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는 누가 언제 처음 불렀을까?

판소리가 우리 민족을 대표하는 민속예술임에도 불구하고 유감스럽게도 초기 판소리에 대한 기록은 극히 부실하다.

무가기원설(巫歌起源說)에서 알 수 있듯이 판소리는 조선시대에 가장 천한 계급으로 인식되던 무당 가계에서 움이 텄기 때문에 초기 판소리의 형태와 시창자(始唱者)에 대한 기록이 거의 남아있지 않은 것은 어찌보면 당시의 풍습상 당연한 일이었다.

조선시대에 노비.승려.백정.무당.광대.상여꾼.기생.공장(工匠)을 팔천(八賤)이라 했으며 이 여덟 가지 천민 중에서도 가장 수악한 것이 백정과 무당이었다.

이들은 일반 양인들이 사는 부성(府城)이나 마을 안은 물론이고 그 언저리에서도 감히 살지 못했다.

양반에게는 더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민촌의 어린아이에게조차 반드시 경어를 써야 했다.

판소리는 이처럼 사람축에도 끼지 못하는 천민계급 사이에 태동했기 때문에 관련 기록이 부실하기 마련이었다.

학계는 몇 안되는, 남아 있는 기록과 구전을 토대로 판소리는 숙종(1661~1720)과 영조(1724~1776) 시절에 처음 민중 속에서 그 모습을 드러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판소리를 처음 불러 이름을 얻은 소리꾼으로는 하은담(河殷譚 또는 한담 漢譚), 결성(結城) 최선달(崔先達), 우춘대(禹春大) 등이 거론되고 있다.

최초의 판소리 연구서라 할 「조선창극사」(발행 1940년)를 쓴 정노식(1891~1965)은 이 책의 `창극조 광대의 효시' 편에서 전도성(全道成 1864~ ?) 명창의 구술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전(全)이 자기 연소시대에 명창 박만순(朴萬順).이날치(李捺致) 등의 소리풀이에서 역대 명창을 순서로 호명할 때에 제일 먼저 하(河).최(崔) 양씨를 드는 것을 누차 들은 기억이 있으니, 양씨가 광대의 효시인 줄로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이것으로 미루어 보면 하.최 양씨의 연대는 알 수 없으나, 그들의 후배인 권삼득(權三得)이 영말정초(英末正初) 사이 인물인즉 하.최 양씨를 조선조 숙종 이후 영조 이전 그 중간시대의 인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러면 창극조 광대는 숙종시대를 전후하여 지금으로부터 2백 년 내외에서 발생한 것으로 잡는 것이 근리(近理)하다.』

판소리와 관련된, 가장 오래된 문헌은 만화재(晩華齋) 유진한(柳振漢 1711~1791)의 문집 「만화집」이다.

충청도 천안지방의 선비였던 유진한은 1753년과 이듬해 호남의 풍물을 구경하고 돌아와 당시 들은 바 있던 춘향가를 200구의 한시로 옮겨놓았다. 한시의 대체적인 줄거리와 등장인물은 현재의 춘향가와 비슷하다.

이를 통해 18세기 중반에 이미 호남지방에서 판소리 춘향가가 실재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당시의 판소리는 비록 초기 형태였지만 이를 처음 보고 듣게 된 충청도의 문인이 한시로 옮길 정도로 예술적 감동을 지녔음을 유추해볼 수 있다.

따라서 판소리는 숙종 때인 17세기 말 경부터 불린 것으로 학계는 추정하고 있다.

이때의 판소리는 신분적으로 민중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으며 지역적으로 아직 호남지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또다른 판소리 관련 문헌에는 송만재(宋晩載)의 「관우희(觀優戱)」를 들 수 있다.

모두 50수의 한시로 1810년 경 쓰여졌으며 이 안에는 판소리 열두 바탕과 우춘대 등 초기 명창의 이름이 등장한다.

『장안에선 많이들 우춘대를 말하지만

오늘날 누가 능히 그 소리 이어갈까?

한 곡조가 끝나면 술동이 앞에는 천 필의 비단이 보수로 쌓이는데

권삼득과 모흥갑이 소년으로 이름있구나』

이로 보아 1810년 대에 이미 우춘대는 이름이 널리 알려진 명창이었으며 당시 소년으로서 권삼득과 모흥갑이 그 뒤를 이어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권삼득(權三得 1771-1841)은 안동 권씨 29대 손으로 양반 계급 출신의 비가비명창이다.

판소리사적으로 권삼득은 소리 내력을 알 수 있는 최초의 판소리 명창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인물이다.

모흥갑은 `평양감사 부임도'라는 병풍 속의 그림에 판소리를 하는 모습이 담겨있다.

평양감사 부임도를 보면 멀리 평양성이 그려져 있고 대동강변 공터에서 부채를 든 소리꾼이 갓과 도포를 쓴 양반에 둘러싸여 고수의 북반주에 맞추어 소리를 하는 모습이 비교적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이 소리꾼 옆에는 `명창 모흥갑'이라 쓰여 있다.

한편 송만재는 「관우희」를 쓰게 된 연유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과거에 급제하면 광대 재인들을 불러 노래와 재주를 구경하는 풍속이 있는데, 금년 봄 우리 아이가 과거에 급제하고도 집안이 가난하여 한 바탕의 놀이를 베풀 수 없으므로 이 시를 짓는다.』

초기의 판소리는 이처럼 집안에 큰 경사가 있을 때 잔치에 초대받아 공연되는 방식으로 존재했다.

이를 종합해볼 때 판소리는 숙종 말 경 호남지방의 민초들 사이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뒤 영.정조를 거치면서 지역적으로 호남을 벗어나 전국화하고, 신분적으로는 양반계급으로 진출하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다.

판소리의 생성 초기는 성음과 사설 면에서 단순함을 벗어나지 못했지만 상당한 예술적 감동을 지닌 형태를 띠고 있었으며 하은담, 최선달, 우춘대와 같은 초기 명창도 배출할 수 있었다.

이후 판소리는 뛰어난 재능을 지닌 소리꾼을 만나고 신분과 지역을 초월하면서 그 기반을 넓혀가는 한편 끊임없는 자기 변모를 통해 민족의 대표적인 예술 형태로 자라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