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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태어나는 도깨비 (上)

필자는 1980년대 말 세계적인 영화제가 매년 열리는 칸느 부근의 프랑스 과학연구단지 소피아앤티폴리스에서 근무한 바 있다.

어느 날 우리 가족은 니스대학 부총장인 엘레강 교수의 초청으로 그의 집을 방문하게 되었다. 정문을 들어서서 수영장까지 딸린 커다란 집을 한참 들어가는데 집안이 모두 깨끗하게 정돈돼 있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현관 앞에 음식이 놓여 있고 거실로 들어가는 통로 한쪽에 아마씨가 뿌려져 있었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고블랭(Goblin, 프랑스판 도깨비)을 쫓아내기 위한 비책이란 대답이었다. 대학교 부총장이라는 사람이 도깨비 운운하는 것도 이상했지만 고블랭을 쫓아내려면 아마씨를 뿌리는 것이 최선책이라는 설명도 잘 이해되지 않았다.

엘레강 교수의 설명대로라면 고블랭은 집안일을 망치는 말썽꾸러기 도깨비이다. 아마씨를 뿌려 놓으면 고블랭이 이를 하나하나 줍는 동안에 지쳐버리거나 날이 새어 장난을 칠 겨를이 없게 된다고 한다. 문 밖에 음식을 놓아두는 것도 아마씨를 줍는 동안에 배가 고프면 이를 먹으라는 뜻에서다. 고블랭은 산등성이나 동굴 같은 곳에 살며 외모는 흉측하고 이상스럽게 생겼다는데 우리나라의 도깨비와 유사했다.



■ 프랑스에도 비슷한 풍습

프랑스는 세계 과학계를 이끌고 있는 선진 과학국 중의 하나다. 게다가 첨단 과학을 연구하는 화학 교수가 고블랭을 쫓는 관습을 행하는 것이 쉽게 이해되지는 않았지만 재미 있는 풍습이라고 생각했다. 조사를 해본 결과 우리나라의 도깨비와 같은 존재를 갖고 있는 나라들이 예상외로 많았다.




[사진설명] 금천교의 역삼각형 귀면. 귀면은 부정한 것을 물리친다는 벽사의 의미가 있다. 다리의 중앙에 있는 역삼각형의 석재를 『창덕궁수리도감의궤』에서는 ‘청정무사’라고 했는데 귀면이 잠자리 두 눈 사이의 모습과 유사하여 명칭된 듯하다.


도깨비 이야기는 한국 어린이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동화일 것이다. 약간 익살스러우면서도 뿔과 이빨을 갖고 있는 이 동물은 어디까지나 상상의 동물이지만 우리에겐 매우 친근하다. 부모로부터 ‘도깨비에게 잡혀가 혼이 난다’는 말을 듣지 않고 자란 아이들은 아마 없을 것이다. 사실 한국인들은 도깨비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라고 또 도깨비 이야기를 하면서 어른이 된다. 당연한 일이지만 한국인 어른치고 아이들에게 도깨비 이야기를 해보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그만큼 우리 주변에 도깨비 이야기가 늘 넘쳐나고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얼마 전에 한 후배가 도깨비 이야기 중 가장 잘 알려진 『도깨비 방망이』를 거론하면서 ‘말도 안 되는 모순투성이’라고 열을 올렸다. 『도깨비 방망이』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옛날에 어떤 사람에게 아들 형제가 있었다. 형은 장가를 들어서 잘살고, 동생은 나무를 해다가 팔아서 끼니를 이으며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그런데 형은 저만 알고 마음씨가 나쁜 반면, 동생은 마음씨가 착하고 예의가 바른 까닭에 주변사람들의 칭찬이 자자했다.

