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영국·프랑스 등 선진국은 1970년대 초반부터 야시장비 개발에 박차를 가해 많은 핵심기술을 확보했다. 초기 제품은 베트남전에서 사용되기도 했다.

우리 군이 야시장비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중반께로 볼 수 있다. 베트남전에 참전, 군원품으로 받은 별빛망원경(star light scope)이 소개된 때였다. 탐조등처럼 빛을 비추지 않고 별빛만 있어도 야간에 환히 볼 수 있다는 사실, 무척이나 경이롭지 않을 수 없었다.

국방과학연구소는 이즈음 야시장비의 중요성을 감안, 실장에 정해일 예비역 공군중령, 홍석민 박사 등을 연구원으로 야시장비 연구실을 구성했다. 그러나 당시 국내 광학산업은 안경알이나 건축용 유리를 만드는 수준에 불과했다. 정밀제품이라는 말과는 거리가 멀었다. 군에서 사용하는 쌍안경·포대경조차 제대로 제작하기 어려웠던 게 현실이었다.

더욱이 렌즈 직경이 커 무거우면 렌즈를 지탱하는 경통(鏡筒)이 휘거나 틀어지기 일쑤여서 기구물의 가공도 만만치 않았다. 야간관측장비(K-AN/TVS-4)·개인화기 야간조준경(K-AN/PV S-4) 등 몇 종류의 광증폭 야시장비는 70년대 말에서 80년대 초에 걸쳐 이같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개발됐다.

그렇지만 광증폭 야시장비는 장기적으로 볼 때 기술의 지속적 발전을 크게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었다. 탐지거리가 월광에 많은 영향을 받을 뿐만 아니라 구성품 가운데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영상증폭관을 도입하고 나면 가시광선 영역에서의 광학계 설계기술과 정밀한 기계가공기술이 해결해야 할 기술의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이때 정해일 실장은 야시장비의 연구방향을 전환했다. 그는 당시 국내에 처음 알려지기 시작한 열상장비야말로 향후 우리 군의 야간전투력을 대폭 증강시킬 수 있는 획기적인 장비라고 확신했다. 또 기술적으로도 전자·광학·기계가 한데 어우러져 앞으로 계속 발전할 수 있는 핵심 분야로 판단했다. 선구자적 안목이 아닐 수 없었다.

“당시 진행 중이던 광증폭 야시장비의 개발과 무관하게 주요 인원을 차출, 열상장비 연구에 별도로 투입했어요. 연구라고 해 봐야 마땅한 견본 장비가 있는 것도 아니고 자료도 충분치 않은 상태임은 당연했습니다. 관련 기술서적과 논문을 어렵게 구해 읽고 그 내용을 세미나를 통해 분석·토의하는 것이 전부였어요. 그렇지만 나로서는 황무지나 다름없는 국내 전자광학 분야에 새로운 개념의 장비를 이론적으로라도 설명할 수 있었다는 것은 대단히 획기적인 일, 하나의 사건이었다고 봅니다.”(홍석민 박사)

한편 외국의 열상장비 개발업체들도 이때 국내에 대거 진출, 국방부와 군에 많은 장비를 경쟁적으로 소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외국업체의 설명에는 과장된 부분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열상장비는 주야간 어떠한 악조건 하에서도 원거리에서 TV 수준의 뚜렷한 영상을 획득할 수 있는 전천후 만능장비로 인식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80년대 초 군의 두 곳에서 국방과학연구소에 먼저 열상장비 개발을 요구해 왔다. 한 곳은 육군화학학교. 다른 한 곳은 합참이었다. 육군 보병부대 휴대용으로 주야간 관측이 가능한 감시장비를 요구했다. 가시거리 1㎞ , 무게 7㎏ 이내였다. 당시 미국의 기술은 200ｍ 병력 탐지에 5㎏ , 3㎞ 병력탐지에 10㎏ 정도의 수준이었다. 선진국 수준의 기술을 요구한 것이다.

사실 열상장비를 휴대용으로 개발한다는 것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그렇게 용이한 일이 아니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시계를 만드는 데 괘종시계조차 만들어 본 경험이 없는 미숙련공에게 정교한 손목시계를 만들어 달라고 요구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군과 연구진은 그 어려움을 정확히 판단하지 못했다. 한마디로 개발 의욕이 너무 앞서 국내외 기술 수준이나 현황을 도외시했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때의 첫 개발 시도는 실패로 귀결되고 말았다.

당시 연구진은 가시거리를 확보하기 위해 먼저 수직 방향으로 60개의 배열을 갖는 미국의 DT-591 적외선 검출기를 확보하고 이를 중심으로 주사장치·광학계, 그리고 영상신호처리기를 설계했다. 그런데 검출기 형태에 따라 주사장치가 병렬 방식으로 결정되면서 부피·무게를 줄이는 데 한계에 부닥쳤다. 신호처리 방식을 기존의 소자별 2단 증폭 방식에서 탈피, 소자별 1단만 증폭한 뒤 다중화 처리하는 등 새로운 기법을 적용했으나 RO C를 충족시킬 수 없었다.

다른 문제는 열상장비에서 나타나는 영상의 형태였다. 열상장비는 뜨거운 물체를 밝게, 차가운 물체를 어둡게 보는 것이어서 반사하는 빛의 세기를 감지하는 사람의 눈에는 좀 이상하게 보인다. 또 이때의 열상장비 영상은 지금과 달리 그다지 선명하지도 않았다. 열상장비의 영상을 처음 보기는 연구진이나 시험평가를 담당하는 장교들이나 마찬가지였다.

특히 시험평가 장교들은 `열상장비는 어떤 악천후 속에서도 표적을 명확히 식별할 수 있다'는 선입견을 갖고 있어 상당한 혼란을 겪었다. 국내에서 개발한 것이어서 성능이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86년에 이르러 개발은 결국 실패로 끝났다. 이어 토우 야간조준경을 필두로 다양한 형태의 여러 선진국 열상장비가 군에 밀려들어오기 시작했다.

“선행운용시험 중 제기된 열상장비의 일반 주간장비와 상이한 관측상태, 기상 조건에 대한 부분적 제한점, 냉각제통·배터리의 주기적 교환 등은 군이 열상장비에 대해 충분히 이해케 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그런데 이로 인해 외국 장비들을 도입할 때에는 오히려 큰 문제가 되지 않았으니 참 얄궂은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홍석민 박사)

연구실은 규모가 축소됐다. 레이저 개발실과 통합된 뒤 전자광학 연구실로 개편됐고 연구원은 뿔뿔이 다른 영역으로 흩어지고 말았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사실은 그후 누구도 열상장비를 국내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모두 열상장비의 국내 개발에서 관심이 멀어진 채 80년대를 넘기고 있었다. 80년대는 열상장비 연구진에 그렇게 어렵고 고단했던 시련의 시기였다.

< 출처 : 국방일보 신인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