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의 기원에 대해서는 몇가지 이설이 있다.

무가기원설(巫歌起源說), 광대소학지희기원설(廣大笑謔之戱起源說), 육자배기토리설, 판놀음기원설 등이 그것이다.

무가기원설은 전북 김제시 만경읍 출신으로 해방 직후 월북한 정노식(鄭魯湜 1891-1965)이 1940년에 펴낸 `조선창극사'에서 처음 제기됐다.

이후 많은 동조자를 얻어 가장 설득력 있는 주장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정노식은 `조선창극사'를 통해 "지금도 전라도 무녀의 살풀이.축원 기타 여러가지 굿소리를 들어보면, 그 조와 너름새가 퍽 광대의 창조와 방불하고, 과거 명창 중에 최선달(崔先達), 권삼득(權三得), 정춘풍(鄭春風) 기타 수 인의 비가비(양반이나 중인계급 출신의 소리꾼)를 제한 외에는, 광대가 거의 모두 재인 무녀계급에 한하여서만 출생한 것으로 보아서 가히 알 수 있다"며 판소리의 기원을 무굿에 두고 있다.

그는 판소리 「춘향가」는 그 뿌리가 억울하게 죽은 춘향의 넋을 달래기 위해 남원과 인근에서 성행했던 살풀이굿이라고 주장했다.

즉 "무녀의 굿에서 광대의 창극조로 변천하고, 이것이 어느 문호의 손에 소설화되고, 또 그후 많은 사람의 손에서 증보되고 부연되어 지금의 걸작 춘향전을 완성하게 된 경로"라며 판소리 「춘향가」와 판소리계 소설 「춘향전」의 생성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무굿의 연원을 신라시대의 화랑에서 찾았다.

화랑은 국선(國仙)의 지휘에 따라 무예를 닦고 가악(歌樂)을 공부하면서 명산대천의 승지를 찾아다니며 숭신(崇神)하는 풍습이 있었는데 고려를 거치면서 이 경신(敬神)하는 행위는 무굿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판소리학계는 이 무가기원설을 다음과 같이 보다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첫째, 판소리와 판소리 창자의 분포지역이 무가의 시나위권과 일치한다는 점이다.

시나위권은 경기도 남부, 충청도, 전라도 지역을 일컫는데 그동안 배출된 판소리 명창들을 보면, 대부분이 이 지역 출신이다.< 註: 시나위란 민속악(民俗樂)의 하나로 향피리, 대금(大芩), 해금(奚琴), 장구로 편성되는 합주로 남도의 무악(巫樂)을 가리킴 >

둘째, 판소리의 여러 가지 특성이 시나위권의 무가와 같다.

굿에서는 넋두리하는 듯한 느낌이 강한 성음을 사용하고, 판소리는 이보다 힘이 더 들어가고 기교가 많은 성음이지만 둘 다 목 쉰 소리라는 점에서 동일하다.

또 판소리의 `발림'은 굿판의 살풀이 춤사위와 유사하며, 판소리의 장단과 선율은 시나위권 무가와 같은 양식이다.

셋째, 다른 지역의 무당은 보통사람이 신내림에 의해 무당이 되는 강신무(降神巫)이지만 시나위권은 집안 대대로 이어지며 전문적인 훈련을 거쳐 무당이 되는 세습무(世襲巫)다.

마찬가지로 판소리 소리꾼들은 대부분 무당 가계에서 나왔으며 집안 대대로 이어지는 성격이 강했다. 양반이나 평민 출신 소리꾼인 `비가비'는 일부일 뿐이다.

넷째, 판소리의 내용적 성격이 무가의 그것과 비슷하다는 점이다.

시나위권 무가는 살풀이적 성격을 지니듯이 판소리 역시 온갖 시련을 딛고 일어서 흥겨운 한바탕의 축제적 분위기로 끝맺는 것이 많다.

판소리의 광대소학지희기원설은 우리나라 민속예능이 무부(巫夫)에 의해 대대로 계승되어 왔으며 신청을 중심으로 조직체를 갖추고 있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무부들이 행한 연예 오락 중심의 놀이를 소학지희(笑謔之戱)라고 하는데 이 소학지희에서 어느 뛰어난 광대가 남도지방 무가를 활용해 우리 민족에게 전해내려오는 설화를 긴 노래로 엮어 부른 것이 바로 판소리의 시초라는 것이다.

이 광대소학지희기원설은 판소리를 처음 부르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 최선달, 하은담이 무부들의 조직인 신청의 대방이나 도산주의 직책을 맡아던 사람이라는 문헌적 증거에 그 바탕을 두고 있다.

판소리의 육자배기토리 기원설은 육자배기로 대표되는 남도 민요가 판소리의 기본적 바탕을 이루며 생성됐다는 주장이다.

토리는 민요 선율의 지역적 특색을 가리키는 말로 시나위권의 무가는 육자배기토리로 구성되어 있다. 육자배기와 판소리의 중심 선율(계면조: 슬프고 한스러운 선율)은 동일하다.

판놀음 기원설은 시나위권의 창우(倡優: 유랑 연예인) 집단의 판놀음에서 판소리가 생겨났다는 주장이다.

이 설은 판소리의 근원이 된 설화가 전라도 당골 무가에 보이지 않다는 점에 주목, 무가가 바로 판소리로 발전했다고 볼 수 없으며 이 둘 사이에 판놀음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판놀음은 조선조에 전문 놀이꾼인 창우 집단이 돈을 받고 벌이던 놀이인데 이판놀음의 양식과 성음, 장단, 조(調) 등이 판소리의 그것과 유사했다.

이같은 판소리의 기원설에 대해 최동현(崔東現 군산대 국어국문학) 교수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판소리의 기원설들은 일견 매우 상이한 것처럼 보이지만, 근본적으로는 동일한 지평 위에서 전개되고 있다. 어떤 주장이 되었건, 무가나 무당 가계의 범위를 크게 벗어나 있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판소리의 기원에 관한 여러 학설들은 서로 상치되어 대립하고 있다기보다, 논의의 측면과 차원만을 달리하면서 상호보완적인 관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요컨대 판소리가 남도 지역(시나위권, 혹은 육자배기토리권)의 무가와의 깊은 관련 속에서 생성되었다는 것을 움직일 수 없는 사실로 보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