어느 날 동생이 산에서 갈퀴로 갈잎을 긁고 있는데 개암(개금) 하나가 굴러오자 아버지께 드리겠다면서 주웠다. 개암 한 개가 또 굴러 오자 이번에는 어머니께 드릴 생각으로 주웠다. 세 번째 개암이 굴러오자 비로소 자신의 몫이라며 주워서 집으로 가져가려는 데 날이 저물었다. 하는 수 없이 어느 빈집으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그 집은 도깨비가 살고 있는 집이었다. 도깨비들이 들어오자 그는 천장의 대들보 위에 몸을 숨겼다. 도깨비들은 그가 있는 줄도 모르고 방망이를 두드려 음식과 술 등 필요한 것을 모두 만들어 놓고는 노래도 하고 춤도 추며 야단법석을 떨었다. 숨어서 도깨비들을 보고 있던 그는 배가 고파지자 개암 하나를 ‘딱’하고 깨물었다. 도깨비들은 그 소리를 듣고 산신령이 노했다면서 방망이를 버리고 도망쳤다. 그는 도깨비 방망이를 갖고 집으로 가서 부러운 게 없는 큰 부자가 되었다.

심술 맞은 형이 이 소식을 듣고 산으로 가서 갈퀴로 갈잎을 긁었더니 역시 개암이 굴러왔다. 그는 첫 번째 것은 자기 자신이 갖고 두 번째 것은 아내에게 주며, 마지막 것은 부모에게 드리겠다고 생각했다. 개암을 갖고 날씨가 어두워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도깨비들이 살고 있는 빈집을 찾아갔다. 밤중이 되자 동생의 말처럼 도깨비들이 나타나 잔치판을 벌렸다. 그는 개암을 깨물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도깨비들이 도망을 치기는커녕 그를 끌어내려 도깨비 방망이를 훔쳐간 도둑놈이라고 두드려 패는 것이었다.'




[사진설명] ‘붉은악마’의 포스터. 붉은악마에서 차용한 치우천왕을 도깨비의 원형으로 보는 학자들도 있다.


후배는 개암이 굴러왔을 때 동생이 우선 부모에게 먼저 드리고 나중 것을 자신이 갖겠다고 한 대목은 이해가 되나 도깨비 집에서 그들에게 들킬까봐 조마조마한 상황에서 개암을 깨문다는 것은 비상식적이며 개암 깨무는 소리에 도깨비들이 도망갔다는 것은 더욱 이해가 안 된다며 웃었다.


■ 현대는 도깨비 방망이 욕심낸 형을 "인간적" 평가도

도깨비 방망이가 탐이 나 욕심을 부리다 봉변을 당하는 사람이 오히려 인간적이라고도 했다. 우선 개암이 들어오자 자신과 아내를 먼저 생각하고 마지막으로 부모를 생각하는 것은 현대사회의 가족단위가 핵가족 중심인 것을 감안하면 당연하다는 것이다. 그는 욕심 많은 사람의 적극적인 자세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도깨비 방망이를 얻어 부자가 됐다는 소리를 듣고 자신도 부자가 되려는 생각에서 직접 도깨비 방망이를 찾아 나서는 형이야말로 현대인이 본받아야 할 인물상이라고 주장했다. 현대적 시각으로 볼 때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으므로 목적달성을 위한 적극적 시도가 가상하다는 것이었다.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나라의 민담도 현대적으로 각색해야 한다고 열을 올렸다. 불합리하고 상식에 어긋나는 민화나 전설은 교육적인 차원에서도 좋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설이나 민담은 그 자체가 당시의 사회와 정신을 반영하는 것으로 그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후배가 지적하는 내용 모두가 터무니없는 객설로만 보이지는 않지만 아무리 현대화가 중요하다 하더라도 과거의 유산 없이 현대화가 있을 수 없는 것 아닌가? 과거에 우리 조상들이 비록 답답하게 살았고 이해되지 않는 국면이 많았다 하더라도 바로 그런 과거가 미래를 알차게 대비할 수 있는 바탕이 된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 혹부리 영감·도깨비 감투 등 지방마다 설화 다양

『도깨비 방망이』의 내용은 퍽 단순하면서도 매우 교육적이다. 착한 사람은 도깨비 방망이를 얻어 부자가 되지만 욕심쟁이는 도깨비 방망이를 얻으려다 오히려 망하게 된다는 권선징악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런 이야기는 흔히 고약한 형과 착한 동생으로 대비된다. 혹을 떼러 갔다가 혹을 붙이고 돌아왔다는 이야기나 『흥부전』의 기본구조와도 유사하다.

