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여 피나는 노력 마침내`결실'

선진국 수준의 세밀한 열상장비(TOD) 획득에 성공한 연구팀은 외부에서 인정하듯 스스로 자부심을 가졌다. “보안에 문제만 없다면 벌써 TV에 소개됐을 거야”라며 뿌듯해 했다. 여기에 이 정도면 실용화하는 것이 별것 아니라는 생각도 더해졌다. 이미 핵심기술을 확보했으므로 70~80%는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고 좀 더 노력하면 큰 문제 없이 멋진 작품이 나올 것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그것은 안이한 생각이고 자만심이었다. 핵심기술을 무기체계로 개발한다는 것, 군이 연구팀에 요구하는 무기체계의 실용화는 실험실에서 작동하는 `감상용 작품'이 아니라 장병들이 언제 어디서나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평범한 제품'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평범한 제품을 개발하는 것이 절대로 만만치 않다는 것을 연구진이 뼈저리게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무기체계 개발에 있어 핵심기술을 확보한 것은 단지 무기체계 개발의 시작일 뿐이다. 또 시작은 결코 반이 아니었다. 겉으로 드러나 보이지는 않지만 확보해야 할 기술 속의 기술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고 부수장비 개발도 녹록한 일이 아니었다. 자신만만해하던 연구팀에 시련은 곧 찾아들었다.

응용연구 과정에서 개발한 시제품은 주사장치·신호처리기가 완전히 분리돼 있다. 주사장치 앞 부분의 적외선 광학계도, 냉각장치도 외장형이기 때문에 멀찌감치 떨어져 있다. 따라서 미약한 영상 신호에 서로 영향을 주는 일이 거의 없다. 그러나 이 구성품들을 한 몸체로 조립하자 문제가 터졌다. 사방에서 신호 간섭이 일어나며 영상이 엉망이 된 것이다. 크기·무게도 각각을 합친 것보다 훨씬 커졌다.

연구진은 `공룡이 따로 있을까' 암담해하면서도 연구의 거의 대부분을 다시 시작해야 했다. 다행히 요원들도 이즈음에는 연구에 관한 한 완전한 프로가 됐다. 그동안 쌓아온 관련 지식·기술도 프로급이지만 무엇보다 프로근성이 몸에 밴 것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설계, 조금이라도 꺼림칙한 영상, 불편한 운용방식 등은 단 며칠이라도 내버려두지 않았다.

적외선 광학계의 경우 감시장비로서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두 가지 배율로 구현했다. 즉 동일한 광로(光路)에 광학부품 뭉치를 넣었다 뺐다 하면서 배율을 변화하는 기술이다. 야간감시장비의 경우 배율은 작지만 시계를 넓혀 전체적인 상황을 판단할 수 있어야 하고 표적을 확인할 때는 배율을 크게 해 시계는 좁지만 원거리 관측이 가능해야 한다. 여기서 배율과 시계는 서로 반비례한다.

TOD에서 이용하는 원적외선은 가시광선에 비해 파장이 10배 이상 길고 대역도 넓어 일반적으로 수차가 매우 크다. 수차가 크면 영상이 희미하게 보이거나 모서리가 찌그러져 보인다. 따라서 각각의 배율에서 동일한 광로를 유지하고 렌즈 매수를 가급적 적게 하면서 수차도 작게 하는 고급 설계기술을 필요로 했다.

직·병렬 방식의 2차원 주사를 하는 구동 광학계를 포함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축 대칭의 고정 광학계와 달리 이 수차 계산은 무척 까다롭다. 또 군용장비의 경우 운용 온도의 범위가 상용장비에 비해 매우 넓어 온도변화에 따른 렌즈 재질의 굴절률 변화와 이를 지지하는 기구 구조물의 열 팽창까지 광학계 설계시 고려해야 했다.

이중배율을 갖는 적외선 광학계의 설계도 국내에서 처음이었지만 대형 렌즈의 본격적인 제작도 처음이었다. 적외선 렌즈로 많이 이용되는 게르마늄의 표면 반사율은 36%다. 즉 들어오는 미약한 에너지의 상당량이 투과되지 못한다는 뜻이며 또 일부는 거울과 같은 작용을 해서 엉뚱한 에너지를 입사시키기 일쑤였다.

