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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유산「판소리」..(14) 소사(小史)

판소리학계는 그동안 발굴된 자료의 판독과 해석, 추론을 통해 판소리사를 대략 1~4 시기로 나눈다.

제 1기(형성기) : 판소리의 초기적 형성기

제 2기(8명창 시대) : 판소리가 하나의 서사적(敍事的) 창악(唱樂)으로 정립되어 양반들에게까지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마침내 8명창이 나오기까지.

제 3기(근세 5명창 시대) : 판소리에 관한 양반층의 관심과 후원이 증대되면서 판소리의 세련미를 더욱 촉진하고 증대되던 시기.

제 4기(쇠퇴기) : 일제에 의한 민족문화말살 정책과 무분별한 서구문화의 유입으로 판소리가 우리 곁에서 급속하게 멀어지는 시기.


▲ 제 1기(형성기)

판소리는 우리 민족의 삶 속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오랜 세월 동안 전승된 한민족 고유의 예술이기 때문에 판소리의 근원을 따져보자면 우리 역사의 뿌리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판소리라고 부를 수 있는 형태가 민중 속에 그 모습을 드러낸 시기는 그리 오래지 않다.

판소리의 존재를 확인해볼 수 있는 최초의 문헌은 유진한(1711-1791년)의 「만화집」이다. 이 문집에 흔히 < 만화본 춘향가 >가 부르는 가사 춘향가 200구가 실려있다.

이 춘향가는 1753년부터 이듬해까지 유진한이 호남지방의 문물을 구경하고 돌아와 춘향가의 사설 내용을 한시로 옮겨 적은 것이다.

이로 미루어 판소리는 최소한 17세기말 이전에 불린 것으로 추론해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시기의 판소리는 아직 음악이나 사설의 내용이 훨씬 단순하고 빈약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 제 2기(8명창 시대)

8명창 시대는 전기와 후기로 나누는데 전기는 19세기 전반, 후기는 19세기 후반이다.

이 19세기 초반을 `전기 8명창 시대', 후기를 `후기 8명창 시대'로 구분한다.

8명창 시대란 뛰어난 명창 여덟 명이 활동하던 시기를 뜻하는데 꼭 8명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대략 명창으로 8명 정도가 거론됨을 의미한다.

또 평가 기준에 따라 8명창으로 꼽는 소리꾼도 사람에 따라 다르다.

전기 8명창 시대에 이르러 판소리 12바탕이 모두 완성됨과 아울러 판소리가 비약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전기 8명창에 거론되는 소리꾼으로는 권삼득, 송흥록, 염계달, 모흥갑, 고수관, 신만엽, 김제철, 주덕기, 황해천, 송광록 등이 있다.

이들은 자신이 개발한 `더늠'과 선율로 판소리의 세련미를 한층 고양시켜나갔다.

판소리는 이들 전기 8명창의 시기를 거치면서 판소리가 지역적으로 남도를 벗어나고 계급적으로 민초에서 양반까지 청중을 확대하면서 명실상부한 민족의 예술로 발전하게 됐다.

즉, 전기 8명창 시대는 판소리의 예술화를 완성하고 지역적, 계급적 한계를 극복하는 발판을 마련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후기 8명창 시대는 활동했던 소리꾼으로는 박유전, 박만순, 이날치, 김세종, 송우룡, 정창업, 정춘풍, 김창록, 장자백, 김찬업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은 전기 8명창의 소리를 계승하여 보다 세련미를 더해 나갔다.

이 시기에는 판소리가 양반계층은 물론 왕실까지 침투하게 되었다. 특히 대원군과 고종은 판소리를 특히 좋아하여 수많은 명창들의 소리를 감상하고 벼슬을 내리기도 했다.

판소리에 대한 양반들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사설과 음악 등에서 상당한 발전을 이룩한 긍정적인 측면이 있었다. 그러나 봉건적인 양반들의 미의식이 개입함으로써 서민적 발랄함을 잃어버리는 부정적인 면도 나타났다.

그 결과 판소리 12바탕 가운데 전승 5바탕은 심한 변모을 겪어야 했으며 7바탕은 아예 전승에서 탈락했다.


▲ 제 3기(근세 5명창 시대)

19세기말부터 20세기 전반기를 근세 5명창 시대라 부른다. 이 시기의 명창으로는 박기홍, 김창환, 김채만, 송만갑, 이동백, 김창룡, 유성준, 전도성, 정정렬 등이 일컬어진다.

이 때는 일제의 국권 침탈이라는 민족적 비운을 맞이하던 시기다.

이 시기에 판소리의 또다른 형태인 창극이 등장했으며 근세 5명창 가운데 한명인 정정렬이 이를 발전시키는데 크게 기여했다.

창극은 이미 1903년 원각사 시절부터 공연되고 있었으나, 이 때의 창극은 극이라기보다는 배역을 나누어 소리를 하는 정도에 불과했다. 무대장치도 없었고, 연기나 분장도 형편없었다.

초보적 수준에 머물던 창극은 정정렬이 1933년 결성된 < 조선성악연구회 >의 상무이사를 맡아 실질적으로 이 단체를 주도하고 판소리를 편극하면서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된다.

당시 < 조선성악연구회 >는 130여 명의 명인 명창이 모여 있는 명실공히 국악의 총본산이었다.


▲ 제 4기(쇠퇴기)

5명창 시대가 끝나는 1940년대 이후에는 일제에 의한 민족 말살 정책이 추진되면서 판소리도 급속히 쇠퇴기에 접어들었다.

일제는 심지어 일본말로 판소리를 부르도록 강요했다.

이에 따라 소리꾼들의 구심체 역할을 하던 조선성악연구회도 해체될 수밖에 없었다.

해방 후 국악원이 설립되고 여러 창극과 여성국극 단체가 생겨나기도 호황을 맞은 듯 했으나 6.25동란으로 인해 이마저도 오래가지 못했다.

1961년에는 사단법인 한국국악협회가 발족되었고 국립창극단이 창설되어 정부가 판소리에 대한 지원에 나서기 시작했다.

1964년에는 무형문화재 제도가 시행되어 그해 김연수, 정광수, 김소희, 김여란이 인간문화재로 지정됐다.

이 제도는 사라져가는 전통문화에 대한 국가적 보호의 필요성 때문에 생겨났지만 역설적으로 이는 곧 판소리가 자생력을 잃었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2003-12-25 14:4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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