『도깨비 방망이』와 같이 잘 알려진 또 다른 설화는 『혹부리 영감』으로 우리나라 전 지역에 전승되고 있다. 이 내용도 자못 해학적이다.

'혹부리영감이 어느 날 도깨비들을 우연히 만나 노래를 불렀다. 도깨비들이 노래가 어디서 나오느냐고 물어 혹에서 나온다고 하자 도깨비들은 혹을 떼고는 재물을 주었다. 도깨비가 준 재물로 부자가 되자 또 다른 혹부리영감이 도깨비를 찾아가 노래를 불렀다.

노래가 나오는 곳을 도깨비가 묻자 영감이 역시 혹에서 나온다고 했고, 도깨비들은 거짓말쟁이라고 하면서 다른 혹마저 붙여 주었다.'




[사진설명] 고구려 귀면와당. 고구려 장군총에서 발견된 귀면와당으로 이를 도깨비로 인정할 경우 삼국시대에 이미 도깨비에 대한 믿음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설화는 선행자는 행운을 얻는 반면 모방자는 불운을 겪는 내용으로 창조적 행위를 긍정하고 모방행위를 부정하고 있다. 특히 혹을 마음대로 붙였다 떼었다 하는 행위는 아무리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두 번 거듭 속지 않는다는 점과 더불어 누구를 속여서 잘되고자 하는 생각은 간혹 성공할 수 있을지 모르나 결국에는 실패하고 만다는 가르침이 반영되어 있다.

『도깨비감투』는 머리에 쓰면 사람의 형체가 보이지 않는다는 마술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데 몸에 등거리를 걸치거나 풀잎을 지녀도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 내용도 자못 해학적이다. 충청남도에서 전승되는 이야기를 김열규의 『도깨비 날개를 달다』에서 발췌해 본다.

'옛날에 갓을 만들어 근근이 살아가는 영감이 있었다. 그는 날마다 열심히 갓을 만들어 팔았지만 늘 생활이 쪼들려서 갓 만드는 짓을 언제 면할 것인가 하고 한탄했다. 그런데 어느 날 그가 평소와 같이 한탄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늙도록 갓만 만드니 화가 날만하다고 웃는 것이었다. 소리 나는 곳을 보니 시커먼 그림자가 있는데 언제 들어왔는지도 모를 까만 도깨비였다. 놀랍게도 도깨비는 영감의 소리를 듣고 도우러 왔다며 회색 감투를 그에게 주었다. 감투를 쓰기만 하면 다른 사람이 영감을 볼 수 없으니 영감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 날 밤부터 영감은 감투를 쓰고 아무 집이나 들어가서 무엇이고 필요한 것이 있으면 가지고 나왔다. 도둑 때문에 마을이 온통 소동이었지만 범인을 잡을 수 없었다.

그런데 영감이 감투를 벗어 놓고 담배를 피우다가 실수로 담뱃불에 감투 한 쪽을 태워 버리고 말았다. 그는 아내에게 감투를 기워달라고 부탁했다. 아내는 마침 붉은 헝겊 밖에 없어 그것으로 감투를 기웠다.

그는 빨간 헝겊이 보인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감투를 계속 쓰고 남의 집 물건을 훔쳐다. 마침내 도둑을 맞은 사람들은 빨간 헝겊조각이 왔다 갔다 하면 물건이 없어진다는 것을 알았다.

하루는 소금 장수 집에 들어가서 지게에 얹어 놓은 소금을 지고 나오는데 주인이 몽둥이로 후려치는 바람에 그는 간신히 집으로 도망쳐 왔다. 아내는 영감을 자리에 뉘면서 공연히 딴 생각 말고 부지런히 갓이나 만들어 팔자면서 도깨비감투를 불살라 버렸다.'