이에 따라 렌즈 표면에 여러 층으로 반사 방지막 코팅을 해서 투과율을 높여야 했는데 코팅 물질의 종류·순서·두께에 따라 투과율이 변했다. 심지어 어떤 코팅 기계를 사용하느냐, 누가 코팅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10% 이상 차이가 나기도 했다. 수십 차례의 철저한 실험이 이루어지고 표준 절차를 마련하면서 사용 파장 대역에서의 평균 투과율은 98% 이상으로 안정되게 높아져 설계치를 충족시킬 수 있었다.

영상신호처리부에서는 수십만 화소로 영상을 세밀히 재현하면서도 0.1도의 미세한 온도 차이도 영상으로 구별이 가능토록 설계, 제작하는 것이 중요했다. 1μV(102365223661V) 정도의 미약한 영상신호를 저잡음으로 수백 배 증폭시키는 일은 결코 용이한 일이 아니었다.

심지어 부품의 배치, 신호선의 굵기, 전력선과의 거리, 이 모든 것이 영상 잡음에 상관돼 이를 제거하는 일도 하나의 관건이 됐다. 특히 주사장치를 구동시키는 모터와 제어회로, 강력한 압축기인 냉각장치와 신호처리 기판이 가까이 이웃하자 모터가 회전할 때의 영향으로 영상에는 줄무늬가 나타나곤 했다. 연구진은 잡음을 제거하고 시각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여러 가지 영상 개선 기법을 연구, 적용했다. 이것은 기술 서적이나 기술 문헌을 통해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것으로 연구팀 노하우가 차곡차곡 쌓여 갔다.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는 장비 내부의 열처리 문제였다. 각종 모터·제어기판·신호처리 기판을 한 몸체 안에 집어넣으니 내부 온도가 걷잡을 수 없이 상승했다. 설상가상으로 냉각장치까지 내장하니 계란이 삶아질 정도였다. 처음 작동시켜 10분 정도 경과할 때부터 내부 온도가 상승하더니 2시간쯤 지나자 90도까지 치솟았다.

열상장비는 물체가 방출하는 미약한 열 차이, 즉 온도 차이를 영상화하는 장비다. 내부 온도가 높으니 바깥 물체의 온도 차이를 감지하기는커녕 전자회로 등 내부 구성품들이 타 버리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사방에 드릴로 구멍을 내 열을 내쫓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다시 설계를 진행했다. 전체 손실 전력, 단위 시간당 발생하는 열량, 기구 구조물의 열 전도율, 그리고 열을 빼내기 위한 방열 핀(fin)의 깊이·개수·간격 등을 모두 계산했다. 이것도 이론과 실제가 일치하는 것이 아니어서 장비가 안정을 찾기까지에는 몇 차례의 시행착오를 거쳐야 했다.

그러던 1993년 말 연구팀은 4년 여에 걸쳐 피나는 노력을 기울인 `전방감시용 열상장비 설계기술' 연구 성과를 인정받아 국방과학상 금상을 수상했다. 사기가 하늘을 찌를 듯 높아졌다. 연구인력도 세 명이 더 늘었다. 그러나 갈 길은 아직도 요원했다. 연구 규모와 범위가 기존의 세 배 이상 확대됐기 때문이다. 열상장비 자체만이 문제가 아니라 그에 수반하는 부수장비 전체를 개발해야 했던 것이다.

즉 영상을 초소 내부에서 관측·조종할 수 있게 하는 원격조종장치, 열상장비를 거치하고 상하좌우로 방향을 조정케 하는 삼각대와 방향조정기, 원격 관측시 전원을 조정·공급하고 조정명령 통신을 수행케 하는 전원·신호 분배기 등 본체를 제외한 부수장비와 구성품이 16개나 됐다.

더욱이 열상장비를 거치, 관측할 수 있는 차량도 함께 공급해야 했기 때문에 활용할 수 있는 유사 차량을 선정, 목적에 맞게 개조하는 것도 큰 어려움이었다. 소규모 기술개발 과제여서 차량관련 전문 연구인력의 자문을 받아 직접 모든 것을 발로 뛰며 하나하나 개척해 나가야 했다.

< 출처 : 국방일보 신인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