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열추적' 전방 8㎞내 물체 확인

“어? 어~ 이거….”

1998년 12월18일. 무내미(국방과학연구소가 위치한 옛 지명) 연구실을 나와 집으로 돌아온 국방과학연구소 제5연구개발본부(현 기술연구본부)의 홍석민(洪錫旼·책임연구원)박사는 저녁 7시 TV 뉴스 중 불과 몇 초 보여진 화면을 보고 손가락으로 가리킬 뿐 말을 잇지 못했다.


연구원들 흥분의 도가니

이날 뉴스는 우리 해군이 북한의 침투용 반잠수정을 남해에서 격침시킨 사실을 보도하는 것으로 꽉 채워지다시피 했다. 연구소 연구원들과 대화를 나누며 격침 사실을 알았지만 전체적인 내용은 잘 몰랐기에 홍박사는 몸을 앞으로 내밀 듯 주의를 기울여 뉴스를 시청했다.

그런데 국방부에서 제공한 흑백 영상에 호흡이 멎을 만큼 놀라고 말았다. 그리고 그는 순간적으로 알았다. 놀란 가슴은 어느새 쿵쿵 뛰고 있었고 얼굴도 뜨거워지는 듯했다. 소리 높여 환호라도 하고 싶었다.

홍박사는 어느새 전화기를 들고 동료 연구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저녁 뉴스를 보면서 간첩선 격침사건 부분을 녹화 좀 해줘.” 홍박사는 1979년 3월 국방과학연구소에 입소한 이래 이토록 흥분되고 보람찬 희열을 느낀 적이 없었다.

98년 12월17일 전남 여수시 돌산읍 임포소초. 밤 11시쯤. 달빛조차 없는 칠흑 같은 밤. 눈으로 식별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파도는 평일보다 다소 높았고 짙은 해무를 뿜어낼 뿐이었다. 해안선 곳곳에 투입된 육군31사단 초병들이 찬바람을 이겨내며 오감(五感)을 집중할 무렵, 책상 2개가 놓인 비좁은 상황실에서 근무하는 김태완(金泰完·당시 21)이병은 다소 답답한 느낌을 받았다.

그의 앞에는 가로·세로 한 뼘밖에 안되는 흑백 모니터가 놓여 있었다. 영화에서나 보던 영상을 자신이 입대해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실내외에서 움직이는 사물을 모두 확인할 수 있다니 참 신기한 일이었다. 밖에 있는 렌즈 달린 장비가 선을 통해 보내오는 화면에서 모든 물체를 식별하는 것이 처음에는 쉽지 않았지만 차츰 선박의 크기·종류까지 알아볼 수 있을 정도가 됐다.

흔히 `띠리리'라고 편하게 불리는 TOD(Thermal Observation Device, TAS-970K·전방감시용 열상장비)라는 야간감시장비가 주는 이 놀라운 영상에 그는 흠뻑 빠지기도 했지만 단 1초라도 화면에서 눈을 뗄 수 없기에 지루함이 심심찮게 찾아왔다. 김이병은 그 지루함은 또 하나의 적이라고 생각했다. 속으로 “정신 바짝 차려야지”하며 스스로 다짐했다. 그 순간 화면에 이상한 물체가 나타났다.

이때가 밤 11시15분쯤. 해안에서 2㎞ 정도 떨어진 곳에서 작은 배 한 척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선체의 반은 바닷물에 잠긴 채 마치 갈치처럼 날렵하게 생긴, 첫눈에도 일반 선박이 아니었다.

“임병장님, 이것 좀 보세요!” 안테나와 사람이 움직이는 모습이 확인됐다. 이들은 즉각 소초장 이상훈 소위(당시)에게 보고했고, 부대는 수색조를 출동시켰다.

간첩선은 18일 0시23분부터 오전 1시22분까지 59분간 관측되지 않았다. 해안초소의 대응 움직임을 뒤늦게 알아채고 이리저리 도주로를 찾아 다녔다. 이 간첩선이 TOD에 다시 잡힌 것은 18일 오전 1시40분쯤. 침투용 반잠수정, 북한의 간첩선이 분명했다. 해경정과 육경정이 추격하자 간첩선은 도주하기 시작했다.

