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방감시용 열상장비(TOD) 개발은 핵심기술·부품 단계에서 체계개발의 내용과 절차에 따라 추진돼 적잖은 어려움을 안고 있었다. 그러나 군 지휘부의 정책 결심과 관련 부서의 적극적인 추진으로 규정과 절차의 여러 난관을 극복할 수 있었음은 이미 설명한 바와 같다.

당시 무기체계 획득관리 규정(국방부 훈령 제431호 및 제531호)에는 연구개발사업의 종료시점이 무기체계로 채택된 시점으로 규정돼 있었다. 따라서 연구팀은 군 운용시험 평가 후 1996년 6월 사업 종료 때까지 ‘무기체계 채택’ 판정을 받고 96년 말까지 규격화를 완료하는 것으로 준비하고 있었다. 97년 생산단계까지 어느 정도 시간적 여유는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90년대 중반은 북한의 무장간첩 침투 활동이 잦은 시기였다. 이에 따라 육군은 긴요한 감시전력인 TOD 장비의 전력화 시기를 1년 단축키로 계획을 수립, 국방부에 건의했다. 연구팀을 비롯한 모든 관련 부서가 바빠지고 업무가 폭주했다. 그래도 서로 유기적 체제를 유지하면서 최대한 우선적으로 협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합참은 육군의 시험평가 결과와 공통전력과의 확정요구운영능력서를 검토한 뒤 드디어 96년 3월6일 전략기획참모부장이 주재한 제96-3차 무기체계협의회를 통해 ‘열상장비를 합동무기체계로 채택, 의결’ 하기에 이르렀다. 시험개발로는 달성할 수 없는 ‘전투용 사용가’ 판정과 ‘무기체계 채택’ 결정이었다. 이는 국내 연구개발로 획득 방법을 의결한 뒤 불과 2년 6개월여 만의 성과였다.

또 이날 제96-1차 합참 전략회의에서는 육군의 조기전력화 방안과 해안경계를 위한 추가 소요량을 승인했다. 협력업체인 삼성전자(현 삼성탈레스)도 군의 조기전력화 방침에 부응, 이미 96년 2월부터 선(先)생산 준비를 자체적으로 착수하고 있었다.

규격화는 국방부 군수국 조달관리과 주관으로 조달본부·국방품질관리소 및 각군 관련 부서의 적극적인 협조 하에 추진됐다. 이강주 중령은 전방에서 대대장직을 마치고 조달관리과로 부임한 장교였다. 그에게 규격업무는 생소한 편이었지만 관련 부서 의견을 조정·통제하고 보완사항을 면밀히 검토함으로써 5월7일 제96-3차 국방규격심의회의 규격 승인을 받게 했다.

물론 이런 결과가 있기까지 연구팀들은 직접 규격(안)과 도면을 들고 이리 뛰고 저리 뛰며 기술적 토의를 수없이 거쳤다. 이후에도 96년 말까지 방산물자 및 업체 지정, 국방품질관리소에의 자료 이관과 품관소의 품질보증 업무, 방위력 개선사업 추진위원회를 통한 집행(생산) 승인, 육군의 종합군수지원 계획서(ILS-P) 발간, 육군 교육사령부의 초도양산 보완 확인, 기술교범 승인, 업체의 생산 노력 등 전력화를 위한 많은 절차를 거쳤지만 모두 순조롭게 진행됐다.

사업이 종료되는 시점에서 볼 때 TOD 개발사업은 계획보다 4개월이나 앞당겨 시험개발사업으로 유일하게 무기체계로 채택됐고 당시의 규정과 달리 사업기간 내에 규격화까지 완료했으며 전력화 시기를 1년이나 앞당긴 모범적인 사업으로 막을 내렸다.

사업 성공의 가장 큰 요소는 무엇보다 군 수뇌부의 자주국방 달성을 위한 독자적 정보전력 구축에 대한 깊은 관심이었다. 이러한 관심과 고뇌 속에 국방부·합참·육군 관련 부서 실무자들이 하나의 공감대를 형성해 적극적으로 감시전력의 국내개발을 지원, 조정·통제함으로써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성공적인 마무리를 가능케 했다.

물론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국방과학연구소의 열상장비에 대한 핵심기술 사전 확보가 이를 위한 밑거름이 됐다. 군이 전장감시에 어려움을 겪으며 관련 장비의 확보에 발을 구르고 있을 때 국방과학연구소는 비록 완성된 상태는 아니었지만 획득된 핵심기술 내용으로 목표 달성의 가능성과 자신감을 보여 주었고 이를 통해 군이 확신을 갖고 정책을 결심할 수 있게 한 견인차가 된 것이다.

“TOD 사업, 내가 보낸거야.” “TOD 장비, 그거 내가 만든거야.” 한동안 국방부와 군 실무자들 사이에서는 이런 목소리가 심심찮게 들려왔다. 사실 이런 말들은 듣기에 따라 오해의 소지가 없지 않았다. 특히 연구팀으로 볼 때 더욱 그렇다. 하지만 연구팀은 이 말 속에 담긴 ‘기분’을 십분 이해할 수 있었다. 나아가 군의 누군가가 그런 말들을 해주기를 은연중 기다리기도 했다.

이같은 말은 TOD 개발사업에 참여한 모든 이가 개발의 주역이었고 책임자였으며 승리자였음을 보여준다. 또 그것은 자신감·신뢰감이었다. 개발 성과는 가시적으로 96년부터의 양산과 군의 전력화로 이어졌다. 그리고 98년 12월 남해안 여수 앞바다에 침투한 북한의 반잠수정을 발견함으로써 격침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

97년 육군교육사령부의 최초 운영능력확인(IOC), 육군·합참의 전력운영 분석 수행을 기술적으로 지원하면서 국방과학연구소의 TOD 장비 개발에 대한 모든 업무는 종료됐다. 그리고 연구팀은 그 해 말 국방부장관이 수여하는 연구개발장려금을 무기체계분야에서 ‘특1등급’으로 지급받았다. 연구개발장려금은 군 전력화에 대한 노력을 입증해주는 마지막 관문이다. 그동안의 연구개발 노력에 비해 많은 금액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연구팀은 `내가 개발한 장비를 우리 군에서, 우리 병사가 직접 운용한다'는 자부심과 자긍심으로 최고의 기쁨을 만끽했다.

최초 연구개발로 획득방법을 변경했을 때 전력화 소요물량은 보잘것없었다. 과연 국내 개발에 경제성이 있는 것인가 의심할 만한 물량이었다. 그러나 연구개발에 대한 신뢰가 쌓이고 군의 시험평가가 진행되면서 감시 능력 강화를 위한 추가소요는 급격히 증가했다. 또 북한의 끊임없는 도발은 TOD 장비 연구개발에 대해 지속적으로 높은 관심을 갖게 했다. 최초 목표 수량보다 10배 이상 생산된 장비를 보며 연구팀은 ‘북한 지도자들도 TOD 개발사업의 든든한 후원자’라고 우스갯소리를 하곤 했다.

특히 군용 TOD 개발장비의 전력화는 민수 분야에도 곧바로 파급효과를 가져왔다. 야간감시장비를 필요로 하는 경찰청과 세관 등에도 적정 수량이 보급된 것이다.

< 출처 : 국방일보 신인호 기자 >