[사진설명] 도깨비와 갓. 갓을 만드는 영감이 도깨비감투를 쓰기만 하면 투명인간이 된다는 설화는 우리 선조들도 공상적인 소재를 사용하는데 주저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이와 같은 마술적 물건을 얻게 된 방법은 여럿이다. 도깨비에게서 직접 얻는 방법도 있고 도깨비가 장난하다가 버려둔 것을 갖고 온 경우, 나무 밑에 누워 있다가 곤충이 떨어뜨린 풀잎을 줍게 되는 경우도 있다. 도둑질의 형태도 시장에 가서 물건을 훔치는 것 외에 남의 집 제사음식을 훔쳐 먹는 경우도 있고 형제간의 선악대립을 담은 시나리오도 있다. 이 유형은 서양의 ‘요술 모자’와 같은 내용이며 세계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도깨비감투』는 서양의 투명인간과 같이 인간의 육신이 가진 한계를 벗어나 상상의 세계에서 욕구를 충족시키는 내용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주인공은 투명인간이 되었음에도 남을 해치거나 감투를 이용하여 권력이나 정권을 잡으려는 등의 극단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다. 기껏해야 잔칫집이나 제삿집 음식을 훔쳐 먹는 정도이고 관가에 끌려가서 곤욕을 치루거나 자기 잘못을 뉘우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한국의 투명인간 이야기는 특히 인간의 본능적 욕구에 대해서 기본적으로 긍정하고 있지만 그것을 충족하는 과정에 부당한 일을 하면 징계를 받는다는 도덕적이고 교훈적인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권선징악이 주류를 이루던 사회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감각에 맞춘답시고 사람들을 죽이고 권력을 탈취하는 등의 일을 꾸미게 하는 것은 결코 아름다운 이야기는 아니다.

『혹부리 영감』과 『도깨비감투』는 우리나라 설화 중에서는 비교적 흔치 않은 환상적인 소재를 다루었다는 데서 주목을 받는다. 우리나라 설화는 거의가 과학적 지식이 필요한 공상적인 내용을 설화의 대상으로 삼지 않았고 바로 이 점이 우리나라가 과학 기술면에서 뒤떨어지는 요인이었다고 줄기차게 비판을 받아왔다. 그러나 『혹부리 영감』이나 『도깨비감투』는 우리 선조들도 SF 즉 공상적인 소재를 사용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 도깨비의 종류 : 실체 없는 관념적 문화 소산

도깨비가 무엇인가를 알려면 우선 도깨비란 말이 어디서 왔는지를 찾아보는 것이 순서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도깨비를 광의로 해석하면 귀면(鬼面) 모두를 도깨비로 인정해야 하는데 도깨비는 실상 관념적인 문화의 소산이기 때문이다. 도깨비는 실체가 없다. 도깨비가 관념적인 문화의 소산이라는 것은 도깨비를 정의하는 것도 관념적일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도깨비는 다양한 상징성을 갖고 있고 따라서 그 설명도 다양할 수 밖에 없다.

문효근은 가비와 귀(鬼)를 연관시켜 가비와 갑을 동의 음으로 보면 갑을 귀와 같다고 분석했다. 한자표현에 있어 귀신과 도깨비를 혼용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육서심원(六書尋源)』에 의하면 귀자(鬼字)나 귀자 변(鬼字 邊)글자가 179자나 되는데 모두 도깨비 또는 귀신과 관련된다. 도깨비를 귀로 보아야 한다는 것은 도깨비가 신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응당 귀신의 범주에 들어간다고 해석하는 것이다.

도깨비를 지칭하는 명사는 무수히 많다. 도채비, 돗가비, 독갑이, 독각귀, 귀것, 망량, 영감, 물참봉, 돛채비, 또깨비, 또째비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이는 그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다는 증거이다.

김종대는 우리나라에서 도깨비란 단어가 처음 나타난 것을 15세기 초로 보았다. 조선 전기에 발간된 『석보상절』에 ‘돗가비’란 용어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월인석보(月印釋譜)』, 『역어유해(譯語類解)』, 『계축일기(癸丑日記)』에도 도깨비가 각기 다른 이름으로 나타나있다.




[사진설명] 무속으로 들어온 도깨비. 일부 무속인들은 탈문화의 기원이 도깨비 문화에서 비롯한다고 주장한다(김재연의 호의에 의해 촬영).


문헌상으로는 도깨비라는 말은 이조 초기에 나타났지만 도깨비에 대한 관념은 그보다 훨씬 전부터 있었다고 학자들은 추측한다.

