭은 바로 8각을 곧 원으로 인식했기 때문이었다.

최근 전면 발굴에 들어간 경주 나정에서 놀라운 것은 그 근원을 도교철학에 두고 있음이 분명한 전형적인 음양오행 및 천문지리관이 그대로 드러난다는 사실이다.

이곳에서는 완전한 8각형을 사방에서 두른 정사각형 담장이 확인된다. 더구나 이들 네 담장은 동서남북 네 방향과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사각형 담장 정 한복판에서 확인된 8각형 건물지 또한 「여씨춘추」에서 말하는 9야(九野) 중 중앙인 균천(均天)을 제외한 8야가 고스란히 나타난다.

균천(均天)을 제외한 8야는 구체적으로는 창천(蒼天)이라고 하는 동방, 변천(變天)이라고 하는 동북방, 현천(玄天)이라고 하는 북방, 유천(幽天)이라고 하는 서북방, 호천(顥天)이라고 하는 서방, 주천(朱天)이라고 하는 서남방, 염천(炎天)이라고 하는 남방, 양천(陽天)이라고 하는 동남방을 말하는데 나정에서 확인된 8각형은 각각 이들 8방에 정확히 일치하고 있다.

이러한 천문우주관과 관련해 이번 나정에서 발굴된 유적에서 더욱 주목해야 할 대목은 4방 담장지 정중앙이자, 8각형 건물지의 정중앙에 위치한 우물터이다.

이 우물터가 상징하는 바는 도대체 무엇일까?
앞서 4방8굉이라는 천문우주관에서 각각 중앙을 설정하면 그것이 곧 5방9굉으로 발전한다고 했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4각형 건물지를 중심으로 보면 이 우물터는 정중앙이 되어 바로 4각형 건물지의 중앙을 상징화한 장소가 된다. 뿐만 아니라 8각형 건물지를 중심으로 보아도 역시 이 우물은 「여씨춘추」가 말하는 하늘의 9개 구역(9야) 중 한복판인 균천(均天)이 된다.

이로써 이번 나정 유적은 전형적인 동아시아(혹은 중국) 고대 천문우주관을 반영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하늘과 땅을 구현했음이 명백한 이와 같은 유적은 도대체 어떤 기능을 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겨난다.

8각으로 상징되는 하늘과 4방으로 상징되는 땅이 세트를 이루고 있으므로 이 나정 유적을 신라인들은 적어도 하늘과 땅이 만나는 장소로 인식했음이 명백하다. 하늘과 땅이 만나는 장소이니 나정은 천신(天神)과 지신(地神)이 감응(感應)하는 성소(聖所)인 셈이다.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천신을 제사하는 제단이 거의 예외없이 8각형 구조를 하고 있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아주 가깝게는 중국의 제후국에서 벗어나 황제국임을 선포한 대한제국이 하늘에 제사하기 위해 건립한 원구단이 8각형인 까닭이 여기에 있다.

다시 말해, 8각은 애초에는 불교적 전통과는 전혀 관계가 없으며 도교신학에서 유래한 하늘 그 자체인 것이다.

나정은 현재까지 발굴성과를 보아 제단이라는 사실은 이제 의심할 나위가 없어졌다. 우선 각각 동서남북 방향과 정확히 일치하는 길이 50m에 달하는 그 안쪽 약 1천100평에 8각형 건물지 외에 뚜렷한 주거시설이 없다.

이는 이곳이 일상적인 주거지용이 아니라는 명백한 증거가 된다.

나아가 네 담장지 중에서도 유독 남쪽 담장에만 회랑식 대규모 정문시설을 마련했다. 동쪽과 서쪽 및 북쪽 담장에는 문이 있었다고 할 만한 흔적이 없다.

이로 볼 때 나정 유적이 제단이자 성소임은 부인하기 어렵게 됐다.

문제는 이 나정이 곧 신라시대 최고의 제사시설이라는 신궁(神宮)일까 하는 점이다. 사실 한국고대사학계가 가장 주목하는 대목이다.

