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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유산「판소리」..(7) 고수

고수는 소리꾼과 함께 소리판을 이끌어가는 또 하나의 능동적인 주체다.

북장단과 추임새를 통해 판소리 공연의 한 축을 담당하는 고수의 기능을 보자.

첫째 반주의 기능이다.

고수는 소리에 따라 장단을 짚어주는 한편 소리의 이면에 알맞은 북가락으로 소리판의 흥을 고조시킨다.

둘째 지휘의 기능이다.

고수는 소리꾼이 북 장단 내에서 일정한 템포로 소리를 할 수 있도록 지휘자 역할을 한다.

셋째 `효과'로서의 기능이다.

소리판은 다른 공연 예술과 달리 극히 단조로운 형태인 만큼 거의 모든 효과를 고수의 북가락에만 의존한다.

춘향가에서 춘향이 곤장을 맞는 대목에서는 장단에 맞게 북머리를 북채로 세게 침으로서 그 효과를 내고 적벽가에서는 병사와 군마가 뒤엉켜 싸움을 벌이는 전쟁터의 소음을 북가락이 대신하기도 한다.

넷째 관객의 대표 역할이다.

고수는 관객을 대표해 소리꾼의 소리에 추임새로 반응을 보이며 관객들의 추임새를 유도하기도 한다.

다섯째 `보비위'의 기능이다.

보비위란 소리꾼이 기교를 부리기 위해 소리를 늘이거나 소리하는 과정에서 박자가 삘 때 고수가 기민하게 소리에 맞게 북장단을 쳐주는 일이다.

소리판에서 소리꾼과 고수는 이처럼 바늘과 실 같은 존재다.

이들의 관계를 일컫는 말 가운데 논란거리가 되는 것 중 하나가 `일고수 이명창(一鼓手 二名唱)'이란 말이다.

이 말을 그대로 풀이하자면 고수가 더 중요하고, 다음이 명창이란 뜻이다.

그러나 소리판에서는 고수가 소리꾼보다 중요하다 할 수가 없다.

그래서 박동진(1916~2003) 명창 같은 이는 `일고수 이명창'이란 말은 "누가 더 중요하느냐"하는 중요도를 나타내는 말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이 말은 순서를 나타내는 것으로 먼저 고수가 나서 북 다스름(가벼운 북의 두드림으로 연주할 준비가 됐음을 알리는 `알림박')을 하면 그 다음에 소리꾼이 나서 소리를 하게 됨을 의미한다"는 것이 박명창의 지론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판소리계에서는 `일고수 이명창'이란 고수도 소리꾼 못지 않게 중요하다는 점을 역설적으로 강조하는 말로 여긴다.

고수의 중요성이 크게 부각되지 않다가 이를 재인식하기 시작하면서 생긴 말쯤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판소리에 관한 초기 문헌으로는 유진한(柳振漢)의 「만화집(晩華集)」과 송만재(宋晩載)가 쓴 「관우희(觀優戱)」나 신위(申偉)가 쓴 「관극시(觀劇詩)」등이 있는데, 소리꾼에 대한 기록만 있을 뿐 고수에 대한 기록은 찾아보기가 힘든다.

초기에는 소리조차도 채 정립이 되지 않은 단계여서 북장단의 수준이 거론되기는 너무 일렀을 것으로 보인다.

박동진 명창의 증언에 의하면 그가 젊었을 적만 해도 고수는 식사할 때 소리꾼과 겸상을 하지 못할 정도로 하대를 당했다고 한다.

행하(行下: 소리판이 끝난 후 소리꾼과 고수에게 주는 보수)는 소리꾼이 전액을 받아 이를 고수와 7:3의 비율로 나누어 가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소리를 하러 갈 때도 소리꾼은 말이나 가마를 타고 가는 반면에 고수는 북을 짊어지고 걸어가야 했다.

그래서 고수들은 자신들의 처지에 항상 불만을 가졌고, 고수 노릇을 소리를 배우기 위한 방편쯤으로 생각했다.

판소리사의 초기에 많은 명창들이 고수를 거쳐 명창이 되었다는 사실이 이를 반증한다.

19세기는 판소리사에서 `8 명창 시대'로 일컬어진다.

이 19세기를 `전.후기 8명창 시대'로 다시 나누는데, 송광록과 주덕기와 같은 이들은 당초 고수로 출발해서 명창의 반열에 올랐으며, 명창 가운데에서도 손에 꼽히는 `전기 8 명창'에 낄 수가 있었다.

송광록(宋光祿 1803?-?)은 조선의 역대 명창 가운데 으뜸이며 가왕(歌王) 칭호를 받는 송흥록(宋興祿 1800?-?)의 친동생으로 그의 지정 고수역을 맡고 있었다.

당시에는 소리꾼과 고수의 차별이 심해, 형 흥록은 보교(步轎: 벼슬아치가 타던 가마의 한 가지)나 나귀를 타고, 소리판에 불려 다녔던 데 비해 광록은 북을 멘 초라한 행색으로 그 뒤를 따라야 했다.

좌석에도 상석과 말석으로 차별을 두었고, 음식상도 그러했다.

소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에 받는 보수도 형에 비해 10분의 1밖에 안됐다.

광록은 이에 큰 자극을 받고 어느 날 종적을 감추고, 제주도로 건너가 수년 간피나는 소리 공부를 하여 마침내 일가(一家)를 이루었다.

고향인 전라도로 다시 돌아온 그의 명성은 날로 높아져 그의 형 흥록과 기예를 다투고, 형의 소리를 기탄 없이 비판할 수 있는 득음의 경지에 올랐다고 전해온다.

전기 8 명창의 한 사람으로 꼽는 주덕기(朱德基) 역시 고수 출신이었다. 주덕기는 전남 담양군 창평면 사람으로 송흥록(宋興祿)과 모흥갑(牟興甲)의 고수를 하다, 그 역시 차별 대우를 견디지 못하고 소리꾼이 되었다.

이후 시대가 변하면서 평생 북장단만을 맡았던 전문적인 고수도 생겨났고, 당초 소리꾼이었으나 목이 꺾여 고수로 전향하거나, 소리와 고수를 병행하는 다양한 모습으로 발전하게 됐다.

그래도 고수의 역할이 제대로 평가받고 `고법(鼓法)'이란 말이 생겨난 것은 훨씬 후의 일이다.

지금 활동하고 있는 나이 든 소리꾼들은 "예전에는 고법이라는 것이 없었다"고 말한다.

이는 북장단이란 것이 어떤 특별한 분야의 독립된 예술로서 존재하지 못했고, 보편 타당한 이론이 뚜렷하게 제시되지도 않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저 북을 잘 치는 것은 고수들의 기량이나 기능으로 여겨졌지, `고법(鼓法)이라는 `북을 치는 법식(法式)'으로까지는 인식되지 못하였던 것이다.

고수란 그냥 소리하는 데 필요한 종속적이고 부수적인 존재로 여겨졌기 때문에 고법에 대한 이론도 크게 관심을 기울일 처지가 되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몇몇의 명고수를 거쳐 고법이라는 용어도 생겨났으며, 지난 78년 무형문화재 판소리 고법 예능 보유자로 지정됐던 김명환(金命煥 1913-1989).김득수(金得洙 1917-1989).김동준(金東俊 1928-1990) 등 명고수 3인방에 의해 정통 고법에 대한 구체적인 이론이 제시되기에 이르렀다.

2003-12-01 13:2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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