매년 목멱산제(남산제)를 주관하고 있는 김재연은 탈 문화의 기원이 도깨비 문화에 뿌리박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녀에 따르면 추석을 의미하는 ‘한가위’의 ‘가위’는 ‘깨비'를 의미하는 말이다. 한가위 때 모여서 즐기는 놀음을 ‘깨비 놀음’이라고 했는데 여기서 깨비가 끼위→거위→가위로 발음이 변하여 한가위, 추석으로 전승되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도깨비는 우리나라에서 매우 오래 전부터 알려졌다는 뜻이다.


■ 무섭지만 해학적…반인반수의 치우(蚩尤)와 비슷

도깨비의 모습은 부릅뜬 눈으로 악귀를 쫓는 형상이지만 잘 뜯어보면 매우 해학적이다. 무서우면서도 우스꽝스런 표정은 장승의 표정과도 일치한다. 바로 우리 민족의 도깨비에 대한 생각을 엿볼 수 있다. 도깨비에 대한 외경심과 해학성이 고루 섞여 있다.

우리나라 도깨비의 원형을 치우(蚩尤)로 보는 학자들도 있다. 치우가 사용했다는 청동가면이 적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지만 한민족은 이를 악귀를 쫓는 도깨비로 변형시켰다는 것이다.

여하튼 학자들은 우리 선조들이 벽사의 상징물인 도깨비를 창안해 낸 것으로 추정한다. 동북아시아의 고대 문명의 하나인 동이족의 문화에서 도깨비가 독자적으로 출현했다는 것이다. 벽사를 위한 무서운 인물상을 만들다보니 도깨비는 자연 반인반수의 특징을 보여주며 치우와 비슷한 형태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김재일에 따르면 도깨비는 한반도 바깥으로 나간 적이 없으며 도깨비가 순 토종이고 순 국산이다. 한국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자라서 그 존재를 지켜왔다고 그는 강조한다.

고대인들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도깨비에 대한 신앙을 갖고 있었다. 그 증거가 도깨비의 모습이 그려진 기왓장이다. 지붕의 망와(望瓦)에 귀면(鬼面)이 찍혀져 있다. 망와란 망을 보는 기와라는 뜻이다. 무서운 도깨비가 망와에 그려져 있으면 집안에 들어오려던 악귀가 겁을 먹고 물러간다는 믿음의 산물이다. 귀면망와는 순전히 우리 것으로 중국에서는 귀면망와를 사용하지 않는다.

망와는 삼국에서 모두 사용했는데 특히 고구려 장군총의 유물 중에서도 도깨비와 같은 와당이 발견되었고 고구려 벽화에도 해학적인 도깨비에 가까운 문양이 나타나있다. 백제는 복잡하면서도 단순한 도깨비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신라 도깨비는 대단히 정교하면서도 뚜렷한 형태의 도깨비이다.

망와에 그려져 있는 귀면을 도깨비로 인정하는 학자들은 도깨비의 기원이 악귀를 쫓는 벽사의례의 소산이라고 설명한다. 도깨비는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악한 존재가 아니다. 절이나 궁궐의 석수(石狩), 문살문양에도 도깨비가 등장하는 이유도 도깨비가 있어야 절이나 궁을 지킬 수 있다는 뜻에서이다.

반면 강은해는 『삼국유사』의 ‘도화녀(桃花女)와 비형랑(鼻荊郞)’을 우리나라 도깨비의 시조로 삼았다. ‘도화녀와 비형랑’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제25대 사륜왕의 익호는 진지대왕이며 성은 김씨요 비(妃)는 기오공의 딸 지도부인이다. 즉위한 지 4년에 정사가 어지럽고 또 음란한 짓이 많아 그가 폐위되었다.

이에 앞서 사량부에 서녀(庶女)가 있어 얼굴이 고와 도화랑이라고 했는데 어느 날 왕이 그녀를 불렀다.

"여자의 지킬 바는 두 남자를 섬기지 않는 것이니 남편이 있는 여자는 만승(제왕)의 위엄으로도 어쩌지 못합니다."
"너를 죽이면 어찌하겠느냐."
"차라리 죽을지언정 다른 일은 원하지 않습니다."
"네 남편이 없으면 되느냐."
"그러면 될 수 있습니다."