신궁(神宮)이란 「삼국사기」에 의하면 소지왕(재위 479∼500년) 혹은 지증왕(재위 500-514)때 시조가 탄강(誕降)한 곳에 세웠다고 하고 있다. 이와 같은 신궁은 그다지 기록이 많지는 않으나 신라멸망 때까지 가장 중요한 국가적 제사시설이었음은 명백하다.

이와 같은 신궁에 대해 학계에서는 그 위치는 물론이요, 이곳에 모신 신(神) 중에서도 최고신은 누구인가를 두고 논란이 분분하다. 주신이 박혁거세라고도 하고, 김알지라고도 하며, 최근에는 천신(天神)이라는 견해가 나오기도 했다.

이러한 신궁은 문헌기록이라든가 박혁거세의 첫 도읍지라는 창림사 절터가 인근에 포진하고 있는 점 등 여러 정황으로 보아 나정 일대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다만 이러한 신궁과 관련된 작금 학계의 연구에서 비교사적인 고찰이 거의 배제돼 있다는 사실은 문제점으로 지적할 수 있다.

신궁이란 제사시설은 신라 뿐만 아니라 고대 중국과 고대 일본 모두에서 확인되고 있다. 중국의 경우 이미 신궁이란 명칭은 「시경」에서 민궁(悶宮)이라는 이름으로 보이거니와 이에 대해 후한시대 학자인 정현은 민궁은 곧 신궁(神宮)이라고 풀이했다.

그러면서 정현은 이 민궁, 곧 신궁에 모신 주신은 주(周)나라 시조인 후직(后稷)의 어머니 강원(姜嫄)이라고 주목할 만한 지적을 하고 있다. 전설과 각종 문헌에 따르면 후직은 어머니만 있고 아버지가 없다.

예수의 사례에서 보듯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영웅 혹은 성인 혹은 건국시조 관련 신화에서 어머니만 있고 아버지는 없는 경우가 허다하게 발견되는데 이것은 살부(殺父), 즉, 아버지 죽이기 신화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다.

어머니를 속이기는 어려운 반면 아버지는 누구인지를 숨기는 방법은 훨씬 쉽다. 이러한 신화에서 어머니만 있고 생물학적인 아버지를 불가지(不可知)로 처리하고 난 다음에는 거의 예외없이 동원되는 방법이 아버지를 하늘로 설정하는 것이다.

동아시아 전통시대에 천자(天子)라는 개념은 사실 이러한 대모신(大母神) 신앙에다 아버지 죽이기 신화가 결합한 결과물인 셈이다.

어떻든 주나라 건국시조 후직은 어머니만 있고 아버지는 모른다. 그래서 이 건국시조의 어머니 또한 숭배대상으로 자연스럽게 대두되는 것이다. 건국시조의 어머니를 제사하기 위한 과정에서 등장하는 것이 바로 신궁이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신궁의 특성은 실로 공교롭게도 일본의 유서깊은 신궁인 이세신궁(伊勢神宮)에서도 답습된다. 이 이세신궁 주신이 바로 아마테라스노오미카가미(天照大神). 이 신은 만세일계로 이어진다는 일본 천황가의 대모신적인 존재이다.

역시 천황가의 모계 조상을 제사하기 위한 장소가 바로 신궁인 것이다.

문제는 신라의 신궁. 중국의 신궁이나 일본의 신궁 모두 건국시조의 어머니를 제사지내는 곳임이 밝혀진 상황에서 신라라고 무엇이 다를 것인가?

이런 점에서 신궁이 건립된 장소를 「삼국사기」에서 시조, 즉 박혁거세가 탄강한 장소라고 명확히 하고 있다는 점은 주목을 요한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등지에 따르면 박혁거세 역시 여타 건국시조와 마찬가지로 생물학적 아버지가 없다.

