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 늦게까지 홍석민 박사가 협조하는 가운데 남궁혁(현 합참 전력발전부 차장·준장)대령은 PC 자판을 두드리며 결재문서를 직접 작성했다. 그는 전방감시용 열상장비(TOD) 연구개발 사업의 성공 가능성과 적기 전력화의 중요성 등을 하나하나 신중히 검토했다. 그리고 12월27일 예산을 추가 확보, 연구팀에 넘겨 주었다. LOA(연구개발동의서)가 확정된 뒤 무려 8개월 만의 일이었고, 적기 전력화할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된 순간이었다.

이제 남은 관문은 합참의 지휘 아래 소요군이 군 운용시험평가를 수행하고 그 결과에 따라 무기체계에 준한 `전투용 사용가(可)' 판정을 받아내는 일이었다. TOD장비 개발은 핵심기술·부품 연구개발인 시험개발 과제로 추진하면서도 LOA로부터 시험평가에 이르기까지 철저히 체계개발 절차를 따라 진행된 것이다.

연구팀은 1995년 봄이 되자 부수장비와 종합군수지원(ILS) 요소를 포함한 모든 개발을 완료했다. 이에 따라 국방과학연구소는 4월 기술시험평가 계획서를 국방부에 제출한 데 이어 5, 6월 성능 및 환경시험 등 기술시험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군 운용시험을 앞두고 있었다.

그런데 연구팀도, 실무부서들도 군 운용시험 규정의 한 조항이 주는 문제를 풀지 못하고 있었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 국과연 연구관리실 심재운 실장은 다시 합참 전력기획부장 조영길(현 국방부장관)장군을 찾아가 `무기체계에 준한' 시험평가가 진행되도록 추진해 줄 것을 간곡히 건의했고, 조장군은 긍정적인 검토를 지시했다.

이에 따라 7월 초 합참 시험평가처장(전력평가부의 개선된 조직) 문정일(현 해군참모총장)제독 주재로 TOD 시험평가 추진회의가 개최됐다. 육본 무기체계과의 양치규(현 사단장)대령을 비롯해 합참의 시험평가 2과장 조원건 공군대령·고동익 해군중령, 공통전력과장 김일진 대령·조성민 해군중령, 그리고 국방부 획득3과 김상훈 사무관·김대영 해군중령, 국과연의 연구관리실장·개발팀장이 참석했다.

회의는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적극적으로 추진 방안을 모색했다. 누구도 시험평가를 추진하는 데 이의가 없었다. 문제독은 하절기부터 시험평가가 가능하도록 합참과 육군이 평가계획을 사전에 수립·검토하는 등 최대한 협조해 선행조치를 하되, 국방부는 규정에 저촉되지 않도록 본 사업에 대한 정책결정 내용을 시험평가 전까지 합참에 통보해주도록 요청하면서 결론을 맺었다.

국방부 획득개발국 채우석(예비역 장군)대령은 합참에 시험평가를 의뢰하면서 사업추진 방안을 권영해 국방부장관에게 보고, 정책 결심을 받았다. 국과연 개발 TOD는 핵심기술·부품단계에서 체계개발 수준으로 추진됐으므로 체계개발에 준하는 군 운용시험을 합참 조정·통제 하에 육군이 주관, 수행하고 그 결과에 따라 무기체계로 채택토록 건의한 것이다.

이로써 LOA 확정 후 15개월이나 끌어온 규정·절차 문제가 모두 해결됐다. 다만 한가지 육군의 시험평가 경비는 이때까지도 반영되지 못했다. 시험평가가 거의 끝날 무렵 사업조정관 이원형(현 국방품질관리소장)장군과 육본 전력계획과장 김종천(현 군단장)대령 등의 협조로 예산은 추가 조치됐지만 실제 육군교육사령부의 실무 장교들은 예산이 영달하지 않은 매우 어려운 상황에서 시험평가를 수행했다.

1995년 8월 드디어 군 운용시험 평가가 시작됐다. 시제장비 3대는 각각 상이한 지형과 기상 조건에서 시험이 진행되도록 동부전선 뇌종부대, 중부전선 청성부대와 해안경계를 담당하는 32사단에 배치했다. 32사단의 장비는 전력화 지원요소에 관련한 시험을 수행키 위해 시험기간 중 1개월간 육군정보학교로 옮겼다. 다른 1대는 정비유지와 관련한 시험평가를 위해 야전정비장비·ILS 요소와 함께 2군수지원사령부 82정비대대에 배치했다.

시험평가는 육군교육사령부의 시험평가단 3처(처장 김호태 대령·이인태 중령·권영배 준위)와 4처(전한국 대령·김경률 준위) 주관으로 6개월간 진행했다. 영상의 화소 수가 도입 운용장비의 3배로 세밀하며 탐지거리가 증가됐고, 한국적 운용환경에 적합하도록 사전에 개선된 상태였다. 특히 이미 수 차례 국과연 자체 시험으로 성능·환경성이 입증된 상태였다. 연구팀은 개발 때보다 오히려 느긋한 마음으로 시험평가에 임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긴장을 풀 수는 없었다.

TOD는 주야간 관측이 가능한 장비이기 때문에 낮이나 밤에도 시험평가는 계속됐다. 그런 중에 8명의 연구팀원 가운데 여성 연구원이 2명이나 참여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관계관들을 놀라게 했다. 윤은숙·김현숙 선임연구원이 그들로 전방의 철책선에 투입되지는 않았지만 야전정비장비시험, 해안감시시험, 정보학교시험에 적극 참여했다.

시험평가단장 이흥렬 장군은 전방 시험평가 부대를 두 차례나 방문, 도입장비와 개발장비의 영상을 실제 비교해 보고 흐뭇한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개발장비의 성능이 확연히 우월했던 것이다. 연구팀은 물론 시험평가를 담당하는 장교도 신이 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돌연 TOD의 전력화 시기를 1997년에서 1996년으로 1년 앞당기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시험평가가 한창 진행 중인 1995년 10월 말, 당시 육군참모총장 윤용남 대장은 취약시기의 적 침투에 대비할 수 있는 긴요 전력을 조기에 확보하는 방안을 검토하도록 참모들에게 지시한 것이다.

1996년에 생산되려면 모든 개발 일정이 재검토돼야 했다. 당장 시험평가 담당 장교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시험평가 후 별도로 보고서를 작성할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시험평가 중에 틈틈이 보고서를 작성해야 했다. 시험평가단 3처 이인태 중령은 육본 무기체계과 손유범 중령과 수시로 만나 평가 결과를 거의 동시에 검토, 보고 기간을 최대한 단축했다.

시험평가 완료 후 뇌종부대와 32사단에서 시제장비를 좀 더 작전에 활용하고 싶다며 수 개월간 대여 운용하기도 했을 만큼 성능을 인정받은 TOD장비는 작전요구 능력의 적합성 등 시험평가 전 항목의 기준을 충족시켰다. 1996년 1월 하순 시험평가가 종료되면서 즉시 육군 교육사령부에서 육군본부로, 2월9일에는 육군본부에서 합참으로 전투용 사용가 판정과 무기체계 채택이 건의됐다. 초스피드였다.

“연구팀만으로는 이런 결과를 낳을 수 없었습니다. 국방부·합참·육군, 그리고 협력업체가 그야말로 공동의 목표를 위해 각기 맡은 분야에서 최선을 다한 결과였습니다. 당시 함께한 모든 분께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홍석민 박사)

< 출처 : 국방일보 신인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