왕은 도화녀를 그대로 놓아주었다. 그 후 왕은 폐위되어 사망했고 3년 후 도화녀의 남편도 죽었다. 도화녀의 남편이 죽은 열흘 후 왕이 생시와 같이 나타나 "네가 이전에 말한 대로 지금 네 남편이 없으니 가능하지 않겠느냐"고 하자 도화녀는 그제야 승낙하고 왕을 7일 동안 머물게 했다.

도화녀는 이내 태기가 있어 비형랑이라는 아이를 낳았으며 진평대왕이 그를 궁중에 데려다가 길렀다. 비형랑이 나이 15세에 집사(직명)를 차수(差授)하니 번번이 궁궐의 담을 넘어 밖으로 나가 황천의 귀신들을 데리고 놀다가 절간의 새벽종이 울리면 돌아오곤 하는 것이었다.




[사진설명] 통일신라시대의 귀면와당. 통일신라시대(7∼8세기)의 와당으로 도깨비가 있어야 절이나 궁을 지킬 수 있다고 믿었다(국립경주박물관 소장).


왕이 비형랑에게 귀신을 불러 신원사에 다리를 놓으라고 말하자 비형랑은 귀신의 무리를 데리고 하룻밤 사이에 다리를 놓았고 그 다리를 귀신다리(鬼橋)라고 불렀다. 왕이 귀신의 무리 중에서 인간세계에 출현하여 정사를 돌볼 자가 있느냐고 묻자 비형량은 길달이란 귀신을 추천했다. 길달은 충성스럽고 정직해서 각간 임종의 뒤를 잇는 아들로 삼았는데 여우로 변하여 도망치는 것을 보고 비형랑이 귀신을 시켜 그를 잡아 죽였다.

귀신 무리들이 비형랑을 두려워하자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글을 지어 집에 붙여놓고 귀신의 접근을 막았다.

"성제(聖帝)의 혼이 아들을 낳았다.
여기는 비형랑의 집이다. 날고뛰는 잡귀들이 이곳에는 머물지 말라."'

위와 같은 기록들을 근거로 많은 학자들이 광의의 도깨비 즉 귀면을 갖고 있는 귀신을 도깨비에 포함시키길 선호하지만 여기에도 문제는 있다. 『삼국유사』의 ‘도화녀와 비형랑 이야기’의 귀신무리를 도깨비로 볼 수 있느냐이다. 더욱이 우리나라의 귀신 이야기에는 도깨비가 등장하지를 않는다.

우리 설화나 전설에 도깨비가 지칭되지 않았다고 해서 도깨비가 고대부터 우리 민중 사이에 알려졌다고 추정하는 것이 무리라는 해석도 있지만 도깨비에 대한 개념이 고대부터 선조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는 주장은 매우 설득력을 갖는다.

벽사 의미를 갖는 망와가 정확히 도깨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지 모르지만 도깨비로 여겨도 좋은 마음속의 그림과 형체에 대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어떤 믿음을 갖고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재일은 도깨비의 일차적인 주거지는 한국인의 마음속이라고 주장했다. 마음이라지만 의식만이 아니라 무의식 속에 이르기까지 도깨비가 그 영토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 점은 도깨비에 관한 이야기를 오늘날의 어린아이들이 쉽게 이해하는 데서도 잘 알 수 있다.

어린아이들이 실존하지 않는 상상의 존재를 쉽게 납득한다는 것은 그들의 납득을 돕는 요소가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그들을 에워싸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도깨비에 대한 오랜 상상과 믿음은 오늘날까지도 우리를 즐겁게 해주고 있다.



이종호(과학저술가)

<이종호 님>은 1948년생. 프랑스 뻬르삐냥 대학교에서 건물에너지 공학박사학위 및 물리학(열역학 및 에너지) 과학국가박사로 88년부터 91년까지 한국에너지기술연구소 해외연구소소장(프랑스 소피아앤티폴리스)과 92년부터 이동에너지기술연구소장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세계 최고의 우리 문화유산>, <신토불이 우리 문화유산>, <세계를 속인 거짓말>, <영화에서 만난 불가능의 과학>, <로마제국의 정복자 아틸라는 한민족>등 다수

< 출처 : 국정브리핑, 2005. 3. 28 >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2005-03-28 17:4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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