생물학적 아버지 대신에 신라인들이 내세운 혁거세의 아버지가 바로 하늘이었다. 이렇게 됨으로써 박혁거세는 하늘의 하늘, 바로 천자(天子)라는 신화가 만들어진다.

한데 박혁거세 탄생 신화에서 또 하나 독특한 대목은 어머니도 누구인지 그다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박혁거세가 천자로 설정되었다고 해도 어머니는 분명히 있었을 터인데 적어도 문헌에서는 명확하게 나타나지는 않는다.

다만, 「삼국유사」에 선도성모(仙桃聖母)라 해서 중국에서 건너온 이 여신이 바로 신라 시조의 어머니라는 신화가 수록돼 있음이 주목을 끈다.

선도성모가 신이 되어 살았다는 선도산은 후대에 내려오면 김유신의 두 여동생 중 맏이인 보희가 그 산꼭대기에서 방뇨를 하니 신라 서울이 온통 물바다가 되었다는 꿈 이야기에 등장하는 서형산, 바로 그곳이다.

그런데 실로 우연의 소산인지, 현재의 나정에서 서쪽을 바라보면 선도산 꼭대기가 내려다 보인다. 다시 그 반대편에는 박혁거세가 처음으로 도읍했다는 창림사가 자리잡고 있다.

어쨌건 이러한 비교사적 고찰, 혹은 주변 유적지 및 문헌기록을 토대로 할 때 나정은 신라시조 혁거세 탄강신화의 주무대이며, 이곳에 세웠다는 신궁에 모신 주된 신은 박혁거세나 김알지 같은 남성이 아니라 선도성모와 같은 여신일 가능성을 생각케 된다.

이런 점에서 「삼국사기」에서 신궁을 건립한 장소를 하필 "시조가 탄강하신 곳"이라고 표현하게 되었는지, 그 의문의 일단을 풀 수 있는 실마리가 마련된다.

시조가 탄강한 곳은 출생에 비중을 둔 표현이며, 이는 나아가 아버지가 아니라 그 어머니에 중점을 둔 곳임이 명백하게 드러난다.

이런 점에서 신궁이 고대 중국이나 일본처럼 명백히 건국시조의 어머니를 모신 곳인지 어떤 지는 아직까지 분명치 않으나, 대모신적 사상이 짙게 투영돼 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나아가 박혁거세는 천자, 즉, 하늘의 아들로 신화화되어 있다는 점에서 혹시라도 나정에서 확인된 4방8각의 건물지가 천신과 지신의 감응, 혹은 접선 장소를 형상화한 신궁일 지도 모른다.

이곳이 신궁이건 아니건 관계없이 제단 시설임이 명백한 이상, 또 그것이 하늘과 땅의 접선을 형상화했음이 명백한 이상, 사각형 담장지와 팔각형 건물지 한복판에 위치한 우물은 과연 무엇을 상징할까?
이에 대한 명확한 답을 마련할 수는 없다. 다만 하늘은 양이며 수컷이고, 땅은 음이며 암컷이라는 점에서 하늘과 땅의 접선, 혹은 교접을 형상화한 장치 혹은 시설일 가능성도 내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우물은 일종의 굴(窟)로서 음을 대표하는 땅이 움푹 들어간 곳이며, 아울러 끊이지 않는 샘물로 상징되니, 이와 같은 굴(窟)이 여성의 자궁 신앙과도 밀접하다는 사실은 이미 많은 인류학적 연구성과로 증명되고 있음을 참고해야 할 것이다.

「노자」에 이르기를 우주만물의 원천을 현빈(玄牝), 곧 검은 암컷과 곡신(谷神), 곧 계곡의 신으로 묘사하고 있거니와 이것이 여성의 그곳을 샘 혹은 우물과 동일시했다는 명백한 방증자료가 된다.

아무튼 나정 발굴은 신라사와 관련한 많은 의문을 풀어줄 수 있는 실마리가 되는 동시에 더욱 궁금증을 증폭케 하는 원천이기도 하다.

2003-11-18 17: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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