오전 3시7분. 상황을 접수한 합동참모본부는 조명지원이 가능한 공군 CN-235기와 해군 광명함을 출동시켰다. F-5기와 S-2E 대잠 초계기도 출동했다.


개발 TOD 화면 선명

오전 5시10분. 해군함정 8척이 외해를 차단한 가운데 40여 분 후 북한 반잠수정이 아군 고속정에 응사하며 달아나자 오전 5시58분 해군 남원함의 함포가 불을 뿜었다. 3발이 명중됐다. 간첩선의 속도가 시속 5노트로 현저히 떨어졌다. 추가적인 사격이 이어지고 오전 6시25분 간첩선은 마지막 발악 속에 침몰하기 시작하더니 25분 정도 지난 뒤 100ｍ가 넘는 바다 속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최초 관측에서 격침까지 6시간35분의 숨막히는 추격전이었다.

흥분에 밤잠조차 설친 홍박사는 출근하자마자 동료 연구원들에게 뉴스를 녹화했는지 물었다. 그는 흑백 영상을 몇 번이나 반복해서 보고 또 보았다. 거기에는 북한의 반잠수정이 뚜렷이 나타나 있었다.

이때 전화가 걸려왔다. 제5연구개발본부를 지휘하는 이덕훈 본부장(퇴직)이었다. “홍박사, 그거 우리 장비로 잡은 거야?” “예! 우리가 개발한 겁니다.” 홍박사의 목소리는 흥분으로 들떠 있었다. 이덕훈 본부장이 이렇게 물은 것은 당시 군에서 운용하는 TOD가 해외 도입품과 국방과학연구소 독자개발품, 두 종류였기 때문이다.

홍박사는 이것을 화면상태, 즉 화질(畵質)만으로도 확연히 구별할 수 있었다. 국방과학연구소 개발 TOD는 화면이 더욱 선명했다. 이것은 연구개발자만 판별 가능한 것이 아니라 두 장비가 잡은 화면을 비교하면 누구라도 쉽게 알 수 있는 것이었다.

19일자 신문에는 간첩선 격침 사실이 크게 보도됐다.

반잠수정을 포착한 우리 군의 TOD도 소개됐다. 적의 반잠수정은 선체에 레이다파를 흡수하는 특수 도색처리가 돼 있어 레이다 추적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 때문에 열추적을 이용해 전방 8㎞ 안에 있는 물체의 형태와 움직임을 확인할 수 있는 우리 군의 야간감시장비는 반잠수정의 `천적'이라며 `공신'(功臣)이라고 보도했다.

그런데 보도 내용 어디에도 이 TOD가 우리 손으로 개발한 장비라는 말은 없었다. TOD! 한때 그저 야간감시장비로만 소개할 수밖에 없었을 만큼 철저한 보안을 요구받았던 이 장비의 정식명칭은 `전방감시용 열상장비'다.

군은 90년대 초 캐나다에서 TOD를 최초 도입·운용했으나 판매 측이 가격을 2배 가까이 올리자 획득비용이 증가한 데다 정비·유지 등에 필요한 후속 군수지원상 문제가 뒤따르자 국방과학연구소가 연구개발을 추진하게 됐다.

그러나 처음부터 `무기체계'로 개발되는 장비는 아니었다. 당시 핵심기술로 꼽히는 직병렬 주사기술·이중배율 적외선 광학기술·고속 열영상 신호처리기술을 독자적으로 개발·적용해 시험개발로 진행하던 중 우수한 성능을 인정받아 `전투용 사용가(可)' 판정을 받았다.


국내 전문기술인력 확보

사업적인 면에서 이런 경우는 TOD가 처음으로, 개발계획상의 기간을 1년 앞당겨 96년부터 전력화에 들어가 경계부대에 배치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98년 12월 북한의 간첩선(반잠수정)을 포착, 격침시키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국방과학연구소는 TOD 장비의 국내개발을 계기로 열상장비에 대한 전문 기술인력을 확보하면서 고배율의 적외선 줌 광학계를 세계에서 두 번째로 개발하는 등 연구수준 향상을 위한 노력을 가속화했다. 이런 결과는 3세대 열상장비로 이어져 국방과학연구소가 개발한 군단급 정찰용 무인항공기(UAV)에 탑재하기에 이르렀다.

< 출처 : 국방일보 신인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