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전'서 위력 발휘… 추가개발 박차

1992년 5월22일 중부전선의 육군백골부대는 새벽 안개 속에 은밀히 침투하는 북한 무장공비 세 명을 섬멸하는 빛나는 공훈을 세웠다. 이른바 은하수작전이었다.

부대는 TOD를 통해 침투해오는 공비를 포착, 격멸해 TOD가 야간경계·야간전투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보여줬다.

이를 계기로 전방 GOP와 해안을 경계하는 각 부대에서 TOD를 추가로 요구하는 목소리가 빗발치기 시작했다. 또 하나의 사건은 역시 그해 밝혀진 이선실 간첩사건이다. 간첩 이선실이 국내 특정지역에서 야음을 틈타 북한을 왕래했음이 드러난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TOD의 정비 유지에 대한 어려움은 수면 아래로 잠기고 오히려 TOD의 위상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군은 시급한 추가 소요 요구를 해결하기 위해 예전에 도입한 외국회사에 견적을 요청했다. 하지만 외국회사의 태도는 너무나 거만했다. 그들은 최초 도입 때보다 두 배 인상한 가격을 제시한 것이다. 그들은 TOD를 절실히 원하는 우리 군의 현실을 꿰뚫고 있었다.

외국회사가 밝힌 가격 상승 이유는 이러했다. 최초 한국군에 장비를 공급할 때는 자국군에도 소요 물량이 많아 저렴한 가격으로 공급이 가능했는데 이제 한국군 만을 위해 생산 시설을 별도로 가동, 장비를 생산하게 되므로 가격이 그만큼 상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여기에 외국회사는 그동안 정비 유지 과정에서 많은 불만사항을 제기한 우리 군에 불편했던 심기를 만회라도 하려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그들은 오만해 있었다. 우리 군은 자신들이 부르는 값에 살 수밖에 없다고 믿은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국방과학연구소라는 히든 카드를 생각지 못했고, 훗날 크게 후회하게 된다.

물론 국방과학연구소가 개발한 열상장비는 무기체계 개발 전체 관점에서 보면 명함도 내밀지 못할 수준이었다. 다시 말해 국과연의 시제품은 국내에서 열상장비 연구가 다시 시작됐다는 것을 알리고 그 가능성을 보여준 것에 불과했다.

무기체계를 구성할 하나의 핵심기술·핵심부품일 뿐 전차·헬리콥터 등 어떤 무기체계에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도 결정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때 외국회사가 약간의 성의를 갖고 우리 군의 요구에 적절히 호응했다면 군은 도입을 계속 추진했을 것이고 국과연 시제품에 대한 관심은 저만큼 밀렸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사실이 이러하자 외국업체의 무리한 요구에 고민하던 군은 국과연이 열상장비를 개발했다는 소식에 반색했다. 국방부·합참, 그리고 소요군 모두 “국과연이 개발한 열상장비 기술을 이용해 국산장비로 전력화하겠다”는 공감대를 형성해가고 있었다.

국과연 TOD에 제일 먼저 관심을 보인 곳은 국방부 획득개발국(현 연구개발관실)이었다. 획득 3과장이던 민영기 예비역 대령(현 삼성탈레스)은 연구진에 “그동안 고생 많았다. 이 정도면 응용연구 목적은 충분히 달성한 것이니 실용화 개발에 조기 착수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전해왔다.

연구팀 역시 핵심기술을 확보했다는 자부심에 들떠 있었고 또 여러 곳에서 관심을 갖고 격려해준다는 사실이 너무 기뻤다. 이것저것 깊이 따져볼 겨를도 없이 긴급히 시험개발 계획서를 작성, 제출했다.

군의 무기체계 소요를 확정짓는 합참에서는 경계능력 강화를 위해 열상장비를 추가 확보하되 우선 필수 소요로만 최소화하기로 결정했다. 또 이중 긴급 소요 일부는 조기 도입하되 나머지는 획득방법을 추후 결정, 추진키로 방침을 정했다. 작지만 중요한 무기체계인 야간감시장비에 대한 군 수뇌부의 관심도 대단했다.

육본 정보참모부장 김진호(金辰浩·현 한국토지공사 사장·학군2기·예비역 대장·전 합참의장)장군은 93년 3월 국과연의 열상장비 연구 현황을 보고받는 자리에서 “당장 지상감시에 어려움이 있더라도 국과연(ADD)의 개발계획과 방안을 충분히 반영하라”고 지시했다.

김장군은 또 연구진과 간담회 형식의 모임을 지속적으로 갖는 등 육군과의 창구를 유지케 하면서 연구진으로부터 수시로 연구개발 현황을 직접 보고받았다. 김장군의 관심은 이후에도 계속됐다. 2군사령관 재직시 `적 잠수함 침투 대비 시범'에 국과연 TOD 시제품을 전시토록 했다.

또 정보처장 오향균(吳香均·육사26기·예비역 소장)장군을 통해 `열영상장비 구성 및 운용개념 세미나'와 `효과적인 TOD 운용방안 전술토의'를 개최케 해 예하부대의 정보 관계관들에게 TOD 장비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발전사항을 연구토록 했다.

98년 12월 여수 해안에 침투한 북한 반잠수정을 TOD로 발견, 격침한 것은 야간경계에 대한 김장군이 기울인 깊은 관심이 씨앗이 돼 맺은 결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보본부장이던 조근해(趙根海·전 공군참모총장·순직)장군도 국과연의 연구개발 현황을 보고받고 VTR를 통해 도입장비와 시제품의 영상을 확인, 비교해본 뒤 대단한 만족을 표시했다. 조장군은 긴급 소요를 제외하고는 국내 연구개발로 획득 가능토록 관계부서에 지시했다.

이러한 결과로 드디어 93년 8월28일, 제2차관보 주재로 열린 제93-5차 획득심의회에서 TOD의 긴급 추가 소요를 제외한 잔여 물량에 대해 국내 연구개발로 획득키로 결정됐다.

외국업체도 이때에는 국내 연구개발 현황을 어렴풋이 짐작하게 됐는데, 그렇게 크게 위협적인 요소로 생각하지는 않았다. 단지 가격 상승에 대한 우리 군의 엄포 정도로만 여겼다. 때문에 긴급 소요 물량에 대한 공급가격만 슬그머니 내렸을 뿐이었다.

그들이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것은 2년이 지나서였다. 그때는 외교 채널까지 동원하는 등 여러 경로를 통해 다양한 제안을 하고 음해성 공격까지 했지만 군의 결심은 이미 확고히 굳어 있었다. 전혀 흔들림이 없었던 것이다.

이제 연구진은 `무기체계' 개발이라는 명확한 목표를 갖게 됐다. 한편 군의 소요물량이 그렇게 많지 않은 점을 걱정했다. “이 정도 물량을 국내에서 생산하는 것이 과연 경제적으로 좋은 것인가” 했던 것. 그러나 걱정할 문제는 물량이 아니라 오히려 연구팀 스스로에게 있었음을 연구를 진행하면서 통감하게 된다.

< 출처 : 국방일보 신인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